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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한 시간

일 년의 연구년으로 알게 된 것들

by 북장

벌써 8개월이 지났다.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났나 싶은 마음에 아쉬움만 더한다.


9월 초에 학습연구년 중간보고회가 있었다.

그때 선생님들의 발표를 들으며 '아, 교사들은 참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들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매일 꾸준히 운동을 하신 분, 한국화를 그려 전시회도 하고 대회 입상도 하신 분, 지역의 관보를 전부 뒤져 근대 학교사를 바로잡으신 분, 50 평생에 자전거를 처음 배워보신 분, 책을 내신 분 등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모두 존경스러웠다.


올해 학습연구년을 하신 분들 사이에서 막내일 것 같은 나는 일 년 동안 무엇을 했을까.

선배님들은 회복과 성장을 하고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힘을 얻고 계신다고 했다.

아이들을 다시 만날 시간이 기대된다고 하셨다.


나는 아닌데.

난 베짱이처럼 설렁설렁 지냈는데.

난 그냥 계속 쉬고 싶은데.

난 교실로 돌아가기보다 내가 갈 수 있는 다른 곳들을 찾고 있었는데.


난 이상한 애인가?








선생님들과 식사 자리에서 개별적인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계속 이렇게 쉬고 싶어요. 학교에서 내년 거취를 말하라는데 휴직을 고민하게 되네요."

"여행 계획은 거창하게 세웠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못 갔어요. 대신 일상에서 행복감을 많이 얻었어요."


그래, 꾸준하지 않아도 난 나름대로 시간을 소중하게 잘 썼지.

그래, 거창하지 않아도 난 소소하게 행복했고 성장했지.

그렇게 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위로를 받는다.


문득 아침식사를 하며 맞은편에 앉은 아이 모습을 보니 '감사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침에 여유롭게 딸과 책을 읽으며 아침을 먹고, 손을 맞잡고 학교로 걸어간다.

제민천에서 남편과 함께 발맞추어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따뜻한 바닐라라떼 한잔을 마시며 운동을 마친다.

매주 딸아이의 친구들과 독서모임을 하며 책을 읽고 웃고 떠들며 논다.


가장 감사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니 난 혼자가 아니었다.

아, 올해 내게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로서의 성장과 회복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가족과 관계로서의 성장과 회복이 더 중요했구나.


개인적으로 재밌고 유의미한 시간들도 많이 보냈지만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떠오르는 것들이 이것들인 것을 보니 어쩌면 나는 균형을 잡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온전하게 세우는 것은 나, 아내, 엄마, 딸, 친구, 교사, 시민 등 다양한 역할이 균형 잡혀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연구년의 끝에 대단한 결과물을 보여줄 순 없더라도 감사하고 대견하게 생각하자.

균형 잡힌 일상을 보낼 수 있었음을.

그럼으로 인해 특별한 힐링을 찾지 않더라도 평온하고 따뜻한 삶을 향유할 수 있음을.

이런 삶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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