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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똥 법칙

by 북장

엄마는 20년 동안 하숙을 하며 하숙생들의 삼시 세 끼를 책임졌다.

그 덕분인지 엄마는 요리계의 신으로 불렸다.

엄마가 해주는 맛난 밥을 맨날 얻어먹기만 하다가 결혼을 하고 난 후 알게 됐다.

엄마의 요리 실력을 난 물려받지 못했다는 거.


나는 요리똥손이었다.




요똥이에게는 요리를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나름의 요똥 법칙이 있다는 뜻이다.



첫째, 양 조절이 안 된다.

요리는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데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 같은 경우에는 특히 양 조절이 어렵다.

재료의 양, 물의 양, 양념의 양 등 양을 제대로 측정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콩나물국을 만든다고 해보자.

콩나물을 사면 그 콩나물을 한 번에 다 써야 한다.

'남겨봤자 어차피 쓰지 않아 썩을 거니까'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콩나물국을 만들기 위해 콩나물을 샀으면 콩나물국만 만들고 끝내야 한다.

전혀 다른 요리로 확장을 하지 못하는 것이 요똥이의 특징이랄까.

요리법을 보고 만드는데 내가 산 콩나물의 양과 요리법의 콩나물 양이 다르면 그것도 난감하다.

그때부터 내 요리는 산으로 간다.

기본 재료의 양 측정이 잘못되니 양념과 간도 함께 딴 길로 새서 맛이 이상하게 가버리는 것이다.

양은 재료가 됐든 양념이 됐든 한 부분만 잘못되어도 요리 망하는 연계 지름길이 생성된다.


양 조절 실패의 제일은 볶음밥과 카레이다.

둘이 먹을 볶음밥이든, 셋이 먹을 볶음밥이든 내 요리의 양은 항상 차고 넘친다.

스팸도 한 통 다 썰어 넣어야 하고, 김치도 반쪽 꺼낸 거 다 넣어야 하고, 양파도 한 알 다 넣어야 한다.

볶음팬이 가득 찰 정도로 만들고 나면 남편이 슬며시 와서 한마디 던진다.

"난 조금만 먹을 거야."

카레는 그나마 냉동실에 소분해서 얼릴 수라도 있지 볶음밥은 정말.



둘째, 불의 세기와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각 집마다 화구와 냄비의 여건은 조금씩 다 다르다.

참고하는 요리법의 여건과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때는 태워먹고, 어떤 때는 죽이 되는 이유.

다 불과 시간 때문이다.


난 요리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고 있기보다는 그 시간에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재료를 다 준비해 놓고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하면서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나만의 근거는 있다.

시간절약.

대신 맛은 보장을 못한다.

재료를 썰다가 넣어야 할 시간을 놓치면 불을 끄는 것이 나름의 대처법이라면 대처법일까.



셋째, 간을 보지 못한다.

이게 짠 건지, 단 건지, 맹숭맹숭한 건지 구분이 잘 안 되다 보니 마지막 맛의 정점을 찾지 못한다.

내 경우에는 매운맛은 아주 잘 구분한다.

맵찔이의 감각만 예민해져 있는 것은 요리에 하등 도움이 안 되지만.

엄마조차도 나에게는 간을 보라고 하지 않는다.

요리를 잘하는 편인 둘째와 막내동생은 간 좀 봐달라고 부르지만 난 옆에서 기웃거리다가 맛만 본다.






요즘은 요똥이에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시대인 듯하다.

마트에만 가도 각종 양념과 밀키트가 즐비해서 본 실력을 숨길 수 있게 해 준다.

오늘도 시판양념의 도움을 받았다.

어머님께 받은 냉이로 된장국을 끓여야 되는 상황이었던지라 냉이된장찌개 양념을 준비했다.


시판양념의 도움으로 요리는 성공했을까.

요똥이는 받은 냉이를 한 번에 다 때려 넣어 양 조절에 또 실패했다.

그래도 맛있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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