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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구나

청년문화활동가 양성 지원사업에 덜컥 신청한 애엄마의 한탄

by 북장

"네가 그걸 하면 주혜 루틴이 너무 깨지지 않겠어?"


그래, 안다.

4주 넘게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마다 강의를 듣겠답시고 밤에 나가버리면 주혜가 불안정하게 이리저리 맡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되는 것은 내 정체성이 엄마로만 쏠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주혜의 엄마이자 아직은 청년이고 하고 싶은 게 많은 호기심쟁이이다.




전지적 청년 시점.

공주시의 예비 청년문화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과 멘토링을 받으며 지역의 장소성을 살려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해 보는 활동이란다.

내가 공고문에서 본 것은 '청년 관점의 다양한 아이디어 도출과 새로운 기획으로 지역 활성화'였다.

진하게 강조까지 해놓았던 그 문구에 끌려 충동적으로 신청을 하고 말았다.


미쳤지, 또 일을 벌였구나.

OT를 참여하고 드는 생각은 '이걸 계속해? 말아?'와 같은 갈등이었다.


첫 번째는 활동 시간대였다.

워킹맘에게 퇴근 후의 시간대, 즉 저녁부터는 육아 출근 시간대이다.

올해 학교 출근을 안 하고 있어 워킹이라는 정체성이 많이 흐려졌다만.

어째 그래서인지 엄마로서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있다.


보살핌이 필요한 1학년 아이의 안정적 생활을 위해서는 밤 활동이라는 것이 가장 크게 고민이 되는 지점이다.

늦게 일이 끝나 우리가 잠들면 들어오는 남편, 다른 가족 구성원의 도움은 기대도 할 수 없어 진짜 고민이다.


두 번째는 활동의 깊이였다.

청년 관점에서 새로운 기획으로 재미있는 행사를 만들어내면 되겠구나 싶었던 것이 첫날부터 아주아주 딥한 성격을 띠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이다.


문화도시, 시민 자생 문화, 미래유산에 대한 마중물 역할, 지역의 장소성·이야기·이미지가 녹아든 문화기획.

이 얼마나 무겁고 멀게 느껴지는 말들인가.


깊이라는 것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굉장한 호기심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나같이 학문적인 관점, 분석가의 눈으로 전체와 부분을 파악하는 것을 즐기고 지혜의 힘이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손쉽게 툭 놓을 수 없는 매력 요소이다.

그 호기심에 취해 갈팡질팡이다.


세 번째는 청년의 연령층, 정체성의 문제였다.

공주에서의 청년은 만 19세 이상부터 만 39세 이하까지로 정의되어 있다.

만 35세, 청년 딱지를 떼기까지 딱 4년 남았다.

규정되어 있는 나이로만 보면 청년이 맞다.

그런데 청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고민은 해볼 필요가 있다.


청년 모임이나 활동들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해보면 애 키우는 아줌마, 아저씨는 찾기 힘들다.

어제도 OT에 애를 데리고 나갔다가 굉장한 정체성 혼란을 느껴야 했다.

대부분이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구성원들 사이에서 애엄마는 나를 포함하여 2명.

다들 무슨 목적으로 예비 청년활동가가 되고자 할까.


난 그저 호기심이었다.

내가 관찰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고, 내가 살아갈 곳이고 내 아이가 자라날 곳이기에 조금 더 소소한 행복거리들을 늘려나가고 싶었다.

결국엔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공주'를 향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은 엄마, 아내, 공주시민이지 청년은 아니다.

이건 정책적, 행정적으로 분절되어 있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본다.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주로 아이가 없는 일인가족 중심이다.

우리 가족에게 밀접하게 와닿았던 정책은 주로 육아, 교육의 영역이었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딱딱 구역이 나뉘어 있는 단일 구조가 아니다.

정체성은 갖가지 색이 어우러져 있는, 나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복잡한 층위를 가진 것이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청년의 끝자락에 있는 애엄마는 소외감과 서글픔을 느꼈다.

여기서조차 우리는 엄마라는 색채에 치이는구나.




모르겠다.

친정엄마의 말마따나 그냥 내게 주어진 쉼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것을.

주말은 고민의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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