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브랜드 가치의 축적 or 활용
굿즈? MD상품? 라이선싱?
굿즈란 말은 우리나라에선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아이돌 분야의 팬덤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지만, 사실 "머천다이징 상품(MD)"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키덜트 캐릭터 상품 시장이 성장하면서, 서브컬쳐 계열에서 주로 쓰던 굿즈란 말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 글에선 MD상품을 편의상 굿즈로 통칭하려고 한다)
콘텐츠 IP의 가치와 활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굿즈"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 자체의 수익에 더하여, 부가적인 라이선싱이나 상품화를 통한 판매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실제 어른들이 캐릭터 상품에 지갑을 적극적으로 열기 시작하면서, 굿즈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구매하는 상품이란 점에서 머천다이징 생태계에 기존보다 질 높은 (혹은 고가의) 상품군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진입하고 있고, 이것이 일종의 선순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라인 스토어에 가면, 북유럽 유명 키친 브랜드와 라인프렌즈의 협업을 만날 수 있다!)
IP굿즈의 역할: 광고모델, 기념품, 판촉물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굿즈 시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콘텐츠 산업 장르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콘텐츠 자체의 수익이 높지 않은 분야가 많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그리고 각종 뉴미디어 콘텐츠 들이 대표적이다. 애니메이션은 낮은 방영권료, 음악은 낮은 음원 수익, 뉴미디어 콘텐츠 역시 낮은 광고수익이란 고충을 겪고 있다. 이를 타개하려면, 수익을 다각화 할 필요가 있고, 역량을 분산시키지 않는 수준에서 가능한 다각화가 바로 굿즈 판매인 것이다.
문제는 콘텐츠 IP의 가치(혹은 인기)에 따라서 굿즈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굿즈의 역할은 크게 나누어보자면, "광고모델"과 "기념품", 그리고 "판촉물"로 볼 수 있다. 각각은 소비자에 주는 가치에 따라 결과적으로 수익화가 이루어지는 방식도 다르다.
기념품으로서의 굿즈: 경험을 추억하기 위한 수단
먼저 기념품을 보자. 대표적인 것이,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들 수 있다. 앨범은 이제 음악을 듣기 위해서라기 보다, 화보 등을 소유하기 위해서 사는 일종의 굿즈가 되었다. 콘서트에 가면, 사람들은 굿즈를 사온다. 한정판은 더욱 가치가 있는데, 이는 콘서트라는 중요한 경험의 기억을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기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굿즈는 기본적으로 흘러가버리는 경험을 포착해서 보관하려는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관광 기념품이 하는 역할과 사실상 동일하다. 최근 노스탤지어에 기반한 상품들이 나오는 것도 사실 유사한 매커니즘이다. 사람은 추억을 소비하고, 추억을 남기기위해 굿즈를 산다.
이렇게 "추억"(혹은 경험의 물질화)에 연관된 굿즈는 소비자의 지불 의사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이런 굿즈 판매를 성공시킨다면, 콘텐츠 기업은 부가적인 수익을 충분히 거두어드릴 수 있다. (SM과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다만, 노스탤지어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이런 굿즈 판매는 일상적인 상황보단 특별한 이벤트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공연(극장 개봉이나 뮤지컬을 포함해서) 등의 기획을 필요로 한다. (이 부분이 때론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재고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광고모델: IP의 인지도에 의지하기
다음은 "광고모델"이다. 위의 "기념품"의 단계에 도달하거나,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인지도를 확보했다면 그 IP는 일종의 광고모델의 역할을 해준다.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지만, 캐릭터가 붙어있다는 이유로 사먹는 음료수가 대표적이다.
이 모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라이선싱"이다. 캐릭터 등 IP를 상품에 붙이고, 판촉에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계약을 통해 부분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다.(이때 IP의 원 권리 보유자를 라이선서, 이를 활용하는 상품화권자를 라이선시라고 한다.) 이는 해당 IP의 인지도에 기대어 상품 판매를 촉진하려는 다른 산업군의 수요가 원동력이 된다. 이때, 콘텐츠 기업은 IP의 사용료, 즉 로열티를 받게 된다. 이 수익도 부가적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득이 되지만, 비지니스 자체를 뒤집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이 나는 건 아니다.
판촉물: IP 인지도 상승의 수단
마지막으로, "판촉물"이 있다. 이건 그야말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뿌리는 광고에 해당한다. 다만 그 영역이 오프라인에 있을 뿐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선 판촉물 자체가 기념품으로서 굿즈가 되기도 한다. 메가박스가 에반게리온이나 러브라이브 개봉시 뿌린 굿즈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이를 기념품으로 수집했지만, 메가박스 입장에선 돈을 받지 않는 판촉물의 역할이었다.(추가로 수익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차피 볼 사람이 정해져있었기에..)
캐릭터 라이선싱 페어 같은 곳에서 받아올 수 있는 다양한 기념품들..도 사실 엄밀히 말헤 판촉물이다.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단계에서 배포 혹은 판매되는 굿즈는 수익의 관점에선 당연히 손해일 수 있다. 이는 엄밀히 말해 홍보 비용에 해당하며, 당연히 단기적으론 손실 혹은 미래의 가치를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
콘텐츠 IP와 브랜드 관리: 신뢰와 자부심의 중요성
이렇게 나누어 보면, 콘텐츠 IP의 작동 방식이 브랜드와 굉장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브랜드도 초기엔 인지도를 쌓기 위해 광고를 집행하는 입장이지만, 어떤 단계를 넘으면 브랜드를 타 상품군에 라이선싱을 주거나 콜라보레이션 을 하기도 하며, 때론 그 자체로 기념물로서 소비되기도 한다. 여기엔 인지도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에게 주는 감성적 측면의 경험도 매우 중요하다. 그야말로 "애정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하고, 이건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브랜드의 관점으로 콘텐츠IP에 접근하면, 몇가지 중요한 키워드를 떠올릴 수 있다. 먼저 브랜드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바로 "신뢰"다. 신뢰의 대상은 다름 아닌 (기능과 감성을 포함한) 품질이다. 콘텐츠 기업에겐 당연히 그 품질이란 즐거움의 '질', 혹은 감각적 만족이 될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자부심과 팬덤이다. 오늘날 최고의 브랜드들은 공통적으로 열렬한 추종자, 즉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이 팬덤에게 주는 핵심 가치는 바로 자부심이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쓰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때, 우린 진정으로 스타벅스가 팬덤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왜 이디야 텀블러는 그 역할을 하지 못할까? 콘텐츠 기업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콘텐츠 IP 혹은 아이덴티티를 자랑스럽게 자신의 삶 안으로 가지고 올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지점에서,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가능하게 하는 엑소의 굿즈가 나왔다고 봐야할 것이다)
콘텐츠 기업이 IP 활용 전략으로 '굿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스스로가 축적해 가는 브랜드 가치의 성격과 규모를 파악해야 한다. 설익은 사업 확장은 자칫 판촉비의 무리한 증가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굿즈를 시작하는 순간, 그 기업은 더 이상 콘텐츠 "제작업"에 머무를 수 없다. 이 단계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브랜드 관리에 역점을 둘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브랜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은, 제작만 관심갖던 이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고수들이 버티고 있는 무림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