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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Apr 15. 2017

한국 '캐릭터 산업' 역사에 대한 단상

한국에서 캐릭터 완구-애니메이션의 결합이 주류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캐릭터 산업"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콘텐츠 분야 통계에서 늘 해외 통계와 엇나는 부분이 바로 '캐릭터산업'인데, 해외에선 이를 '라이선싱 산업'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라이선싱 산업의 일부인 엔터테인먼트IP 라이선싱 부분을 '캐릭터 산업'으로 정의한다. 그 시작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문제는 당시 '둘리' 정도를 제외하면 '라이선서'라고 내세울만한 원천IP 보유자가 적었다는 것이다.


캐릭터 산업의 전담부서가 어디가 될 것인가를 두고 상공부(지금의 산자부)와 문화부가 경쟁했던 점도 흥미롭다. (캐릭터협회는 상공부 산하로, 캐릭터문화산업협회는 문화부 산하로 각각 만들어졌던 것이 단적인 예다.) '캐릭터 산업'이 어떤 산업인지 정의하는 단계 부터가 시작인데, 당시 주요 플레이어가 '팬시' 상품을 만드는 디자인 그룹이나 문구 기업(바른손 등)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 디자인의 일부로 이해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그것이 상공부가 이를 주도하려 했던 근거였다. 물론 결과적으로 문화부의 소관 산업으로 정리가 되었고, 캐릭터 산업은 '문화 산업'의 일부로 자리잡아갔다.


더 재미있는 것은, 사실 그 뒤의 일이다. 일본의 캐릭터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결국 완구회사의 스폰서십을 기초로 한 '제작위원회' 시스템이다. 일본은 만화-애니 등 콘텐츠 산업의 폭발적 성장 덕에 이러한 '연합'이 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은 콘텐츠진흥원이라는 정부 기구의 후원 하에 이러한 체계가 서서히 만들어졌다. 시기적으로, 90년대 말과 2000년대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에겐 재앙적인 기간이었는데, 통합방송법으로 국산 애니메이션 쿼터가 사라지면서 TV 애니의 시장이 급격히 줄었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극장용 애니에 대한 기대 마저 접어야 했으며, 미국은 토이스토리를 필두로 3D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며 공세를 예고하고 있었다.


역사는 항상 당시의 우려와 기대를 뛰어넘어 발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뽀로로라는 존재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거다. 뽀로로는 한국의 캐릭터-애니메이션 산업을 뒤흔든 가장 핵심적인 전환점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방향은, 국가(콘텐츠진흥원)의 후원 하에, 캐릭터 산업과 애니메이션 산업이 긴밀히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애니-완구 결합이 당연시 되는 영유아 캐릭터-애니메이션의 주류화다.


어린이들이 국산 애니를 즐겨보게 되었다는 점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은 애니메이션 분야의 성공적인 '수입대체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다. 심지어 하청 중심의 산업 구조를 창작 중심의 산업으로 바꾸어내기도 했다. 다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작품 자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근거로 생산되는 유럽식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라이선싱 산업을 전제로 기획되는 일본식 시스템을 참조한 혼종적 결과물이다. 아직은 가설적인 주장이지만, 2000년대 이후 국가의 문화산업 정책이 만들어낸 가장 큰 영향은, 캐릭터 산업을 새롭게 정의한 것, 그리고 시장 개방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위기를 맞이한 애니메이션 산업을 '문화 콘텐츠'란 이름으로 결합하도록 유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뽀로로를 만든 건 아이코닉스-오콘이지만, 뽀로로 같은 산업을 주류로 만든 건 국가의 공이자 과다.


참고로, 1999년 기사를 공유한다.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91213/1pbccd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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