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소비의 핵심에는 '경험'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YouTube)를 보며 자란다. ‘뽀로로’를 보고 울음을 그친 아이들은 ‘타요’와 ‘폴리’ 등을 섭렵하며 점점 다양한 영상들을 만난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에 푹 빠진 아이들도 있고, ‘핑크퐁’이 만든 다양한 노래들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과거 보다 더 일찍, 그리고 더 다양하고 풍성한 콘텐츠를 경험하며 자라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만 즐기는 건 아니다. 부모도 함께 영상을 보게 된다.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다 보면, 어느덧 어른도 함께 넋 놓고 영상을 함께 즐기는 순간들이 온다. 장난감도 그렇다. ‘로보카 폴리’의 캐릭터 토이는 어른들의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마트에선 아빠들이 더 신나게 장난감 매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흥미로운 것은, 위에 열거한 콘텐츠들 대부분이 한국의 애니메이션, 혹은 교육용 영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유튜브의 소비 방식에 적절한 영상을 정말 잘 생산하는 나라 중 하나고, 특히 교육용 영상 콘텐츠의 측면에서 높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하자면 이렇다. 지상파 텔레비전이 주된 매체였던 시절, 우리의 시각을 책임 진 건 TV 애니메이션 역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일본의 콘텐츠였다. 지금의 30대는 ‘피구왕 통키’, ‘축구왕 슛돌이’, 20대는 ‘포켓몬스터’를 어린 시절의 핵심적인 콘텐츠로 떠올린다. 그리고 새롭게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디어스케이프(mediascape)’는 그 중심에 우리의 캐릭터들이 있는 것이다.
‘키덜트’란 단어는 이러한 캐릭터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캐릭터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피규어나 굿즈를 수집한 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어른들이 많아진 것이다. 키덜트를 겨냥한 캐릭터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캐릭터를 활용한 ‘콜라보레이션’의 범위도 완구, 문구를 넘어서 의류, 화장품 등 다양해지고 있다. 키덜트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의 필요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영유아 시장에 집중되어 있는 한국의 창작 캐릭터 산업을 성인 시장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육성’한다는 선언만으로 산업이 확대되는 것은 아니다. 키덜트 산업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무엇인지, 특히 캐릭터 상품 소비의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해야 한다. 사람들은 왜 캐릭터 상품을 소비하는가? 왜 어른이 되어서도, 캐릭터와 함께 놀고, 삶의 공간 안에 캐릭터를 함께 두려고 하는가?
최근 어른들에게 인기 있는 캐릭터를 보면, 크게 2가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캐릭터의 성공적인 복귀(?)다. 스누피, 도라에몽, 그리고 최근에 다시 돌아온 ‘월리를 찾아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의 공통점은, 핵심 소비층의 추억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에서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의 엉뚱한 해프닝을 본 기억들,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도라에몽의 기발한 발명품을 보며 낄낄거렸던 기억, 비슷비슷한 그림들 사이에서 줄무늬 옷을 입은 윌리를 찾았던 기억들이 새롭게 돌아온 캐릭터들과 함께 환기된다. 마치 최근 음악과 드라마를 통해 불었던 복고 열풍과 비슷하게, 돌아온 캐릭터들은 내 과거의 즐거운 추억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
두 번째는 카카오 프렌즈, 라인 프렌즈 등 메신저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모티콘에서 출발한 캐릭터 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과정 안에서 중요한 매개체로서 역할을 담당한다. 사람들은 이모티콘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의미 있는 소통을 지속해왔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을 유형의 상품으로 구매하여 생활공간에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인기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들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그 경험의 축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정리하면, 우린 캐릭터 소비에서 '경험'이 갖는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캐릭터는 나와 가상적인 상호작용을 했던 핵심적인 상징들이다. 캐릭터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기억 안에,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조각들이 녹아 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스누피 인형은, 스누피와 함께 울고 웃으며 형성된 '나'의 어떤 모습을 환기시킨다. 키덜트 산업 성장의 한 축에는 일본과 미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이란 배경 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들의 기억과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아이들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뽀로로와 타요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뽀로로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불가능한 이야기일까? 뽀로로는 아이들 것, 이란 생각은 어찌 보면 지금 어른들의 고정관념은 아닐까? 게다가 이들 작품들은 한국의 아이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 중국어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 어린이들의 '미디어스케이프'를 점차 채워가고 있다. 수년 후, 혹은 수십년 후에, 우리의 아이들은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뽀로로'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계를 맺어나갈 날이 올지도 모른다.
물론 이를 위해선,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의 캐릭터 산업이 더욱 성숙하게 자라나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함께 뽀로로를 보고 부모와 함께 웃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세대를 넘어서도 생명력 있게 살아남는 캐릭터야말로, 우리 문화 산업이 중요한 자산이다. 한국에서 캐릭터 자체의 가치를 인식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것을 목표로 작품을 기획한 것은 불과 1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유아동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조급증을 갖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저변을 넓혀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이 더 많이 함께 즐기고, 삶을 공유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는 콘텐츠가 더 오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