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천을 걷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처음 며칠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고, 며칠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목적지까지 빠르게 갖다 오자는 마음으로 길만 보고 걸었다.
그날은 팔의 움직임에 따라 사각사각거리는 옷자락 소리만 귀에 들어왔다.
빠른 걸음으로 목표를 향해 길만 보고 걷게 되니 좋아하던 새싹들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언제였을까.
내 삶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흐릿하지만 내 몸이 무너져 내린 그날부터였을 것이다.
발령을 받고 자의와 타의가 뒤섞여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생활을 근 몇 년간 했다.
누군가 일을 함께하자는 제의를 했을 때 끊어냄이 전혀 없었다.
아직 신규니까, 일을 배워야 하는 때니까, 다 도움이 되는 경험일 거니까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매일매일 치열하게 수업을 하고,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쓰고, 강의를 나가고,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자료를 개발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5년도 되지 않아 자만심은 목까지 차올랐고 장기적인 목표도 없이 달리고만 있었다.
그러다 첫아이가 잠깐 왔다 떠나갔고 마음과 함께 허리도 주저앉았다.
지금이야 가볍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다 원망스러웠다.
'이게 다 그 사람들 때문이야.'
'그놈의 학교일. 밤늦게까지 보고서 쓰다가 허리디스크가 터지다니. 말도 안 돼.'
'난 이제 다 손 뗄 거야. 알아서 하라고 해. 난 몰라.'
주변에 대한 원망, 일에 대한 포기.
아니다.
내 불행에 대한 핑계가 필요했고, 도망이 필요했을 뿐이다.
지금은 그때가 오히려 감사하기만 하다.
덕분에 멈출 수 있었고, 덕분에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배웠고, 덕분에 내 삶의 속도에 대한 주도권을 내가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불행이 지금은 행운으로 여겨지다니.
역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되새김질하는 나답다.
이 말도 그때부터 마음에 새겼던 건데.
지금 이 제민천 길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난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걷고 싶을 때 걷는다.
다른 길로 가고 싶을 때 어떤 길로 갈지 선택하고, 잠시 머무르고 싶으면 머무른다.
달리고 싶을 때는 차오르는 호흡을 느끼며 달릴 것이다.
아직은 달릴 준비가 안 되어있는 몸이지만 언젠가는 달릴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난 더 이상 길만 보고 걷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걸으며 딴짓을 하다가 얼마나 아름다운 봄을 만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