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함을 나눌 기회를 주지 않은 실수, 그리고 평행세계
1. 준비 된, 그러나 예상을 넘어선 후폭풍
캐리 앤 토이즈는 크리에이터 교체라는 예견된 일들을 가장 잘 준비한 MCN 기업 중 하나였다. 영상의 장르를 다양화 하면서 크리에이터를 늘리고, 이들을 캐릭터화 했으며, 사업을 다각화 해서 '강혜진' 씨에 대한 의존도를 지속적으로 낮춰왔다. 채널 개편 영상을 진행하는 엘리의 존재는 연속성 있는 세대 교체를 위한 그들의 고민과 노력을 대변해준다(실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Play'를 최근에 엘리가 진행하고 있기도 했다).
케빈의 교체는 아무 말 없이 (..) 진행되었으면서 캐리는 20분에 달하는 영상으로 개편을 설명한 것 자체가 이 일이 작지 않은 변화임을 미리 알고 대비 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은 생각보다 더 커 보인다.
2. 서운함을 나눌 기회를 주지 않은 실수
'후폭풍'을 보며, 사실 아이들 보다, 엄마-아빠들의 반응이 더 열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당장 캐리의 교체를 서운해 하는 건 5세인 내 딸 보다 나랑 아내다. (아이는 아직 '교체'란 의미 자체를 잘 받아들이지 않았음) 엄마 아빠들은 전형적인 유튜브 세대라기 보다, 기존의 영상 미디어 경험을 토대로 아이들과 함께 유튜브를 시작하는 세대다. 캐리는 유튜브에 '첫 정'을 주게 만든 존재고, 그렇기에 수많은 뽀미 언니와 보니하니의 교체를 보아왔음에도 그 변화를 인정하는게 감정적으로 쉽진 않다.
그런 점에서 '개편 영상'의 강혜진 씨의 인사는 여러 모로 아쉽다. 일단 짧았고, 억지로 안 서운한 척 신나게 은근슬쩍 흘려 보내려는 영상의 의도와 실제 캐리-시청자의 감정적 캐미가 맞지 않았다. 그냥 차라리 한 편 정도는 단독으로, 강혜진 씨도 울고 나도 울고... 서운함과 아쉬움과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뭐 그런 영상이 따로 있었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유튜브인데 못할 이유 뭐 있나!!!) 강혜진 씨의 울컥하는 영상이 많은 오해를 낳은 부분도 아마 이런 지점이었을 거라 생각한다(애초 기획에 동의했더라도, 1대 캐리 입장에서 시청자들에게 발화하는 순간 울컥하지 않을리가 없지 않나.) 소셜 인터랙션을 기본으로 하는 MCN의 '개편' 영상의 전략은 조금은 달라야 했던 것 같다.
3. 캐리는 대체 가능한가
원조와 2대는 항상 교체에 잡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어쨌거나 강혜진 씨는 '오리지널'을 만들었기에, 다음 캐리는 부분적으론 그 캐리를 흉내내는 가운데 자기 영역을 만들어야 하고, 당연히 끊임없이 비교 당할 수 밖에 없으며, 초기에 어느정도 위축될 수 밖에 없다.(심지어 오리지널 캐릭터였던 엘리 조차 그랬다)
문제는 애초에 '캐리'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고민일 것이다. '문방구 집 딸'이라는 자기 스토리를 가진, 장난감 가지고 노는 걸 스스로 즐기는 '강혜진'이라는 퍼스낼러티가 캐리의 매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그 친오빠 케빈과의 캐미가 한동안 영상을 보는 중요한 매력이었다. 당연히 그런 미세한 지점들은 '재현'할 수 없다. 캐리 특유의 목소리 톤(안~녀엉~!)은 흉내낼 수 있고, 장난감 놀이 영상 장르도 어느 정도 정착되어 전혀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각인된 '캐리'의 오리지널리티는 한동안 2대 캐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아무리 캐릭터화 한다고 해도 대체 불가능한 지점들이 있는 것이다.
대안은 전혀 다른 캐리가 되는 방식이 있다. 이미 케빈이 그렇다. 친남매 캐미의 재현이 불가능한 2대 케빈은, 과학 실험 중심의 괴짜 캐릭터로 변화했다. 장난감 놀이는 엘리가 대신하고 있다. 개편 영상에서 2대 캐리는 다른 것이 아닌 '춤'을 보여줬다. 어찌보면 뮤지컬에 특화된 크리에이터를 뽑은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당장의 후폭풍은 어쩔 수 없더라도, 캐리앤토이즈의 향후 성패는 2대 캐리의 캐릭터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가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4. 유튜브에서의 크리에이터 교체: 평행세계?
개인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것은, 실시간 방송 채널이 아닌 영상 아카이브로서 유튜브에서 크리에이터를 교체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만들어낼 것인가란 점이다. 캐리가 교체되었지만, 여전히 유튜브엔 강혜진 씨의 캐리 영상을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 나중에 2대 캐리의 영상이 쌓이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뒤로 밀려나긴 하겠지만, 한동안은 1대 캐리와 2대 캐리가 유튜브 채널 안에서 공존하며 경쟁할 것이다. 이걸 심지어 아이들이 본다... 대 혼란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론, 캐리 2명이 공존하는 평행 세계같은 이미지가 펼쳐지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캐리는 교체되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 강혜진 씨가 다른 캐릭터로 유튜브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면? 그땐 이 아쉬움, 서운함의 정체가 좀더 분명해질까? 평행 세계에서 '하차'란 무엇인가? 스티브 로저스와 윈터솔져가 1,2대 캡틴아메리카로 동시에 떠돌아 다니는 마블 코믹스처럼, 그 자체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오진 않을까?
어쨌거나, 정리하면, 캐리앤토이즈는 많은 준비를 했지만, (당연히) MCN-유튜브 생태계에서 이런 일이 처음이다 보니, 그 세계에 맞는 문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지켜보며 고민해볼 여지가 많은 케이스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