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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Jan 16. 2017

VR경험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VR을 바라보는 문화적 관점

I. VR은 우리에게 질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주는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VR/AR/MR에 대한 산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성급한 기대와 실망이 공존하고 있다. VR 시장에 대한 예측은 관련 기기 출시가 예상된 2016년 초기 예측과 실제 기기 출시가 완료된 2016년 하반기의 예측에 다소 차이가 존재하는데, 시장조사 업체인 슈퍼데이터는 VR기기 관련 시장 규모를 16년 연내에 2차례나 예측 데이터를 수정한 바 있다. 이러한 예측 변경의 원인으로는 오큘러스 및 HTC의 헤드셋들이 제품 출하 지연 및 연기, 대중들의 VR에 대한 낮은 관심도 등이 지목된다(Ben Parfitt, 2016.4.20.).

VR은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인가, 아니면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지 못한 소수의 취미로 남게 될 것인가. 2016년은 VR에 대한 장미빛 기대로 가득 찼다면, 2017년은 VR이 제2의 3D TV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실제 구매 하는 가능한 소비자 대상 기기들이 2016년 하반기에 일제히 출시되면서 가능성이 아닌 실적으로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성장동력들이 캐즘(Chasm)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사라졌던 경험들은 사람들에게 섣불리 성공을 이야기하기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VR이 3D TV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3D TV가 시각적 재현 기술의 단일한 발전의 제한된 결과였던 것에 비해, VR은 다양한 감각의 재현은 물론 이용자의 신체적, 인지적 행위의 반영(즉 구성적 이용)을 포함하는 새로운 미디어 이용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성공 혹은 실패의 관점으로만 VR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VR이 가져올 경험 양식의 변화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VR 경험이 과연 우리에게 질적으로 기존 미디어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지, 그렇다면 그 속성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물론 이를 위해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HMD를 활용한 VR 기기와 관련 사업이 VR 경험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큘러스 등 HMD(Head Mounted Display) 기반 기기들의 사업적 성공 혹은 실패가 VR 전체의 성공 혹은 실패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단 VR을 구현하는 방식은 HMD가 유일한 방식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다수의 프로젝터를 활용하여 공간 전체에 영상을 투사하는  CAVE(CAVE Automatic Virtual Environment) 방식이 있으며, Screen X와 같은 다면 영상을 활용한 서라운드 뷰잉(Surround Viewing) 방식도 VR의 일종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또한 가상현실을 구성하는 것은 시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 감각의 재현이며, 이 경우 소위 4D 어트랙션으로 불리는 3D 입체영상과 연동된 시뮬레이터 기기들 역시 VR을 구성하는 중요한 하드웨어 들이다. 기존의 HMD 기반의 VR 기기들 역시 다양한 센서 기술의 활용을 더해 가며 점차 진화하고 있다. 즉, VR은 단순한 시각적 재현 기술의 발전형이 아니며, 그런 점에서 시각과 시선의 반영만을 제한적으로 담고 있는 HMD 기기들(특히 최근 난립하고 있는 모바일 기반 HMD 들)을 VR의 전부로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협소한 시각인 것이다.


콘텐츠는 항상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형식 없는 내용은 없듯이, 기술적 특성이 그 형식적 한계를 구성해나가는 가운데 이를 토대로 새로운 내용적 실험들이 이루어져 오며 콘텐츠가 진화해온 것이다. 모든 콘텐츠는 당대의 최신의 기술들의 조합 속에서 새롭게 길을 열어가며 발전해왔다. 영화는 사진술과 영사술, 그리고 녹음 기술의 발전을 흡수하며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또 컬러영화로 진화하며 새로운 장르와 경험을 만들어 왔다. 디지털 컴퓨팅 기술과 입출력 장치의 특성을 반영하며 발전한 게임 역시 미디어 기술의 조합이 만들어 낸 새로운 콘텐츠 장르의 사례다. VR 경험을 구성하는 기술들이 진정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반영하며 발전하고 있다면, 이들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경험양식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즉 VR 경험이 질적으로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하려면, 그 기술적 특성에 대해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2장에서는 주로 재현과 인식(구성)이라는 미디어 기술의 변화를 토대로 기술적 차원의 변화에 기초하여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용자 경험의 본질적 특성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3장에서는 현재 발전하고 있는 VR 기술/경험들의 유형을 구분하고, 이들의 향후 전망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VR 경험에 대한 문화적 관점의 논의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II. 콘텐츠 경험 양식의 변화와 VR 경험의 본질


콘텐츠와 관련된 미디어 기술과 그 이용방식의 발전은 콘텐츠 ‘융복합’화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콘텐츠의 융복합화는 기술과 인간 상호작용의 두 축에서의 발전의 심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데, 기술 발전의 축은 크게 재현-연결-인식 기술의 발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인간 상호작용의 축은 크게 수용-참여-구성의 발전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김규찬, 2016.10.25.). 이를 정리하면 [그림 1]과 같다.


                     

[그림 1] 콘텐츠 융복합의 두 축

먼저 전통적인 미디어-콘텐츠는 시각, 청각 등의 감각성에 기초하여 현실을 재현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진화했다. 신문(시각), 라디오(청각), TV(시-청각) 등의 ‘매스미디어’의 발전과 이를 통해 전파된 콘텐츠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대부분 일방향의 전달 방식을 취했으며, 사람들을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콘텐츠와 상호작용했다.


다음은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미디어 간 연결과 통합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재현 기술들이 디지털 미디어로 통합되고,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간의 연결이 확대되는 방식의 진화가 나타났다. 이때 콘텐츠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네트워크를 통한 ‘연결’을 활용한 다양한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일방향적인 수용을 넘어서는 상호작용의 방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센서와 데이터 분석 등 인식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물리적-신체적 활동이 콘텐츠 자체에 반영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새로운 콘텐츠와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인식 기술을 통한 상호작용 방식을 구성(construction)적 경험의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콘텐츠 융복합화의 흐름 중 VR 경험과 관련해서는 주로 재현 기술과 수용 방식의 경험, 그리고 인식 기술과 구성 방식의 경험의 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현(수용)과 인식(구성)은 주로 인간의 감각적 측면과 관련된 변화라면, 연결은 네트워크라는 인간의 사회적 속성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VR 기술이 주로 인간의 신체 감각과 관련되어 집중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여기에선 재현(수용)과 인식(구성)의 측면에서 그 경험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재현-수용

먼저 재현은 우리가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현실의 여러 요소를 전달하는, 즉 매개하는 미디어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콘텐츠의 진화는 주로 이러한 재현 기술의 발전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시각적 재현은 단색의 이미지의 전달에서 채색, 원근법의 발전과 함께 발전했고, 이후 동영상의 발명을 거쳐 점차 시각적 스펙터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3D 영상은 이러한 시각적 재현 기술의 발전의 흐름 안에 놓여 있다. 기존의 영상이 2차원 평면에 현실을 부분적으로 재현해왔던 것을, 실제 우리 시각이 지각하는 방식과 유사한 3차원적인 재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3D TV는 사실상 시각 중심의 재현 기술의 선형적 발전의 결과이다. 다만, 연결이나 인식 등 다른 기술적 발전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로는 보기 어렵다. 재현 기술은 근본적으로 일방적 ‘수용’ 방식의 상호작용과 관련되어 있다. 3D TV가 아무리 실감나는 영상을 우리 눈앞에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수동적으로 그 영상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시선을 돌리거나 신체를 움직이는 등의 행위를 하면, 그 3D 경험의 전달력이 약화된다는 점은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낸다.


시각적 재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것에 비해, 다른 감각에 의존하는 재현들은 다소 느리게 발전되어 왔다. 상대적으로 청각은 그나마 시각적 재현의 발전 과정과 어느 정도 호응해왔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후시 녹음에서 동시 녹음과 스테레오 재현으로, 아날로그 녹음에서 디지털 녹음 등으로 발전한 청각적 재현은, 점차 고음질화와 디지털화를 통해 현실의 원음에 가깝게 전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해 왔다. 반면, 촉각이나 신체 감각 등의 재현은 상대적으로 산업적 수요의 측면에서 그 발전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 4D 라이더와 같이, 흔들림을 재현하는 어트랙션이나 시뮬레이션 기기들은 이러한 신체 감각의 재현 기술 발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재현의 기술은 현실의 감각적 특성을 우리에게 매개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를 통해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은 바로 ‘수용’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감각을 일방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무리 현실과 가까운 방식의 재현이라 할지라도, 실제 현실에서의 경험이 갖고 있는 중요한 특성 들을 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VR 경험이 집중적으로 복원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인식 기술을 활용한 ‘구성’적 수용, 혹은 구성적 경험의 측면이다.


2. 인식-구성

구성적 경험은 우리의 행동과 의도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경험을 의미한다. 나의 의도와 행동이 매개된 현실(가상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 즉 나의 능동성을 확인하는 경험이 바로 ‘구성’적 경험인 것이다. 재현은 미디어가 나에게 전달하는 자극이라면, 구성은 내가 미디어에 전달하는 자극을 확인하는 경험이며, 이는 다양한 ‘인식’의 기술을 통해 구현된다.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재현을 전달하는 장치가 ‘출력 장치’에 해당한다면, 구성적 경험을 매개하는 장치(기술)는 ‘입력 장치’에 해당한다. 출력 장치는 시각적 재현(디스플레이)과 청각적 재현(사운드)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면, 기존의 입력 장치의 발전은 키보드, 마우스, 조이스틱 등 논리적 방식의 입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입력장치의 발전은 그동안 그 발전이 다소 정체되어 있었다. 조이스틱과 마우스, 그리고 부분적으로 시뮬레이터용 입력 기기들(e.g. 핸들 등)은 인간의 행동 정보를 미디어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지난 수십년 간 큰 틀의 진화가 이루어지진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입력장치인 키보드는 인간의 행위를 디지털화하여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고, 여전히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 등의 미디어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인간의 행동 데이터의 물리적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꽤 오랫동안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재현 기술의 발전이 주로 ‘수용’을 전제로 한 콘텐츠 장르의 발전을 가져왔다면, 구성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조작’(입력)을 전제로 한 콘텐츠의 탄생을 가져왔다.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게임은 기존의 콘텐츠가 수동적 수용, 즉 시청과 감상을 전제로 한 장르였던 것에 비해, 이용자가 직접 게임 속에 마련된 현실에 다양한 입력 장치들을 통해 개입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의 위상은 기존의 ‘수용자’에서 ‘이용자’(유저)로 점차 변화해왔고, 수용 중심의 미디어 콘텐츠와는 다른 경험의 문법을 발전시켜왔다.


VR 경험이 기존의 미디어 콘텐츠와는 다른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인식 기술을 통한 구성적 경험의 진화와 관련되어 있다. 가장 대중적인 VR 기기인 VR HMD는 1차적으로는 두 눈 앞에 3차원의 영상 정보를 전달하는 장비이지만, 동시에 자이로센서 등을 활용한 ‘시선의 반영’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영상이 그 행위를 반영하여 다른 곳을 보여주는 것이 HMD가 제공하는 경험의 핵심인 것이다.

최근 출시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PC 기반 VR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VIVE 등은 HMD에 더하여 추가적인 인식(센서)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두 기기 모두 모션 센서 기능을 가진 핸드 컨트롤러를 활용, 이용자의 손동작이 가상 현실 안에 반영될 수 있게 하고 있다. 또한 적외선을 활용한 룸스케일 센서(라이트하우스 센서)를 통해 이용자가 물리적으로 속해 있는 공간의 넓이를 가상 현실 안에 반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센서 기술, 즉 공간 및 행동을 ‘인식’하게 해주는 기술들은 실제 이용자의 움직임을 가상현실 안에 반영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이용자가 그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행위를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그림 2 참조). 바로 이 지점에서 VR 경험은 3D TV의 재현 중심의 수용적 경험과는 질적으로 분명히 구분되게 된다.

[그림 2] Steam VR Tracking Base Station 개념도

(출처: 스팀 홈페이지)


3. 미디어의 사회적 사용의 형태와 VR의 열린 가능성

그렇다면 인식 기술을 통한 구성적 경험을 특징으로 하는 VR 경험은 과연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콘텐츠의 융복합화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의 역사와 콘텐츠의 역사를 단순화시켜 이해할 때, 컴퓨터의 발명과 인터넷의 발명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수동적 수용과 재현 중심의 미디어 콘텐츠를 구성과 참여 중심의 콘텐츠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해왔다. 이러한 기술적 변화는 사람들의 미디어 이용의 방식, 콘텐츠 수용의 방식을 변화시켜 왔다.


콘텐츠의 융복합화의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낼 때, 그것은 ‘캐즘(chasm)’의 단계를 뛰어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가져다준다. 소위 ‘킬러 콘텐츠’가 탄생하며 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상호작용의 방식이 급속히 대중화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경험을 ‘연결’ 기술에 기초한 ‘참여’적 상호작용의 단계에서 확인한 바 있다. 바로 인터넷 시대의 게임과 소셜미디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 게임 산업 발전의 신호탄이었던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기존의 게임에 연결 기술(인터넷)이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참여적 이용을 더하여 만들어낸 MMORPG라는 새로운 콘텐츠였다.


소셜미디어 역시 연결 기술의 발전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콘텐츠의 영역이다. 재현-수용과 인식-구성이 주로 인간의 감각적 측면의 입력과 출력에 해당한다면, 연결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연결은 바로 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 인터넷의 발전은 사람들의 사회적 연결 자체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 그 자체를 콘텐츠로 발전시켜온 것이다.


지금까지 VR 경험에 대한 논의는 주로 ‘새로움’ 그 자체의 효과만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신기 효과’(novelty effect)의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그 담론의 주도권이 주로 장비를 판매하는 하드웨어 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VR은 실제 그 기술적 특성을 어떤 방식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낼지에 대한 고민보다, CPU, GPU, 센서 등 장비 판매를 촉진해서 기존의 성장 정체를 돌파하려는 산업적 필요가 앞서 있었다. 하드웨어 사업자들이 만들어낸 장밋빛 전망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는 지금은 한편으론 실제 이용자가 접근 가능한 VR 기기가 점차 보급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아직 VR은 그 경험의 주된 성격과 방식이 결정되지 않은, 열린 가능성의 매체이자 콘텐츠이다. 진짜 VR 경험이 어떤 가치를 가질 것인지에 대한 탐구는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변용되어가는 콘텐츠의 특성은 미디어 이용의 ‘사회적 사용의 형태’(social use of media)와 관련되어 있다. 한 기술은 그 자체의 성격에 의해 그 이용의 방식이 결정되기보다, 그 생산, 유통, 사용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선택에 의해 그 사회적 사용의 형태가 결정된다(강명구, 1995). 기술적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떠한 사회적 이용의 계보 속에서, 어떤 사회적 필요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그 형태가 결정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Ⅲ. VR 경험의 다양한 방식과 발전 방향


VR 경험의 발전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하려면, 현재 나름의 사용의 형태가 형성되고 있는 영역들을 관찰해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오늘날 VR이 발전하고 있는 방향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소셜미디어(SNS), 게임, 시뮬레이션, 그리고 저널리즘이 대표적이다.


소셜 VR

첫 번째는 페이스북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셜 VR이다. 주로 360도 동영상과 사진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 일반 유저가 손쉽게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매개하는 것은 주로 현장 경험의 확장이다. 사진은 촬영자의 관점이 반영된 선택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360도 동영상은 그러한 관점 선택의 권력을 수용자에게 넘겨주는 방식이다. 어디를 주목할지, 어디를 주로 볼지를 정하는 것은 이제 촬영자가 아닌 수용자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셜 VR은 재현되는 시각적 감각의 범위를 확장한 것인 것과 동시에, 수용자의 ‘시선’이 반영될 수 있는 방식의 ‘구성적 ‘기술의 발전의 결과를 안정된 SNS라는 연결 기술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 VR

다른 하나의 경향은 VR 게임이다. PS VR, HTC VIVE 등 PC 플랫폼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들은 게임의 전통 속에서 재현과 구성 기술의 발전을 수용하고 있다. HMD는 3D 영상의 경험에 이용자의 ‘시선’이 반영되는 재현을 구현하는 장비이다. 따라서 시각적(청각적) 재현의 발전형에 시선의 반영이라는 구성 기술이 도입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게임은 구성적 수용과 참여를 전제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VR HMD와 장르적 친화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시선의 반영만으로는 새로운 게임성, 즉 수용의 방식이 만들어지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것들이 바로 신체적 행위를 반영하는 센서 기술이다. 예를 들어 HTC Vive는 룸스케일 센서를 활용하여 이용자가 속한 위치를 인식, 이용자의 이동을 게임의 세계 안에 반영한다. 여기에 스틱 형태의 컨트롤러를 통해 이용자의 손짓을 게임 세계 안에 반영한다. 따라서 ‘칼싸움’ 같은 행위를 직접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게임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과거보다 구성적 측면에서 몇 단계 진전된 경험을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다. 다만, 게임 세계 안에 실제 이용자의 신체를 재현하는 것은 아직 한계가 있으며, 많은 하드웨어 제조 기업들이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VR 시뮬레이션

마지막 영역은 ‘시뮬레이션’의 발전형이다. 게임 장르로서의 시뮬레이션도 있지만, 더 넓은 의미에서는 ‘가상 훈련’의 영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존의 비행 시뮬레이터나 운전 시뮬레이터, 사격 시뮬레이터 등 실제 훈련의 위험성과 고비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이 바로 가상훈련 시뮬레이션 분야이다. VR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기존에 시뮬레이터 방식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몰입감을 HMD 및 다양한 인식 기술의 발전 결과를 반영하여 개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 3가지 영역 각각에서 VR은 어떤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소셜 VR의 경우, SNS 이용자의 ‘공유’ 욕구의 확장이란 측면이 있다. SNS에서 공유되는 내용 중 핵심적인 것은 이용자 경험의 감각적 재현인데, 그 기술은 텍스트에서 이미지, 동영상으로 점차 발전해왔다. 또한 위치정보와 결합된 ‘체크 인’과 같은 현장성의 공유 방식 역시 발전해왔고, 이는 Live 기술과 결합하며 발전하고 있다. 360도 동영상/이미지는 이러한 ‘현장성’의 강화를 돕는다. 다만, 시선의 반영만이 부분적으로 동원될 뿐, 근본적인 콘텐츠 소비 양상을 변혁할만한 방식은 (아직은) 아니다. 생방송이 현실감이 높은 이유는 ‘지금 그곳’이란 표지가 주는 효과 덕분인데, 360도 이미지는 이를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모바일 HMD에 기반한 SNS 플랫폼을 통한 소셜 VR은 구성적 경험의 측면에서 완전히 질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보기엔 조금 이른 측면이 있다.


VR 게임은 기존에 키보드, 마우스, 조이스틱 등을 통해 영향을 주었던 게임의 세계에 나의 신체적 행위가 반영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기술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러한 ‘반영성’의 감각이 주는 몰입감을 중심으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렇게 반영되는 것이 주로 ‘신체적 감각’이라는 것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임 세계에 영향을 주는 방식은 인지적, 논리적 방식도 있고, 이는 키보드나 마우스가 더 축약적으로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신체 감각의 반영에 집중된 새로운 장르가 VR 게임에서는 본격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오프라인 VR 체험방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장르 중 하나가 고층 빌딩에서 외나무다리를 타는 경험(그림 3 참조)이란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드러내는 사례다.

[그림 3] 일본 VR Zone의 ‘Project I Can’ 시연 장면

(출처: Tokyo VR Zone ‘Project I Can’ Trailer 캡쳐)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VR의 가장 큰 기여는 가상적 재현의 ‘소프트웨어화’이다. 기존에는 모든 재현을 하드웨어적으로 새롭게 구성해야 했다면, 이젠 소프트웨어적인 재현만으로도 기존의 경험에 근접한 전달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비용적 측면에서의 이득을 줄 뿐 아니라, 기존에 비용적 제약으로 시도되지 못했던 다양한 방식의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해준다. 다만, 이는 앞서 논의한 게임적 경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수렴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VR 저널리즘

이러한 변화 속에서 당연히 전혀 새로운 방식의 경험이 창출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최근 VR저널리즘의 시도는 이런 측면에서 흥미롭다. ‘프로젝트 시리아’가 대표적인 사례다(박희창, 2015.4.21.). 프로젝트 시리아는 VR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엠블러매틱 그룹이 3만 달러(약 3200만 원)를 들여 개발한 헤드셋 ‘아테나(ATHENA)’를 통해 경험하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VR 콘텐츠로, 모션캡쳐 카메라를 활용해 이용자의 움직임을 인식, 3D 공간에 재현된 시리아 거리를 이용자가 직접 걷고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그림 4).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테러현장의 모습을 재현한 가상현실 장면에 촬영 당시의 영상과 소리를 결합시켜 현장감을 더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실제 사건의 현장 안으로 이용자가 들어가게 하여, 사실상 가상적 ‘목격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림 4] VR 저널리즘 사례인 ‘프로젝트 시리아’의 한 장면

(출처: 게임플랫폼 Steam의 Project Syria 소개 페이지)


이렇게 취재를 통해 사건 현장이나 전쟁 등 참사의 현장 등을 VR로 재현하는 사례의 경우, 체험자에게 기존의 저널리즘 형식으론 주기 어려웠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앞서 논의한 사례들이 주로 신체적 감각에 주목한 것이라면, 이 경우는 이러한 신체적 참여감에 기초한 감성적 반응의 매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가상적 경험이 심리적 외상(trauma)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재난이나 참사의 경우, 일반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이를 전달받는 경우에도 2차적 심리 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거나, 이로 인한 정신적 건강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Ben-zur et al., 2012). 매스미디어를 통한 사실의 전파나 현장 영상의 시청만으로도 심리적 외상 경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훨씬 몰입적인 방식의 경험인 VR 저널리즘의 영향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에 대해서도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Ⅳ. 나가는 글


콘텐츠는 보통 이야기 산업으로 간주된다. 이야기는 내러티브 구조를 갖는데,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방식은 매체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는 시각적 감각을 덧입힘으로써 기존의 텍스트 중심의 이야기와는 다른 매개의 전략을 취했다. 일반적으로 게임은 내러티브적 경험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그것을 통해 ‘경험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VR은 여기에 더 나아가 신체적 감각의 인식을 통한 구성적 경험을 통해 그 이야기, 혹은 감성적 매개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은 문화적 경험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언어화되기 어려운 우리 경험의 여러 질적 측면들을 매개하는 것으로 예술을 보았다. 다양한 예술, 혹은 미디어 콘텐츠의 형식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경험을 매개하고 조직화한다. 언어적 매개, 혹은 시각적 매개 만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우리의 경험과 감각들은 이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발전을 통해 저장되고 공유되며 전파될 것이다.


VR은 특히 신체적 동작의 반영의 감각이란 측면에서의 몰입적 참여와 구성적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콘텐츠 경험의 방식이다. 그동안 VR에 대한 논의는 주로 기술적 관점, 그리고 경제적(산업적) 관점에서만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다양한 방식의 VR 경험에 대해 문화적 관점에서 더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이론적 필요가 아닌, 산업적 필요 때문에도 그러하다. VR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VR의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이 열어줄 경험 양식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적 사용의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기술은 아직 막연한 가능성의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VR이란 기술적 가능성이 우리 사회문화적 맥락 안에서 어떤 방식의 사용의 형태, 경험의 형태를 만들어갈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2017.1.19에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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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창(2015.4.21.). “온몸으로 느끼는 시리아내전 참상… 그게 VR 저널리즘 경쟁력”, 동아일보.

Ben Parfitt (2016.4.20). SuperData lowers VR revenue forecast for a second time, MCV.

Ben–Zur, H., Gil, S., & Shamshins, Y. (2012). The relationship between exposure to terror through the media, coping strategies and resources, and distress and secondary traumatiz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Stress Management, 19(2), 13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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