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뇌졸중 환자가 들려주는 뇌졸중 경험담
뇌졸중 이전의 나
by 명랑스트로커 굿스타 Jun 15. 2022
상상력이 풍부하고 엉뚱했던 어린 시절
어린시절 나는 내가 기억을 하고,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하는 등 뇌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활동들이 신기했고, 머릿 속을 상상하곤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뇌구조 테스트 같이 말이다. 나는 내 뇌, 머릿속에 거대한 서랍이 있고, 그 서랍에는 정보가 담긴 파일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상상했다. 마치 거대한 도서관처럼. 내가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 뇌세포들이 해당하는 서류함에서 정보파일을 찾아 입력, 출력함에 넣어주면 정보를 처리하는 뇌세포가 그대로 실행시켜주는 거라고 상상했었다. 실제로 뇌에서 일어나는 자극과 반응 메커니즘과 비슷하게 상상했으나 어린 시절답게, 도서관 혹은 서류함에서 뇌세포가 일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상상은 내가 호주에서 저자로 참여한 “Finding yourself after stoke”에 적었던 시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Stars were falling into my head in the sky
Very tiny and tiny friends are hit and fall down turned red
and become stars again
The star tried to go to its original place, but it got lost
and went to a new place.
The red stars that went to a new place has become a big universe.
I call that universe a dream.
That dream changes the world.
하늘에 있는 별이 내 머릿속으로 떨어지네
맞고 쓰러져 빨갛게 물든 아주 작고 작은 친구들이 다시 별이 되었네
그 별은 원래의 자리를 찾으려하지만 찾지 못하고 새로운 곳으로 가네
그 빨간 별은 새로운 곳에서 큰 세상이 되었네
나는 그 세상을 꿈이라고 부르네
그 꿈이 이 세상을(세계를) 바꾸네
뇌세포를 아주 작은 친구들로, 혈관 파열을 떨어진 별로, 피를 빨간색에 빗대었다. 빨간 홍수에 빠진 작은 친구들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는데(신경가소성으로 달라지는 나의 뇌구조를 새로운 세상이라고 표현했다.) 그 세상은 꿈이라고 불리는 것이며, 그 꿈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이다.
밝고 명랑했던 소녀
나는 어른들한테 예쁨을 받는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내 주특기는 ‘인사잘하기’였다. 1월생으로 남들보다 일찍 입학한 나는 엄청 작은 아이였는데, 쪼그만 아이가 밝고 씩씩하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 모습이 예쁘셨는지 학창시절 내내 선생님들이 잘 보듬어주시고 사랑으로 대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물론 초, 중,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도 그랬다. 반장보다 부반장을 많이 했지만 선생님께 얻은 신임은 거의 반장이었다. 명랑한 소녀였던 나의 성향은 뇌출혈 이후에도 나타났었다. 섬망 증상으로 인해 현실을 인지 못하고, 사리분별 하지 못할 시기에, 나는 병원에서 만나는 할머니들께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다녔다.
평범함이 제일 쉬웠던 20대
요즘은 그 어렵다는 평범함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왔다. 대학진학, 취업, 결혼, 출산을 너무나 순탄하게 지나왔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입사 지원했던 수많은 기업 중 딱 한군데만 합격해서 다닌 회사가 1금융권 시중은행이다. 27살에 친구들 다 결혼할 때 적령기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고, 29살에 출산을 했다. 취업준비가 그나마 제일 큰 고난이었을까. 결과는 1금융권 시중은행에 합격하며 큰 고난이 없었다. 때가 되면 때에 맞춰 적기에 모든 것이 착착 진행 된 평범한 삶을 살았다.
열정적이었던 회사생활
꿈꾸던 회사에 취업을 한 만큼 열정적으로 회사생활을 했다. 나의 명랑함은 직장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게 한 요소였고, 약 1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에서 두 차례 상을 받기도 했다. 입사 초기 3년은 열정과 애사심으로 매일 하는 야근에도 불평이 없었고, 나보다 회사의 발전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회사생활을 했던 나는 퇴사직전까지도 최선을 다해서 근무했다. (비록 퇴사로 마무리했지만..ㅎㅎ) 지금은 회사가 아닌 나의 인생에 열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요즘의 나의 생활을 들으면 '아픈데 뭐 이렇게까지 열심히 사냐'고 한다. 딱히 열심히 살지는 않는다. 모든 걸 잃어봤고, 이 세상의 ‘나’는 없을 뻔 했기에 지금의 내게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뿐이다.
나를 잃게 한 출산과 육아
나는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늘 있었다. 예쁘고 날씬한 커리어우먼인 나의 모습을 스스로 너무나 사랑했기에 출산으로 인해 망가질 내 모습이 두려웠고 싫었다. 역시나 출산 후에는 예전 같지 않았다. 모유수유를 하느라 임신 중 불어났던 체중은 다 돌아와 날씬했지만 배에는 늘어난 살가죽이 붙어있었고, 아이를 안고 있느라 진정한 ‘애엄마’의 튼실한 어깨와 팔뚝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력단절? ‘말해 뭐해~’다. 이미 내 뇌구조는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했던 업무는 뇌의 콩알만 한 어딘가에 쑤셔 박혀 있었다. 출산이 문제가 아니었다. 육아는... 나의 전부를 잃게 만들었다. 아니, 아이를 돌보기만 했지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나는 책임감이 유난히 강한 편이다. 책임감을 가지면 가끔은 지나치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모유수유도 그렇게 시작했다. 엄마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주겠다는, 내가 가진 영양과 면역력을 다 주겠다는 마음으로 모유수유를 했다. 분유를 먹이는 것은 엄마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2시간 단위로 울부짖던 갓난쟁이 아들을 위해 잠을 포기했다. 나를 어떻게든 도와주려던 신랑의 마음은 접어두게 한 채 6개월간 지극정성으로 모유수유를 했다. 덕분인지 아닌지, 아이는 돌 때까지도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하게 신생아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6개월 간 엄청난 피로가 쌓여있던 내 몸이 조금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의 출퇴근 시간은 날마다 달랐다. 아이에게 수면패턴을 만들어주고 겨우 재우면 갑자기 퇴근하여 나타나 아이와 나를 깨웠고, 그로 인한 나의 예민함은 전부 남편에게로 꽂혔다. 남편이 알아서 조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퇴근해 집에 있을 때면, 아이의 수면시간, 수유양 등을 알려줬지만 아빠의 영역은 아니었는지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늘 나의 짜증과 가르침(?)을 견뎌야만 했던 남편도 집에 오는 것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처음인 나도, 아빠가 처음인 그도 달라진 서로를 챙겨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6개월간 계속된 과로와 신경의 예민함(스트레스)으로 결국 뇌졸중이 발생했다. 정식 진단명은 뇌동정맥기형의 파열에 의한 뇌출혈로 혈관에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긴 했지만, 기형혈관이 있다고 무조건 뇌졸중이 되는 건 아니기에, 피로가 뇌졸중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만나본 수많은 의사 선생님 중 한 분이 그러셨다. 과로로 인해 코 혈관이 터졌으면 코피로 끝났을 텐데 뇌에 기형혈관이 있어서 뇌혈관이 터진 것일 수도 있다고..
육아를 하는 동안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나 스스로 알았더라면.. 피곤하고 예민한 나를 위해 잠을 조금 더 자고, 스트레스를 잘 다스렸더라면 코피는 났어도, 뇌출혈로 쓰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온통 아이에게 집중한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고, 나를 좀 챙겨달라고, 나를 좀 봐달라고 하는 뇌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