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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 무서워서 어디 가겠나

by 북장

"여보, 평소랑 다르게 왜 이렇게 난리야?"


그렇다. 여행을 다녀온 후 평소와 다르게 정리에 극성을 부렸다.

원래 정리는 남편 담당이다.

캐리어를 정리하고 닦고 집어넣는 모든 과정이 남편의 손길을 거쳤는데 이번에는 내가 한 술을 더 떠 정리에 나섰다.


주말 동안 용인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다녀온 것은 좋았지만 뉴스와 기사에 왜 이렇게 빈대 관련 소식이 나오는 것인지.

호텔 방에 들어가서 마주한 카펫에 예민모드가 발동해 버렸다.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의 모서리를 살펴보고, 캐리어와 가방은 전부 침대와 멀찍이 테이블과 의자 위로 올려놨다.

아이가 맨발로 카펫을 밟을 때면 실수였을지라도 비명이 빽하고 질러졌다.


"엄마, 빈대가 뭔데 그렇게 싫어해?"

"엄마도 본 적 없는데 사람이 자는 공간에서 함께 살면서 사람을 물어 간지럽게 만든대. 엄마는 생각만 해도 온몸이 간지럽고 소름이 돋아서 무서워."

"에이, 우리나라 호텔에 무슨 빈대야. 걱정 마."

"서울이랑 인천, 경기권은 이미 뚫렸나 봐. 기사에 계속 나온다니까. 소름 끼쳐."


호텔에 있는 동안 그렇게 빈대 생각에 소름이 돋더니 밖을 돌아다닐 때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는 집에 와서 다시 생각이 났다는 거다.




집에 오자마자 온 가족이 탈의하고 모든 옷가지를 세탁기에 돌렸다.

빈대는 고온에 약하다고 했던 것이 떠올라 건조기에 돌릴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건조기로 돌렸다.

캐리어와 가방에서 꺼낸 물건들은 하나하나 알코올티슈로 닦으며 이상한 게 붙어있나 살피는 과정을 걸친 후에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덩치가 큰 캐리어, 플라스틱이라 덜그럭거리는 캐리어의 뒤처리가 걱정이었다.

빈대 퇴치법을 검색해 보니 드라이기를 쓴다는 글이 눈에 띈다.

남편이 깨끗이 닦아준 캐리어를 비닐봉지에 담고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씌어준다.



"진짜 왜 그러는 거야?"

"빈대에 물리는 건 괜찮은데 빈대랑 같이 사는 건 절대 용납 못해."




얼마 전 베트남에 여행 갔다가 빈대에 물려온 둘째 동생에게 집에 와서 어떻게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걸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족 톡방은 빈대 공포로 난리가 났다.

곧 서울로, 부산으로 여행을 갈 동생과 친정부모님도 빈대가 무섭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에게도 빈대는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지의 공포 생물이었다.


마침 약국을 다녀올 일이 있어서 약사 선생님께 물었다.

"베드버그 스프레이 있나요?"

"네? 그런 명칭의 약은 없고 진드기 같은 거 기피제는 있어요."

약사 선생님들끼리 베드버그 스프레이가 있나없나를 두고 대화하시며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말해준다.

'그걸 이 지방에서 왜 찾으세요?'


그러게요.

인구 10만이 겨우 되는 이 중소지방에서 빈대가 출몰할까 싶기는 하지만 극성을 부려서라도 빈대는 만나고 싶지 않아요.

한동안 빈대 무서워서 여행도 못 갈 것 같아요.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간지러운 그대여, 우리 제발 만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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