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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Sep 06. 2016

'팬아트'가 공식 굿즈가  될 수 있을까?

'네코제' 사례를 통해 본 팬덤 참여와 IP가치의 증진

콘텐츠 IP의 가치가 높은 사례를 살펴보면, 어김없이 활발한 팬덤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부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팬덤의 활동을 좀더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해당 기업이 보유한 콘텐츠IP의 장기적인 가치 증대와 사업 확장의 계기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확대되고 있다. 게임 기업인 넥슨의 ‘네코제’는 이러한 시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네코제'가 어떤 맥락에서 기획되고 운영되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지난 7월, 네코제’ 기획 및 운영을 담당했던 사업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글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팬덤 참여형 이벤트가 IP 가치 증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담당자와의 인터뷰는 지난 7월 19일 진행되었으며, 기존에  '게임포커스'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용도 함께 참고했다)

(참고) 네코제 공식 홈페이지 / 네코제 담당자 인터뷰(게임포커스) 


넥슨 팬들이 만드는 IP 축제, '네코제'

네코제는 넥슨의 팬들이 직접 IP를 활용한 다양한 아트웍과 상품들을 만들어 판매를 비롯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참여형 축제다. 2015년 게임쇼인 지스타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넥슨 본사에서 1회 행사를 한 뒤 201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규모를 확대하여 2회 행사를 개최했다. 일반적으로 게임 업체가 운영하는 게임쇼는 신작 소개 등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해, 네코제는 팬덤이 직접 작품의 생산과 판매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는 시도다.


넥슨은 부스의 설치와 관련 부대 비용을 대고, 유저들의 영리 활동에 대한 수익은 가져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IP활용은 로열티를 부과해야 하지만, 축제 기간이라는 제한된 기간과 공간에 한하여 이를 공개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네코제에서 사용되는 게임 IP의 범위는 넥슨이 자체 제작한 게임은 물론, 퍼블리싱하여 서비스 하는 게임까지 포함하고 있다. 비록 한시적이지만 IP활용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행사이니만큼, IP권리자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내부 IP의 경우 담당 디렉터를 통해, 외부 IP의 경우 사업팀을 통해 사전 동의를 얻은 후 행사를 진행했다.


지스타에서와 넥슨 본사에서 진행한  2015년 네코제는 팬들의 작품 판매를 메인 콘텐츠로 했다면, 2016년도의 2회 행사에서는 장르를 확대하여 콘텐츠IP 활용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었다는 점도 특기할만한 점이다. 세종문화회관과의 협업을 통해 공간 및 접근성을 확대했으며, 코스프레 패션쇼, 게임 원화 전시회, 게임 음원 콘서트 등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화 했다. 단순한 MD상품 마켓의 성격을 넘어서서 게임 콘텐츠의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기획한 것이다. 이는 게임 자체가 캐릭터, 일러스트, 음악,영상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종합 예술이란 점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이러한 팬덤 참여형 이벤트는 게임의 인기가 높은 해외, 특히 북미 지역 등에서 이미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워크래프트’, ‘오버워치’, ‘디아블로’ 등 인기 PC 게임을 제작 및 서비스 하는 ‘블리자드’의 경우 ‘블리즈콘’이란 행사를 매년 개최하며 신작 발표와 함께 팬들이 참여하는 축제로 진행하고 있다.


게임 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저변 확대에서 출발하려는 시도

넥슨이 ‘네코제’와 같은 형태의 IP사업 전략을 시행하는 배경에는 게임이란 콘텐츠의 장르적 특성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 게임은 유저가 캐릭터나 게임 내용을 직접 조작을 하고 운영을 한다는 점에서 개별 유저의 경험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일방향적 콘텐츠와 달리, 게임은 유저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기 때문에, 개개인 별로 서로 다른 캐릭터에 더 깊게 관여될 수 있고, 몰입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IP사업이 일방향으로 진행되는 관행을 깨고, 유저들의 다양한 경험이 우선 드러나고 공유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회사에서 의도한 이미지 뿐 아니라, 유저들의 경험을 겉으로 꺼내서 저변을 넓히는 작업을 먼저 시도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저변 확대라는 고민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국에서 게임 팬덤의 절대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은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볼 때 이미 20년을 넘는 역사를 갖고 있고, 10년 이상 장수하며 인기를 끌어온 게임들도 다수 존재한다. 엔딩이 정해져 있던 콘솔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은 서비스 기간이 길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콘텐츠의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린 시절 게임을 접했던 세대는 이미 성인이 되었고, 신규 유저도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팬덤의 세대 범위도 넓은 편이다.


그럼에도 사회 보편적인 수준에서 게임에 대한 인식은 아직 우려의 눈길이 더 큰 편이다. 게임 중독에 대한 우려, 게임 유저의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비판 등 부정적인 이슈가 여전히 많이 있다. 자녀를 게임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담론이 우세하는 등 게임 경험에 대한 비판적이고 비하적인 시선들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IP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선 우선 저변을 넓히고, 유저 친화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IP의 가치를 더욱 높이려는 작업이 필요하다. 게임 캐릭터를 통헤 당장 사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 보다, 게임 문화의 저변을 넓혀서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 IP를 매개로 한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올해 네코제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세종예술시장 소소'와의 협력을 통해 진행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인식 개선의 목표와 맥이 닿아 있다. 보다 다양한 대중과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다양한 장르와 이벤트와 결합 시킴으로써 게임의 문화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팬 창작물에서 만나는 콘텐츠 IP의 다양한 가능성

사실 게임 IP를 활용한 팬들의 창작 활동 자체는 이미 온라인을 중심으로 활성화 되어 있었다. 주로 ‘팬아트’로 불리는 2차 창작물들은 해당 게임의 팬들이 모이는 게시판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었다. 네코제는 이러한 음지의 2차 창작을 양성화하고, 실제 수익화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줌으로써 이러한 2차 창작 활동 자체를 활성화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차 창작에 참여하는 팬들은 실제 게임의 핵심 소비층이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과 관리는 오랜 기간 서비스를 이어가는 온라인 게임의 서비스 환경상 기업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 네코제의 초기 기획 의도는 이러한 핵심 소비층에 대한 고객 관리의 측면을 담고 있었다. 게임과 IP에 대한 애정이 있는 핵심 소비층이 좀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행사인 것이다.


2차 창작은 팬의 다양한 활동 중 중요한 생산적 행위에 속한다. 팬덤의 참여가 광범위하게 확대된 오늘날의 문화산업에서 팬 창작물은 단순한 아마추어적 작품에 그치지 않는다. 팬 창작물에서 시작해서 상업적 판매가 가능한 콘텐츠로 발전하는 사례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전자책과 영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작품이 ‘트와일라잇’의 팬픽(팬이 창작한 소설)으로 출발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팬 아트 등 2차 창작을 활성화 하는 것은 콘텐츠 IP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IP활용의 방식을 확장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확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넥슨도 이러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네코제를 진행하고 있다. 네코제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를 ‘넥슨 아티스트’의 형태로 ‘인증’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단순히 ‘인증서’ 발급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품 제작에 필요한 요소들(제조사 연결 등)을 돕는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넥슨IP를 활용한 ‘스타’ 아티스트가 배출되는 것이 네코제의 또 하나의 목표 중 하나다. 넥슨 IP를 잘 이해하고, 이를 실제 인기 있는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크리에이터와 향후 사업적인 파트너십을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실제 참여 작품의 퀄리티가 높아질 수 있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팬덤의 관심을 높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성인을 대상으로 한 IP 활용 상품 시장에서는 제품의 퀄리티가 중요한 구매 고려 요소로 작용한다. 장기적인 IP가치의 상승을 위해선, 높은 질의 IP 활용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확보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전유(appropriate)의 전유, 팬덤의 기여를 자산으로 만들기

네코제는 '팬 아트'의 역할과 한계에 대해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례이기도 하다. 팬들의 다양한 행위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전유(appropriate)'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상징이나 자원을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조건에 맞게 가져다 쓰는 것을 의미한다. 콘텐츠를 즐긴다는 것은 단순히 창작자의 의도 대로 그 내용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창작자의 의도와 구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재료들을 나름의 목표와 즐거움을 위해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은 '수용' 행위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다. 특히 적극적 수용 집단인 팬덤에서는 이러한 전유 행위가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본래의 저작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표현하는 '팬아트'는 가장 대표적이고 보편적인 사례이다.


콘텐츠 IP를 활용한 기념품을 지칭하는 '굿즈'는 보통 '공식 굿즈'와 '비공식 굿즈'로 구분된다. 공식 굿즈는 IP권리자가 직접 기획, 제작한 상품이라면, 비공식 굿즈는 팬덤 활동의 결과인 '팬아트'가 상업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비공식 굿즈는 콘텐츠 기업에게 수익화 되지 않는, 통제 바깥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비공식 굿즈의 존재는 팬덤의 활성화 정도를 보여주는 척도란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 쉽게 통제하거나 제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한 이런 점에서, 비공식 굿즈는 팬덤 활동의 생산물이면서 콘텐츠 기업에게 포획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네코제는 이러한 팬덤 활동을 공식적인 이벤트로 포섭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팬들의 창의성을 활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공식 굿즈'의 디자인이나 기획 등에 대한 팬 공모를 진행하는 사례는 아이돌 그룹의 기획사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공식-비공식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고, 그 선택권은 '심사'의 방식을 통해 기업에게 귀속시킨다.


반면 네코제는 그 경계 자체를 일시적으로 허물면서 선택의 권한 자체도 팬덤의 참여로 넘긴다. 비공식 굿즈의 판매를 특정 기간과 공간에 한하여 '공식적'으로 허용함으로써, 팬덤이 선택하는 방향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인 목표는 장기적으로, 이들의 실천을 기업의 영리 행위 안으로 포섭하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네코제는 공식-비공식의 경계 짓기 방식에 균열을 가져오는 동시에 팬덤 활동의 창의성을 사업의 일부로 가져오는 '전유의 전유'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코제가 시도하는 팬덤 활동에 기반한 IP 가치의 증진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얻기 어려운 투자나 마케팅 행위로 이해되기 쉽다. 이러한 축제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으려면, 모 기업의 장기적인 전략과 이를 뒷받침할 체력(자금력)이 필수적이다. 분명 아무나 할 수 있는 시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모델이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한국 게임 기업이 해보지 않았던, 팬덤 참여를 중심으로 한 IP 활용 방식에 대한 실험이기 때문이다. 팬덤 없이 성장하는 콘텐츠IP란 불가능하다. 물론 '슈퍼IP'들이 반드시 팬덤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성장한 것이라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팬덤의 참여를 활성화 하는 게임 만의 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지금 보다는 한단계 진전된 IP관리의 방식들이 더 많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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