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구역으로 보는 공간의 색

by 북장

며칠 전 플로깅을 해보겠다며 남편 손에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쥐여주고 산책을 나갔다.


플로깅

건강과 환경을 함께 지키기 위하여,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가리키는 용어.
출처 : 두산백과 두디피아


쉽게 말해 '쓰레기 줍기'.

어차피 쓰레기를 주우려면 계속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야 해서 부지런히 걷는 것은 어려울 텐데.

멋진 말을 붙여놓긴 했다만 퍽 와닿지는 않는 용어이다.


우리의 플로깅 코스는 제민천 산책로를 살짝 빗겨 난 그 위의 길.

제민천을 걸어 다니며 알게 된 것이 매일 아침 그곳을 정비하는 봉사인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울 쓰레기는 그곳에 없을 것이고, 이미 쓰레기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우리는 제민천 위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몇 번의 플로깅, '아저씨커피' 카페 사장님과의 대화, 운동 인구 관찰.

이 세 가지의 조합을 통해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제민천이 온전히 제민천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공주의 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하천이 제민천이다.

금학동의 수원지에서부터 시작하여 금강으로 흐르는 제민천은 4.7km의 꽤 긴 길이를 자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천변을 따라 도로와 주택, 상업시설을 양 옆에 쪼르르 만들어놨다.


분명 제민천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하천은 흐르는데 구역은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첫 번째, 금학동의 수원지부터 봉황교까지의 잊힌 구역이다.

제민천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지 못하고, 이제 막 이름을 찾으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하천의 시작점과 가깝기에 어렸을 적에는 가장 깨끗했던 구역이었지만 잊힌 시간만큼 더러워져 안타까운 마음이다.

전봇대 옆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담배꽁초 등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있고, 제민천 산책로도 정비가 덜 되어 걷는 사람을 보기도 힘들다.

플로깅을 하며 쓰레기가 너무 많아 담배꽁초는 포기하고 넘어갔던 구역.

이러니, 사람들이 이 구역에 관심을 두지 않고 찾아오지 앉는 것이 당연하다 느껴졌다.


두 번째, 봉황교부터 교촌교까지이다.

사람들이 주로 말하는 제민천은 이 구역을 뜻한다.

여행과 산책을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자신의 색을 뽐내는 다양한 카페와 공방, 공간들이 사람들을 반기는 곳이다.

이 주변에서는 쓰레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쓰레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부지런히 가꾸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로 금방 사라지곤 한다.


딱 이 구역이 제민천을 대표하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분위기를 드러낸다.

따뜻하다, 아기자기하다, 골목이 생동감 있다.

외지인들은 이 세 개의 말이 공주가 주는 느낌이라고 말한단다.

어느새 제민천은 공주를 대표하는 구역이 된 것이다.


세 번째 구역은 교촌교부터 금성교까지이다.

산성시장과 추억의 미나리꽝을 품고 있는 곳으로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많아 북적거리는 느낌을 낸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고, 시장이 있기 때문일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제민천변을 따라 걷는 곳이기도 하고, 가장 많은 쓰레기를 주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에 가까워질수록 하천 폭이 넓어지다 보니 탁 트인 풍경을 기대할 수 있다.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양한 경험과 관찰이 모여 보인다는 것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공간을 세세하게 보고자 하는 관심 덕분일 수도 있다.

나는 제민천을 걸으면서 보고, 카페 사장님은 제민천을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이 공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 둘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담배꽁초 하나를 겨우 발견할 수 있는 공간, 별별 쓰레기가 다 굴러다니는 공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공간.

사람들이 사랑으로 돌보는 공간, 기억에서 잊힌 공간.

어떤 것이 먼저일까를 제쳐두고 공간이 띄고 있는 색에 감탄하고 탄식한다.

하나의 제민천인데 이렇게 다른 색을 띠다니.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제민천의 다양한 색을 사랑한다.

그리고 이 공간들의 색이 더 따뜻해지고 밝아지기를 바란다.

다음 세대인 내 아이가 이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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