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 제작 방식의 변화
*이 글은 지난 1월 16일,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한류 NOW'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넷플릭스의 한류 콘텐츠 제작, 위기일까 기회일까’, 에 관한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특히 한류 콘텐츠 중에서도 드라마 콘텐츠를 중심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넷플릭스가 킹덤이라고 하는 콘텐츠를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을 해서 1월 말에 발표를 합니다. 킹덤을 만든 건 한국의 제작사들이고, 넷플릭스가 전체 IP를 갖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류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릴 것인데요. 한류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출연한, 우리의 정서와 문화가 담긴 작품이 글로벌로 퍼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은 좋은 일이 됩니다. OTT 사업자 중에서 제일 큰 넷플릭스가, 자기 돈 들여서 한국을 홍보해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입장을 바꾸면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제작은 하지만 IP는 다 넷플릭스가 갖는 것이고, 우리의 우수한 IP를 계속 넷플릭스에 주는 형태가 된다면 장기적으로 좋은 게 아닐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그러니 한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각자 그리는 그림에 따라서 평가가 많이 나뉘게 됩니다.
넷플릭스에 대한 반응은 참 다양합니다. 먼저 한류의 새로운 기회라는 관점이 있죠. 넷플릭스에 올라간 드라마들은 반응이 오는 지역이 다양해집니다. 미국에서 갑자기 드라마 비평가 상을 받는 것 처럼, 넷플릭스를 통해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곳으로 닿아서 생각도 못했던 반응들이 나오는 거죠.
그렇지만 플랫폼 사업자이자 제작역량을 가진 국내 방송사업자 입장에서는 위기입니다. 그래서 콘텐츠 제작 역량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다 빨려 들어가면 우리 어떻게 하란 얘기냐, 저러다가 갑자기 넷플릭스가 어려움을 겪으면, 우리도 위기를 맞이하는 게 아니냐, 라는 문제제기들이 있는 거죠. 이러한 맥락에서 넷플릭스에 하청 기지가 될 거다, 라는 좀 강한 말도 나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저는 일단 드라마 한류라는 것이 어떤 흐름이었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부터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드라마 한류는 ‘사랑이 뭐길래’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 ‘겨울연가’부터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한류 ‘현상’입니다. ‘현상’이란 말을 붙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란 걸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영국 드라마 ‘셜록’이 잘 나간다고 ‘영드 현상’이라고 말을 붙이지 않지요. 즉 저 당시에는 한류는 신기한 ‘현상’이었던 거죠. 이렇게 2000년대 초반을 지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본격적으로 방송콘텐츠를 수출한다는 개념보다는, ‘와 우리 걸 봐줘? 신기하네!’ 이런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 대 초반까지 보면, 본격적으로 그야말로 '수출'이 이루어집니다. 이 중 제가 ‘꽃보다 남자’, ‘미남이시네요’ 들을 예시로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한류 효과가 무엇이었나,를 생각해보면, 한류 ‘스타’가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류의 결과는 바로 ‘이민호’, ‘장근석’인 거죠. 한류 스타가 ‘뜨는’ 구조입니다. 일부 작품이 수출이 되지만, 철저하게 셀레브리티 IP에 굉장히 의존한 형태의 드라마 한류였던 것이죠. 그리고 그 범위도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에 와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별에서 온 그대’도 대박이 난 곳도 아이치이라는 OTT 플랫폼이었습니다. 이미 OTT 플랫폼을 통해서 시장이 확대되어 가는 상황에서 우리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기회를 틈타서 제작 규모를 키워가고 있던 상황이 ‘별에서 온 그대’ 사례였던 것입니다. 이후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제작 규모를 훨씬 키워서 더 비싼 가격에 아이치이에 팔아서 성공한 것이 ‘태양의 후예’였던 거죠.
우리는 이렇게 계속 제작 규모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그래, 이제 는 진짜 콘텐츠 제작에 돈을 넣어서, 제대로 된 콘텐츠로 수출해보자’라고 야심 차게 출범한 것이 스튜디오 드래곤이었습니다. 설립 첫 해에 상장하려고 했으나, 한한령 이슈가 터졌죠. 스튜디오 드래곤도 중국 시장의 성장이라고 하는 산업적 기회 속에서 제작 규모의 증가라는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는데, 갑자기 한한령이 그 시장 팽창을 가로막았고, 마침 그때 넷플릭스가 들어온 겁니다.
그러니 언뜻 넷플릭스가 특이한 사례처럼 보이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사실 일관된 흐름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글로벌로 나가면 훨씬 더 많은 돈을 제작비에 넣을 수 있고, 그 결과 훨씬 고품질 콘텐츠를 만들 수 있고, 그러면 과거와는 좀 다른 방식의 콘텐츠 세일즈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흐름에서 ‘미스터 션샤인’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한류 콘텐츠(드라마)의 시장규모가 과거에 셀레브리티 IP 중심의 아시아 한류의 단계를 넘어서 글로벌 전체로 넓어진다면, 우리가 훨씬 많은 비용으로 더 큰 콘텐츠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대신에 그러면 그 콘텐츠는 정말 글로벌 시장에서도 먹힐만한 콘텐츠여야 할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콘텐츠를 시청하는 맥락이 OTT 플랫폼을 통해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도 상대적으로 쉬워졌고, 사람들이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외국어를 볼 수 있는 환경도 더 좋아진 것이죠. 이 상황에서 사업자들마다 전략이 다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CJ ENM의 경우는 제작 역량을 자회사의 형태로 내부화 해서 ‘우리는 콘텐츠 기업으로 가겠다’라는 전략들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별에서 온 그대(2013), 태양의 후예(2016), 미스터 션샤인(2018)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아이치이에서 130억 원 규모로 만들어진 별에서 온 그대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했습니다. 이후 태양의 후예는 NEW에서 만들었는데, 당시 화책 미디어라는 중국 자본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한한령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발표의 제목을 ‘중국 자본과 한류, 위기인가 기회인가’로 바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빈 틈을 넷플릭스가 기가 막히게 들어왔던 것이죠. 제작비 규모는 그 결과 미스터 션샤인에서 400억 원에 달하게 된 것입니다. 100억 원 규모에서 400억 규모로 커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노릴 수 있게 되면 제작비 규모가 커질 수 있는 거죠. (물론 여기에는 방송사업자 특수관계자 편성 규제 같은 것이 풀리면서, 제작 역량을 내부화 할 수 있는 등의 변화가 배경으로 있었습니다.)
저는 ‘드라마 한류란 무엇인가’라는 그림을 그릴 때, 사실 과거의 드라마 한류는 ‘셀레브리티 IP 한류’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스타가 잘 되는 한류’ 인 것이죠.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우연히, 혹은 전략적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의 기회를 찾게 되면서, 작품 자체가 잘 될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콘텐츠 IP 한류로의 전환이 적어도 전략의 수준에서는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산업 생태계의 변화입니다. 기존의 독립제작사 들을 보면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엔터테인먼트사들, 흔히 연예기획사라고 하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콘텐츠 제작사를 인수하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발전한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영화사가 드라마 스튜디오를 만들고, 카카오가 드라마 스튜디오를 만듭니다. 이들의 특징은 뭐냐, 콘텐츠 IP가 있거나, 콘텐츠 IP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란 말입니다. 드라마, 영상 콘텐츠 한류의 중심이 콘텐츠 IP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튜디오 드래곤의 특징은 기획 PD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각각의 작품들이 게임회사 스튜디오들이 몇 년간 기획을 해서 작품을 출시하듯이,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처럼 스타 배우를 캐스팅해서, 편성받으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구조가 아니라, 중장기 적인 관점에서 원작 IP를 구매해서 작가들 통해서 기획해서 만들어 가는, 작품을 많이 만들고 그 작품들을 순차적으로 배포하면서 리스크를 줄이면서 사업 기회를 넓히는 전략들로 변화해가는 것이죠.
이러한 관점에서 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으로 영상이 나갈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그 결과 제작 규모를 키울 수 있고요. 또 넷플릭스는 한류 스타가 인기 있는 지역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좋아야 하고, 콘텐츠 IP의 질 자체에 더 많이 주목해야 되는 상황을 만들어 줍니다.
다만 넷플릭스의 비중이 너무 커지면, 일부 제작의 공동화가 생길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영화 시장에서 배우 부족 현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런 현상까지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고 보는 것이고요.
올해, 2019년은 글로벌 OTT 사업자의 경쟁으로 정말 뜨거운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한국도 SKT와 지상파가 푹-옥수수의 연합을 결성하는 등 이러한 경쟁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제가 2017년에 참여한 ‘4차산업혁명과 문화관광 산업정책의 방향’ 보고서에서 ‘디지털 혁신’이 콘텐츠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글로벌 시장 확대가 제일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디지털 미디어 혁신이 가져다줄 수 있는 제일 큰 기회는 과거보다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제약이 훨씬 적어진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 기회를 통해 과거와는 좀 다른 방식의 비즈니스를 해 볼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작품 자체에 더 주목하는 전략들을 취할 수도 있겠다는 것이고요. 특히 저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글로벌에서 더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에 주목합니다.
콘텐츠 시장의 규모 변화에 대한 예측들을 보면, OTT 시장은 아직 규모는 작지만 글로벌하게 더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PWC, 2018 참조) 그럼 왜 이런 OTT 시장의 성장에 주목해야 할까요?
저는 콘텐츠 IP에 대해 설명할 때, 위의 사진과 같은 추억의 작품들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저희 세대의 ‘슈퍼 IP’가 무엇이냐,라고 하면, 저는 강시, 헐크 호건 등이 떠오릅니다. 또 여기 포켓몬도 보이시죠? 한국에서 포켓몬이 슈퍼 IP가 된 배경이 무엇이냐,라고 한다면, 저는 투니버스의 개국이라고 주장합니다. 투니버스의 개국 이후 아이들이 하루 종일 포켓몬을 TV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포켓몬 GO의 열혈 이용자가 됩니다. 저는 그런 IP가 피구왕 통키였던 것이죠. 또 주목하실 것은 VCR, AFKN, 서울방송의 이미지입니다. 왜 이런 이미지들을 제시하느냐. 프로레슬링은 AFKN으로 보았고, 후레쉬맨과 강시는 비디오로 보았습니다. 즉, 미디어 전환의 시기에, 그 미디어를 통해 집중적으로 소비한 작품들이 특정 세대의 '슈퍼 IP'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는 새로운 슈퍼 IP 탄생의 최적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글로벌 OTT 경쟁도 이런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요. 글로벌 OTT 경쟁은 과거에 로컬에서 로컬 미디어로 영상을 소비하던 사람들이 글로벌 미디어 중심으로 자기의 시청 습관을 바꾸는 굉장히 큰 기회라는 것이고요. 바로 그 틈에 우리 콘텐츠가 올라탔을 때, 그중 무언가가 슈퍼 IP가 된다면, 그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한류의 양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넷플릭스에만 의존하는 것은 당연히 위험한 일입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중국 시장에만 의존하다가 한한령으로 위기를 맞이한 것과 비슷한 일입니다. 우린 넷플릭스 홀로 글로벌 OTT 시장 경쟁에서 승리할 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시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가 글로벌 수용자를 두고 경쟁하는 ‘판’은 꽤 매력적인 판이고, 또 반드시 올라타야 하는 ‘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대신 전제가 있습니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퀄리티가 좋아야 합니다. 넷플릭스는 극장과 TV의 경계에 있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퀄리티가 높아야 하고, 우리가 그 위에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영상 콘텐츠의 퀄리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업자가 얼마 있는가는 고민할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한류는, (물론 모바일과 숏폼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 다른 방식이 될 것이지만), OTT 시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고품질 콘텐츠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야 되고, 그걸 통해서 콘텐츠 IP가 글로벌로 퍼져 나가야 되고, 그걸 통해서 한국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팬덤이 굉장히 넓은 ‘Big Niche Market’이 생겨나야 저 구조가 지속 가능할 것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거창하게 ‘한류의 뉴 노멀’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 이유는 한류 ‘현상’을 기대하지 말고, 마치 우리나라에 꾸준하게 ‘셜록’과 같은 콘텐츠를 보는 팬덤이 일정한 규모로 있듯이, 전 세계에 한국 콘텐츠를 그런 방식으로 소비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상태,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도 한류 ‘현상’은 없지만, 한국 영상 콘텐츠 수출은 훨씬 많이 늘어난 상태, 이것이 지금 사업자들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아닐까, 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발표하고 2주 뒤, 넷플릭스는 '킹덤'을 공개했습니다. 몇 가지 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글로벌 시청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는 소식도 일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함께 관심 있게 지켜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행사 당일 발표한 내용의 녹취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조금 더 정제된 내용의 글은 '방송 콘텐츠 제작의 변화와 새로운 한류의 기회'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