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가 방송을 닮아 가는 시대

이용자의 일상으로 파고드는 OTT와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쓸모

by 이성민

이 글은 <방송작가> 웹진 2025년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원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와 글로벌 OTT의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글로벌 OTT와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협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SBS의 넷플릭스로의 콘텐츠 공급이다. 물론 그 전에도 제한적인 협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각 방송사들은 연간 한정된 분량의 드라마, 다큐를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에 공급해왔다. 그러나 웨이브와 지상파 3사가 기존에 맺었던 콘텐츠 독점 공급 계약이 2024년 9월로 만료된 상황에서, SBS를 시작으로 글로벌 OTT와의 협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SBS의 신작 콘텐츠와 선별된 구작 콘텐츠 들을 넷플릭스를 통해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과거의 명작인 ‘모래시계’를 보고, ‘TV 동물농장’과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이 글로벌 OTT와 기존보다 확대된 협력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표면적으로는 기존의 웨이브와의 독점 계약이 종료된 것이 가장 큰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다 근본적으로 미디어 산업의 변화 속에서 지상파 사업자와 OTT 서비스의 위상과 전략이 달라진 것이 가장 중요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 초기 시점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OTT를 오히려 시장에서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협력자로 바라보기 시작하고 있다.


OTT와 방송사,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다

상호 협력이 가능한 배경에는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먼저 방송사는 국내에서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수익의 비중에 있어서 실시간 방송을 통한 광고 수익은 축소되는 추세다. 플랫폼으로서의 방송의 위상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광고 수익의 원천이었던 소비자와의 접점을 방송사 스스로 만들기 어려운 상황에서, 콘텐츠의 판매 성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수익 구조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여전히 방송사가 갖고 있는 콘텐츠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선, 콘텐츠 투자의 효율을 높이고 상업적 성과를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OTT 서비스는 방송사에게 유의미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동안의 OTT와의 협력이 소수의 드라마 등의 글로벌 유통 기회의 확대 측면에서 이루어졌다면, 지금의 협력은 기존 콘텐츠의 활용 방식을 확대하는 측면이 강하다. 특히, OTT가 만들어낸 중요한 미디어 이용 습관의 하나가 오래된 작품에 대한 반복 소비의 확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SBS와 넷플릭스의 협력을 상징하는 작품으로서 ‘모래시계’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쌓여 있는 좋은 작품의 라이브러리를 갖추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선, 구작의 활용도를 높이는 일은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방송사에게 지금 필요한건 줄어든 광고 수입을 콘텐츠 성과를 통해 보완할수 있는 파트너이며, 글로벌 OTT는 신작 뿐 아니라, 오래된 작품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제작에 대한 투자대비 성과를 높여줄 수 있다.


글로벌 OTT 입장에선 지상파 방송사와의 협력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OTT 산업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OTT 서비스들은 구독자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해왔다. 유료 구독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이 중심이었던 초기 OTT 시장에서, 깊은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서사극(epic) 장르의 드라마가 주된 경쟁의 수단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OTT 산업이 초기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기존의 전략에 변화가 나타났다. 높아진 제작비의 상승, 사업자들의 적자 누적 등은 산업 전체의 위기 요인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OTT 서비스에 익숙해진 이용자들은 깊은 몰입을 요구하는 콘텐츠에 피로감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늘어나는 구독 들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OTT 사업자들은 유료 구독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광고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콘텐츠 투자 효율성을 높이고 구독자의 주목을 창출하기 위해 스포츠와 같은 보다 다양한 장르로 시선을 옮기기 시작했다.


결국 콘텐츠의 활용도를 높이려는 지상파 방송사의 전략과, 플랫폼으로서 이용자에게 기존보다 확장된 가치를 전달하려는 OTT의 전략이 만난 결과로서, 상호 협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OTT와의 협력을 통해 신작은 물론 기존 라이브러리의 상업적 활용도를 높일 수 있으며, OTT는 기존에 특정한 분야에 편중되어 있던 콘텐츠 라이브러리의 다양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강화해나가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광고의 이동이 말해주는 것: 이용자 일상으로 파고드는 OTT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OTT 서비스들이 광고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성장성을 만들기 위한 대안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는 선택은 이들이 만들어야 할 콘텐츠 자체의 특성에도 영향을 준다. 광고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구독형 모델과는 다른 필요를 만든다.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넓은 접점,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구작의 활용, 그리고 데일리한 루틴의 방송 콘텐츠의 활용은 시너지를 낸다. 지상파 방송사가 OTT 입장에서 매력적인 콘텐츠 확보를 위한 파트너로 부상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넷플릭스의 2025년 콘텐츠 라인업 발표를 보면 부분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라인업 중에서 소위 ‘밥친구’ 예능의 제작을 발표한 바 있다. 넷플릭스의 시청이 이루어지는 상황적 맥락 중, 식사를 하면서 1시간 내외로 볼 수 있는 가벼운 예능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론칭 초기에 ‘빈지뷰잉’, 즉 몰아보기를 할 수 있는 몰입력 높은 에픽(epic) 콘텐츠에 주력했던 것과 비교하면 달라진 전략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이제 넷플릭스는 보다 이용자의 일상 속에서 다양한 장면(scene)들에 녹아드는 생활형 플랫폼의 위상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OTT가 방송을 닮아가는 시대, ‘방송’의 경쟁력을 다시 묻다

글로벌 OTT 입장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기존의 ‘방송’의 모습과 닮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일상에 특화된 다양한 콘텐츠를, 광고라는 수단을 활용하며, 보다 넓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지향하는 것이다. 반면, 지상파 방송사는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이 약화되는 가운데, 콘텐츠 스튜디오로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방송’이란 단어 자체가 낡은 개념으로 느껴지는 시기에, OTT가 방송을 닮아가기 시작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OTT를 기존의 방송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던 몇가지 특수성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이용자는 각자 일상의 맥락에 맞는 콘텐츠 이용을 위해 OTT를 활용하고 있다. 이용자가 기존의 선형 편성에선 이탈했지만, 이들의 미디어 이용 습관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를들어, 이용자 입장에선 ‘밥친구’로서의 콘텐츠가 여전히 필요하며, 그 리듬은 1시간 남짓의 과하지 않은 몰입이 가능한 콘텐츠여야 한다. 여전히 비어 있는 영역들, 기존에 방송이란 매체가 우리의 일상 전반에 녹아들며 발전시켜온 다양한 장르적 전략들은 향후 OTT가 파고들 수 있는 핵심 대상이 될 수 있다.


기존에 이러한 일상의 매체 전략을 가장 잘 추진해왔던 주체는 다름 아닌 지상파 방송사다. 시청자의 일상의 리듬에 맞추어 다양한 이용자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편성해왔던 전략과 라이브러리의 특성은 그동안 ‘방송’이란 매체가 갖는 중요한 특성이자 강점이었다. 이용자와의 접점을 OTT에게 넘겨주고 ‘제작사’의 역할로 스스로의 위치를 바꾼다 하더라도, 그동안 쌓아왔던 방송사의 고민은 여전히 이 시대에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핵심 역량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다시 방송이 우리 일상 속에서 콘텐츠를 통해 해왔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는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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