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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동생의 첫 자소서

거지 같은 필력, 첫 자소서는 원래 이런 건가요

by 북장

7살 아래의 막내 동생이 대학 졸업 후 몇 년을 뒹굴거리더니 처음으로 취직을 해보겠단다.

자기 나름대로 준비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잘 안 돼서 그런 건지.

매일같이 들려오는 엄마의 잔소리에 포기한 건지.

아빠가 소개해준 회사에 한번 다녀보겠다며 큰 결심을 했다.


어제 뜬금없이 막내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나 자소서 썼는데 좀 봐줄 수 있어?"

"자소서는 왜 쓰냐? 누나 자소서 본 적 한 번도 없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에 자소서가 있더라고. 급해서 그러는데 읽어보고 이상한 거 있으면 말 좀 해줘."

"그래. 보내봐."


승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카톡으로 보내온 파일을 여는 순간 눈이 빡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야, 다 이상해!'


제목 없음.jpg


빈틈없는 줄간격의 공격이 첫 시작이다.

글이 겹쳐서 읽는데 심력이 너무 소모된다.

줄간격을 100에서 160으로 수정하고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읽고 또 읽어도 이게 어디서 꼬인 문장인지 눈에 잘 들어오지를 않는다.

한 문장의 완성, 문장 내부의 연결, 문장과 문장의 연결, 문단의 배치.

어디서부터 손대야 하는 거니!


겨우 2쪽 되는 글 하나를 읽고 다듬는데 2시간이 걸려버렸다.

틈틈이 차오른 짜증 게이지는 글을 읽는데 방지턱처럼 턱턱 걸려 집중을 깨트리는 부작용을 나았다.




자소서 변경.jpg


수정한 자소서 파일을 보내고 막내에게 욕을 쏟아냈다.


"이 그지 같은 새끼야. 글을 뭐 개똥으로 쓰냐!"

"너무 대충 쓰기 뭐해서 일단 쓴 거야. 이력서 기본이라고 편하게 쓰라고 했단 말이야."

"너 진짜 글 겁나 못써."

"내가 언제 글을 써 본 적이 있나. 난 읽고 말하는 건 잘해."

"자랑이다 자랑이야."



우리 집 막내 때문에 열불이 터진다.

동생의 글 솜씨를 탓하는 것이 누나의 자만인 걸까.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안 한다만 저건 정말 아니지 않나.


일단 지르고 보는 첫 자소서는 원래 이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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