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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민 Aug 03. 2016

콘텐츠 IP 열풍을 어떻게 볼 것인가

콘텐츠 IP 생태계의 진화, 그리고 콘텐츠 가치에 대한 관점의 변화


콘텐츠 산업에서 IP 활용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IP는 Intellectual Property의 약자로, 지식재산을 의미한다. 콘텐츠 지식재산권의 법적 근거는 주로 저작권, 상표권 등이 활용되는데, 사실상 거의 모든 콘텐츠가 저작물로서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IP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기존에도 2차 판권을 구입하여 제작하는 사례는 많이 있었고, OSMU라는 이름으로 이를 권장하기도 했다. 큰 틀에서 보면 IP 활용은 OSMU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다만 주로 이 용어가 쓰이는 산업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IP란 용어는 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많이 활용되었는데, 이는 일정 부분 중국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문화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파생될 수 있는 원천 콘텐츠, 즉 IP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경쟁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다. IP의 활용 권리는 대부분 장르 별로 배타적이고,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IP의 수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IP 권리를 미리 확보하는 것은 다양한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인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IP 권리 확보 노력은 2014년부터 시작돼서 2015년에 정점을 찍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로, 모바일로
최근의 IP 활용 동향을 보면, PC 온라인 게임의 과거 히트작을 모바일로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을 특징을 볼 수 있다. 또한 확장 가능성이 높은 웹툰, 웹소설에 대한 사전 권리 확보가 확대되고 있고, 전통적인 인기 IP를 활용한 뉴미디어 게임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IP 활용이 두드러지고 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이 성숙하고, 전반적인 게임 수준이나 제작비 규모가 증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빠른 시간 안에 인지도를 확보하고 수익을 내기를 원하는 기업들은 점차 IP를 활용한 게임들을 선호하고 있다. 실제 게임 순위에서도 IP 관련 게임들이 수위를 다투고 있다.

IP 활용은 근본적으로 문화산업의 (흥행)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IP 활용의 확대는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IP 활용산업이란 결국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IP를 타 분야로 이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IP 활용의 증가는 오리지널 IP가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약화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초기 시장에서는 광범위한 인기를 끄는 히트작이 보다 쉽게 등장할 수 있기 때문에 오리지널 콘텐츠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경쟁이 격화되는 성숙한 시장에서는 이러한 도전이 점차 어려워진다. 최근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의 IP 활용 증가는 사실상 오리지널 콘텐츠로의 성공이 쉽지 않아졌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는 모바일 게임 분야의 제작비 및 광고비 급증으로 인한 메이저 플레이어 중심의 시장 재편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지난 7월 말 개최된 차이나조이 2016에서는 유독 모바일로 이식된 유명 온라인게임 IP 활용 게임이 주목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IP홀더와 제작사가 다르다는 것이다. 리니지 모바일은 NC소프트가 만들지 않는다. 더 가볍고 작고 다양한 작품이 요구되는 모바일 시장에서 직접 제작보다는 IP 권리 제휴를 통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다양한 제작사가 IP 권리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면 주목도와 입소문(버즈)에도 유리하다. 과거에 IP는 창작자 혹은 제작사 고유의 소유란 인식이 강했다. 판권 계약을 통해 OSMU를 하더라도, 원작자 혹은 원 판권자와는 별도의 작품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OSMU를 일종의 세계관 확장으로 보는 관점이 두드러진다. 게임은 장기간 서비스가 제공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세계관 확장에 유리하다. 리니지는 아직도 서비스 중이다. 모바일 리니지는  이 둘의 경험을 연결해준다.

장기적 IP 가치 상승을 위한 파트너십의 중요성
따라서 IP권리자의 전략도 달라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판권이 팔려나가면 일단 "남의 자식"처럼 보는 시각이 강했다. 지금은 모두가 한 가족이다. IP를 중심으로 권리자들이 일종의 생태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는 캐릭터 산업에서 이루어지는 라이선싱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과거보다 아트 컨펌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고, 핵심 상품은 기획단계를 공유하게 된다. IP권리자에게 중요한 것은 판권 판매를 통한 단기적인 수익보다 질 높은 파생 콘텐츠의 지속적인 출시를 통한 장기적인 IP가치의 상승이 되었다.

IP 활용이 확대되면서, IP 권리를 바탕으로 한 사업에만 주력하는 기업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둘러싼 갈등도 이미 진행 중이다(미르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문제 중 하나는 협상력 등 핵심 역량의 문제다. 소위 IP 권리를 "매절"하는 사례 등이 나타나는 경우를 보면 기업 규모와 법적 지식 등의 차이로 인한 협상력의 격차가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1인 기업이나 영세 업체가 많은 만화-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이런 일이 잦았던 것도 이런 이유다. 사업의 규모가 큰 게임 분야는 상대적으로 IP권리자의 협상력이 큰 편이지만, 파트너십을 만들어가는 부분 등에 있어서의 역량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콘텐츠 IP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오리지널'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있는가? 란 질문을 만나게 된다. 보통 우수한 IP는 산업이 성숙하는 과정(그리고 포화되기 전)에 등장한다. 포켓몬이 그랬고, 리니지가 그랬고, 최근 게임으로 활용의 폭을 넓히고 있는 마음의 소리도 그렇다. 지금은 웹툰과 웹소설이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는 광범위한 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슈퍼 IP라기 보단,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의 측면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 물론 문화산업 전반이 성장세인 중국의 경우라면, 이런 가능성 있는 IP를 대규모로 확대하며 키워볼 여력이 충분하다. 그러나 장르 간 벽이 여전히 높고 시장이 좁은 한국의 상황에선 이런 모델을 시도할 수 있는 IP도 어느 정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여기엔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라는 고민도 더해진다. 자기만의 작품을 창작하는 것 vs 이미 존재하는 ip의 프랜차이즈의 일부를 창작하는 것. 무엇이 더 창의적인 일일까? 예를 들어, 스타트랙과 스타워즈를 리부트 한 J.J. 에이브람스를 크리에이티브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그럼 이때 후자의 크리에이티브는 전자의 것과 다른 걸까? 이미 많은 콘텐츠 산업이 공동 창작의 생태계로 이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작품이란 어떤 의미일까? 콘텐츠 생태계의 활력을 위해선 두 크리에이티브의 균형은 어때야 할까? 답하기 쉬운 질문은 아니다.


콘텐츠 IP를 중심으로 열리는 새로운 생태계의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IP란 관점에서 콘텐츠 산업을 바라보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강점을 갖는다. 먼저 콘텐츠의 가치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IP의 관점에선, 단일한 매체, 단일한 장르에서 단기적 소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콘텐츠의 생명력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콘텐츠 산업을 '생태계'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IP의 가치를 키우는 건 최초 창작자 만의 몫이 아니다.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IP의 생명력을 키워가는 주인공이다. 좋은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할 때,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생명력 있는 콘텐츠 IP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신규/중소 제작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IP라는 안전판을 토대로 기존의 창작자/권리자가 해볼 수 없는 시도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 GO'의 제작사가 닌텐도가 아닌 것에 주목해야 한다. 닌텐도가 포켓몬이란 IP를 니안틱에게 열어주었을 때 가능한 시너지가 있었던 것처럼, 과거의 추억과 새로운 경험이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새로운 IP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콘텐츠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콘텐츠 IP의 활용이 높아지면, 당연히 기존에 콘텐츠 사업을 통해 우수한 IP를 길러왔던 '전통의 강자'에게 유리한 판이 열린다. 미국은 디즈니뿐 아니라, 우수한 콘솔/PC 게임 개발의 전통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지난 20년간 게임-애니메이션 분야를 선도했던 기업들이 모바일 콘텐츠 시대에 IP를 바탕으로 다시 그 힘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우리도, 지난 15년간 온라인 게임과 웹툰 영역을 세계적 수준에서 선도했고, 그 성과가 IP란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에게 우수한 IP가 없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지난 십여 년간 실제 대중이 어떤 문화를 어떻게 즐겨왔는지에 대한 무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IP'가 오늘날 효과적인 OSMU의 자산이 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는 좀 별개의 문제다. 또, IP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잘 길러 왔는가란 관점에선 여전히 한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 산업에 불어 온 IP 바람이 새로운 기회임은 분명하다. 운 좋게도 나름의 오리지널 IP를 축적해왔고, 이를 활용할 가능성도 새롭게 열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장기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토양이다. 창작자와 콘텐츠의 가치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이를 즐기는 팬덤과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단기적 이익을 넘어선 장기적 성장을 얻긴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IP사업을 고민하게 될 때, 그 덕에 이런 '존중'의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 콘텐츠 산업에 가장 큰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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