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미로 보는 시험

by 북장

시험 試驗

1.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

2. 사물의 성질이나 기능을 실리조 증험하여 보는 일

3. 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위하여 떠보는 일. 또는 그런 상황.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12월 2일은 2023년도 마지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일이었다.

줄여서 한능검이라 불리는 이 시험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한국사 전반에 걸쳐 역사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다양한 유형의 문항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사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자발적 역사학습을 통해 고차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고자 합니다.'라는 소개를 붙이고 있다.

한능검을 통해 우리 역사와 한국사 교육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자발적 역사학습, 고차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배양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찬 바람이 부는 토요일 오전, 시험장 안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다.

한 고사장에서만 25명씩 20개 반, 전국 고사장을 합치면 이게 다 몇 명인지 어림도 안 된다.

얼핏 듣기로는 접수 자체가 어려워서 서울 사람이 강원도나 제주도로 간 적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한능검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공무원과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사관학교 등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 승진 가산점이 필요한 사람 등이 한능검 응시자의 대부분일 것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응시자들을 훑어보며 저 중에 나같이 그냥 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시험 자체가 궁금했고, 내가 아직까지 한국사를 잘 알고 있는지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일종의 역사 덕후력 고사인 셈이다.

원래는 8월에 시험을 볼 생각으로 교재를 한번 훑었었고 일정을 놓쳐 10월 시험에 접수했었다.

그때 몰려오는 일정들로 시험을 포기하고 12월 시험에 다시 접수해서 보게 된 것이다.

시험을 뒤로 미룰 때는 공부를 할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시험 당일 아침에 요약본을 펼쳐 시험 직전까지 눈으로 읽은 벼락치기가 공부의 전부였다.


시험을 보면서도 나 자신에게 어이없다고 느끼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시험 문항수도 모르고, 시험 시간도 모르고 시험을 쳤다.

수험표와 신분증, 컴퓨터용 사인펜과 요약본만 달랑달랑 겨우 들고 간 나답게 시험에 대한 정보를 챙기지 못했다.

안내 방송에서 '시험은 80분 동안으로'라는 문구를 듣고 왜 80분이지 의문을 품었다.

10시까지 입실이라고 해서 20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리엔테이션으로 20분이 있는 것도 몰랐다.

시험지를 펼쳐서 쪽수를 확인했는데 문제수가 끝없이 이어지다 50에서 끝나는 것을 보고 놀랄 뿐이었다.


시험을 보는 태도부터가 글러먹었다.

그럴 수밖에.

재미로 놀러 간 거였으니까.



입시와 취업 등에 자격증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자발적으로 역사를 공부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자발적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될까.

결국엔 재미가 붙어야 하는데 시험이 재미를 생기게 할 수 있을까 싶다.


오지선다의 객관식 문제에서 고차원적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이 생길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웃기다.

나조차 벼락치기 공부할 때 요약본을 보고 헷갈리는 부분을 외우려고 했다.

지식을 외우는 것이 깊이 있는 사고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면서까지 역사에 관심을 제고하려는 발버둥이 서글프면서 한탄스럽다.

한편으로는 재미로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분명 더 있었을 거라는 기대를 품으며 시험과 공부가 즐거운 우리 사회가 곧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IB교육, 공립교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