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디자인은 사업의 부분일 뿐이다.
캐릭터 디자인은 캐릭터 사업의 부분일 뿐이다. 핵심은 상품이자 브랜드로서 캐릭터의 생명력을 '관리'하는 것이다. 매니지 먼트가 필요한 부분이다. 캐릭터 산업을 위해서는 좋은 (유무형) 상품이 필요하고,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는 관리가 필요하다. 제품 기획의 퀄리티가 이 단계에서 중요하다. 이를 생태계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좋은 라이선서도 있어야 하지만, 좋은 라이선시도 필요하다. 최근엔 전통적인 머천다이징 단계를 넘어선 '콜라보'가 늘어나고 있다. 캐릭터 상품의 범위에 대한 기존 통념이 깨지고 있는 것이고, 일종의 '융복합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키덜트 시장의 성장, 팬덤 문화의 확장, 경험의 중요성 확장, 디지털 문화의 확장 등이 있다. 캐릭터는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매개다. 아바타 같은 것, 나를 표현하고, 내 욕망을 투사하는 대상이다. 과거에는 이를 몇몇 '스타'가 독점했다면, 지금은 여러 단계에서 분할되고 있다. 거대 서사의 해체 이후,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담아낼 다양한 '토템'들을 원한다. 캐릭터는 그 과정의 일부를 담당한다. '물신'으로 볼 수 있는데, 캐릭터건 아이돌이건 핵심은 자신의 욕망과 정체성이다. 당연히, 여기엔 경험의 문제가 포함된다.
캐릭터 이미지 관리에 있어서 핵심은 철저한 전략(아이덴티티 관리), 그리고 아트 컨펌(Art confirm), 그리고 생명력 제고다. 캐릭터를 일종의 브랜드로 본다면, 브랜드 관리 역량이 캐릭터 전문회사에 필요하다. 이런 점에선, 아이돌 기업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란 생각이 든다. 그들의 업의 본질이 '매니지먼트'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선 브랜드, 셀레브리티 매니지먼트는 본질에서 캐릭터 매니지먼트와 만나고 있다.
캐릭터의 가치는 미디어 기업 홀로의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들을 소비하는 수용자의 전유 행위가 그 가치를 창출한다. 따라서 캐릭터 산업에서 이익을 창출되는 방식은 기존의 미디어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수용자의 전유 행위를 창출하는 것이 미디어 기업의 역할이고, 이는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를 유인하기 위해 미디어 상품을 활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콘텐츠는 플랫폼 생명력의 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고, 개별 콘텐츠는 거대한 전유의 유니버스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캐릭터에 기반한 미디어 기업은 수용자의 '주목'을 토대로, 수용자의 전유 활동을 자산화 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가치를 높여 부가적인 수익을 만들어낸다. 수용자는 자신의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캐릭터 자산을 전유하는 산업 자본의 상품들에 직접 비용을 지불한다. 캐릭터 MD상품의 소비는 자신들의 활동이 만들어낸 자산 가치에 대한 자기 지불의 형식을 띄는 것이다. 이는 다시 기업-캐릭터의 자산 가치를 높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 자체로 돈을 벌기 어려운 한국적 상황에서 유용한 후원 모델이 된다(특히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 모델이 매우 중요하다). 콘텐츠 기업은 사람들의 전유 활동을 촉발하는 매개를 통해, 다른 산업 생산물의 소비를 촉진하고, 그 대가를 라이선싱의 방식으로 회수한다. 이 비중이 커질 경우, 콘텐츠 생산의 비용은 라이선싱을 통해 타 산업의 이익 일부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채워질 것이다. 단, 이 경우 콘텐츠의 유통은 플랫폼 사업자에 의존하게 된다. 한편으론 콘텐츠는 그 자체로 상품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산업의 수익 구조에 따라 콘텐츠의 가치는 달라지게 된다.
'뽀로로'의 두 주인인 오콘과 아이코닉스의 갈등은 이런 수익 구조 차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중요한 사례다. 오콘은 콘텐츠 제작사다. 아이코닉스는 캐릭터 자본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오콘은 뽀로로의 극장판 애니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아이코닉스는 TV판의 권리를 가지기에, 나머지 라이선싱 사업 대부분의 권리를 갖고 있다.) 뽀로로의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뽀로로를 매개로 한 상품 소비를 촉진하는 촉매라는 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아이코닉스는 최대한 뽀로로에 대한 경험을 수용자가 축적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면, 유튜브를 통한 콘텐츠 무료 공개는 결코 손해가 아니다. 그러나 오콘에겐 이러한 모델이 치명적이다. (오콘이 디보라는 자체 IP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손오공 같은 완구 회사가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모델은 이런 점에서 기존 제작사에게 매우 위험한 시그널이다. 안그래도 낮은 한국의 콘텐츠 가격(방영료)을 낮추는 압력이 되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비용이 점차 0으로 수렴하게 될 때, 결국 미디어 생산의 힘은 캐릭터 자산을 보유한 회사로 몰리게 된다. 다른 콘텐츠 기업들은 점차 이들 자산을 가진 회사에 종속된 하부 조직이 될 수 밖에 없다. 마블과 디즈니의 관계를 보라. 어떤 점에선, 마블의 영화는 뛰어난 팬의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이때 캐릭터 기업의 핵심 역량은 수많은 팬들의 작업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낼 수 있는 역량이라 할 수 있다. 데이터 베이스 소비의 결과로 더 큰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마블의 핵심 역량이기도 하다.
이 모델에서 '작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문화산업은 이런 점에서 '예술'과 근본에서부터 갈라서게 된다. 문화산업은 크리에이터의 활동과 소비자의 부분적 생산을 매개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며, 그 매개의 대가로 부를 축적한다. 이 모델을 가장 잘 운영해왔던 기업은 다름 아닌 IT 플랫폼 기업, 즉 카카오와 네이버다. 카카오 프렌즈와 라인 프렌즈의 인기는 이런 점에서 우연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핵심 역량이 캐릭터 산업에 잘 맞았던 것이다. 철저하게, IP(지식재산)의 관점에서 '매니지먼트'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