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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Feb 08. 2019

미디어와 가족, 미디어와 시간

넷플릭스와 오디오 콘텐츠는 한국에서 어떻게 자리잡을까?

가족과 시간은 미디어 연구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장경섭 선생님의 '내일의 종언'을 읽으며, 변화하는 한국의 가족(자유주의)를 맥락으로, 미디어 수용과 일상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다. 넷플릭스는 한국의 맥락에서 한동안 개인화된 모바일 영상 서비스로 이해되어 왔다. 가정의 TV는 IPTV라고 하는 커텍티트 서비스가 중심이 되어있고, 그 스크린의 권력은 여전히 과거의 부모들이 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서비스는 가족 내 스크린 점유의 권리를 갖지 못한 젊은 층의 시청 환경을 고려해서, 모바일- 더 정확하게는 개인화된 스크린으로 파고들어갈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건, 이 가족 구성이 세대의 변화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의 84제곱 인서울 아파트 가격 급등의 주 원인 중 하나는 가구 소득 8천 이상의 맞벌이 30대 부부가 무주택에서 1주택으로 전환하려는 수요가 급속히 늘었던 것임을 상기해보자. 이들은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 중, 주로 80년대 생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들에게 결혼은 이미 안정된 일자리를 기반으로 과거의 전통적 가족의 구성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이들이고,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소수이나, 소비력의 측면에선 중요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현재의 키즈 콘텐츠 및 상품의 주요 소비자이기도 하고, 가정을 이루고 TV를 장만해서 큰 스크린으로 넷플릭스를 보는 이들이기도 하다. PS4를 지르며 허락보다 용서가 낫다고 외치는 이들도 이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가족의 구성이 계층화 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여러 이유에서 결혼 시장에서 진입하지 못하거나, 자발적으로 탈출한다. 이들은 1인 가구를 구성하거나, 기존 가족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현재 30대의 스크린 점유는 과거와 달리 통일되어 있지 않고, 그렇기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시그널로 잡히기 어려웠다.

한편 개인 단위의 미디어가 확대되는 가운데 시간적으로 '시각'이란 감각의 점유가 포화에 이르면서, 상대적으로 포화가 덜한 ' 청각'이란 감각의 시간적 점유를 위한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팟캐스트, 오디오북의 성장은 이러한 감각의 시간적 포화와 재구성이란 변화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청각은 시각과 달리 듀얼태스킹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가가 아닌 일상의 다른 시간으로 침투가 가능하다. 확장된 청각 미디어 소비 시간은 장르의 분화를 가져온다. 저널리즘의 확장에 가까웠던 정치 팟캐의 전성시대를 지나, 지금은 다양한 '교양' 방송과 '감성' 콘텐츠(낭독)이 분화하고 있다. 각각의 장르는 생활 시간의 맥락에 따라 효용이 다른데, 스마트폰을 통해 모든 생활 시간으로의 침투가 가능해지면서 오디오 독점기였던 60년대와 같은 장르분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디오가 AI스피커를 통해 다시 거실로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실에 놓여진 스피커는 1인 가구를 제외하면 가족 '청취'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가정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오디오 콘텐츠의 구성은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져있지 않다. 그나마 이에 맞는 콘텐츠는 '키즈'가 적절하다.


그러고보니 최근 IPTV도 키즈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밀레니얼 가정에서도 온전한 가족 시청의 맥락을 살릴 수 있는 장르가 키즈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집 TV에서 제일 많이 재생된 프로그램은 페파피크와 마샤와 곰이다 ..) IPTV는 여전히 가족 단위의 가입과 시청에 맞추어져 있는 플랫폼이란 점에서 이러한 수요를 놓쳐선 안되는 거다.


물론 현재의 AI스피커가 가족 단위의 집에 놓여있는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집안에서의 노동의 맥락과 더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집안일을 하면서 팟캐스트를 틀어놓는 상황 같은 경우를 상상하면 된다. 이는 1인가구의 형태에 어울리는 일상으로의 소리의 침투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풀어놓은 이야기는 사실 내가 경험한 시간-가족의 맥락에서 미디어 경험을 이해한 것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이러한 가족-시간 경험의 맥락이 과거와 달리 균일하지 않게 분화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세대-계층의 맥락에 엉키는 와중에 벌어지는 분화여서, 그 전형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앞으로 성장하는 세대보다, 기존 세대의 인구가 더 많은 상황에서 산업적으로 대응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 키워드들에 대한 고민을 놓치진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잘 안될 거라는 주장을 펼치며 '한국에서 TV는 린-백 해서 수다떨듯 보는 건데, 넷플릭스 콘텐츠는 집중해야 해서 문화적으로 맞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서 시작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내 주장을 입증하려면, 영상 콘텐츠 수용의 일상의 맥락이 바뀐 미디어-세대 경험에서 시작해서, 지금의 TV 서비스와 스크린의 가족-개인 단위의 배치, 노동의 변화와 일상 시간 맥락의 변화 등을 복잡하게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한두마디 썰로 될 일이 아니라, 미디어와 일상, 미디어와 가족, 미디어와 시간이라는 전통적인 미디어 연구의 문제들을 가지고, 조금은 진지하게 함께 연구하고 토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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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로 풀어내긴 어렵지만, 그냥 흘려보내긴 아쉬운 생각들을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짧은 생각들' 매거진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아이디어 수준에서 가볍게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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