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월요일 아침은 힘이 난다. 미소가 퍼져 오른다. 복직 이후 제일 좋아하게 된 요일이다. 평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적어져서 생기는 미안함을 주말 온 힘을 다해 사랑으로 퍼붓고 나면 피곤함이 찾아온다. 육아가 이렇게 고된 일이었지? 주말이라고 전혀 쉴 수 없다. 오히려 아이만 돌보는 주말이 더 바쁘다.
월요일 아침 분주하게 아이 등원 준비와 출근 준비를 동시에 마치고 회사에 도착하면 나갔던 정신이 서서히 돌아온다. 커피 한 잔을 손에 쥐며 내쉬어 보는 큰 숨은 한숨이 아닌 쉼이다.
"선배님 월요일 오전 회사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정말 좋지 않아요? 캬~"
커피를 마시며 옆 자리 선배에게 말을 건넨다.
"주말에 힘 들었어? 왜 그래?"
"주말에 아이한테 시달렸더니 그런가봐요. 아이 얼집 보내고 커피 마시니 살 것 같은데요? 얼집 만세에요, 진짜."
"그치, 힘들지. 아직 애기인데. 그래도 그 때가 젤 귀엽고 젤 이쁜 거다. 크면 귀엽지도 이쁘지도 않고 속만 썩인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를 키우는 선배는 지금의 아기 때가 젤 이쁜 거라 말해준다. 수현은 핸드폰을 열어 주말에 찍은 아이 사진을 내리 감상한다. 커피 한 잔과 사진 속 아기를 보니 세상 제일 예쁜 아가다, 아가.
출산 전에는 월요병이 있어 출근하는 월요일이 제일 싫었지만, 이젠 달라졌다. 출근해서 마음 놓고 커피 마실 수 있는 월요일이 제일 좋은 수현이었다. 무려 따뜻한 커피다. 커피가 식기 전에 다 마실 수 있는 행복감에 인권의 기본이 보장받는 기분이다.
점심을 먹고 났더니 나른해진다. 어제 아이와 함께 첫 놀이동산을 다녀 왔더니 몹시 피곤했다. 사람이 많아서 낯설어서인지 유모차는 타지도 않고 내내 안고 다니느라 녹초가 되었다. 양치를 하며 잠이라도 깰까 싶어 화장실에 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다크써클이 코까지 내려왔어."
"차장님 안녕하세요. 어제 아이랑 에버랜드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네요? 내내 안고 다녀서 그런가봐요."
"아이고, 힘들 때다. 아이 어릴 때가 제일 힘들지. 집에 있어도 힘들고 나가도 힘들고, 나도 그랬는데.. 지금은 애 얼굴 보기도 힘들어, 지가 젤 바빠. 주말이면 학원 다니느라 더 못 보고. 그런 거 보면 짠하기도 하고.
"우와, 엄청 바쁜가 봐요. 차장님 어떻게 애 키우며 회사 다니셨어요? 그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환경이 안 좋았을 때인데요."
"그치, 말도 마. 나 때는 육아휴직 자체를 못 썼지. 3개월 출산휴가만 쓰고 시어머님께 아이 맡기고 출근했어. 주말마다 부산까지 내려갔다 왔다하는데 삶이 어찌나 고단하던지."
"부산은 왜요?"
"시부모님이 부산에 사시거든. 우리 집에 올라와서는 못 봐주신다 그래서 부산에 맡겼지. 남편이랑 주말마다 부산 가서 애 보고 일요일에 올라오고, 아휴 긴 세월이었다, 정말"
"장난 아니네요, 부산까지. 아이 엄청 보고 싶으셨겠어요. 시부모님 눈치도 보이구요."
"말해 뭐해. 백일 된 아기였는데. 아이 보러 갈 때는 그립고 사무치고 설레고 너무 보고 싶지. 헤어질 때는 세상 서럽고 나쁜 엄마 같고,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자책도 하고. 시부모님께 죄송하고, 내가 죄인이었지. 그래도 어째, 별 수가 있나. 그냥 버틴거야."
"차장님, 그 때 진짜 힘들어 보였는데. 살도 많이 빠졌잖아요, 주말 출근 못해서 평일엔 야근도 많이 하시고요. 그래도 이제 많이 키우셨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과장님이 덧붙인다.
"내가 키웠나? 아기 때는 시어머님이, 초등학교 때는 우리 엄마가 키웠지. 내가 할 말이 없다, 참! 자기는 요새 어떻게 지내는 거니? 아이 올해 학교 들어간다 했잖아."
"과장님 아이 벌써 학교 들어갔어요? 출산휴가 갔다 복직하신 거 엊그제 같은데, 우와"
"원래 남의 애는 빨리 크는 거야. 네가 그 사이 결혼하고 애도 낳았으니 우리 애는 엄청 컸지. 올해 학교 입학했어. 차장님 저 요새 진짜 또 한 번 고비에요. 일단 여동생이 와서 아이 봐 주고 있는데 여동생 눈치에, 아이 눈치에, 남편 성화에. 미치겠어요."
"시험 준비하고 있다던 여동생?"
"네, 작년 시험 본 게 잘 안되서 시간이 생겨 잠깐 아이 봐 주고 있어요. 제가 부탁했거든요. 용돈 줄 테니 조카 학교 적응할 때까지만 도와달라고요. 덕분에 아이 케어도 많이 해 주고 믿음직하긴 한데 마음이 편하진 않아요."
"당연히 안 편하지. 하지만 어째~ 자기가 휴직 낼 거 아니면 아쉬운 입장인데 동생 달래서 애 맡겨야지. 그래도 자기 좀 편하졌겠는데?"
"그건 그래요, 작년 엄마가 봐 주실 때보다 동생이라서 애를 좀 더 엄격하게도 봐 주고 숙제도 챙기더라고요. 덕분에 제가 야근 하는거에요."
"작년에는 어머님이 봐 주신 거에요?"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수현이 물어봤다.
"어린이집이랑 엄마 콤보였지. 나도 출산휴가 쓰고 바로 복직했으니. 엄마가 돈 벌 수 있을 때 벌라고 애 봐주시겠다고 계속 그러셨거든. 덕분에 회사 잘 다녔지. 아이 어떻게 했어?"
차장님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어린이 집 보내고, 돌봄 이모님이 봐 주셔요."
"양가 어머님들은, 힘드셔?"
"네, 어머님들이 다 몸이 안 좋으셔서 아이를 봐 주실 수가 없으세요."
"아이고, 힘들겠다 고생이다."
"다들 시어머님, 어머님, 동생 피붙이가 도와 주네요. 진짜 부러워요."
"맞아 자기랑 나는 복 받은거지. 눈치야 누가 애를 봐도 보이는 거고. 그나마 믿을 순 있잖아."
"그쵸? 차장님? 그런 거죠? 계속 회사 다녀야 하나 고민이라서요. 동생이 그만 둔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자기가 휴직하고 애 볼 거 아니면 동생 잘 꼬셔야지, 임원처럼 극진히 모시고. 부산에서 애 데리고 올라와서는 친정 엄마가 아예 우리 집 들어오셔서 같이 살았거든. 엄마가 그러시더라.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어떤 여자 한 명의 희생이 필요한 거라고. 그 여자 한 명이 엄마가 될 수도 있고, 친정엄마, 시엄마, 동생, 이모 등 누가 될 수도 있대. 어찌 되었건 여자 한 명이 필요하대. 그 때는 몰랐는데 엄마 아프시고 나서는 그 말 생각하며 참 많이 울었어 나도. 내가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서. 그런데 지나가더라, 애도 크고. 자기도 수현씨도 힘내고 잘 버텨!"
"맞아요, 차장님. 저도 엄마가 힘들게 한 공부, 어렵게 들어간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두냐고, 회사 열심히 다니라고 엄마가 봐 주신다고 하니깐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죠. 엄마 없었으면 상상도 안 가요. 이 나이 먹어서도 엄마가 필요한 어른이에요."
"저는 근처에 피붙이도 없는데 잘 버틸 수 있을까요?"
차장님, 과장님의 말에 친정 엄마 도움들을 들어보니 엄마가 보고 싶어져 마음이 서글퍼져 질문을 건넸다.
"복직한지 얼마 안 되서 힘들지? 이제 진짜 맘에서 워킹맘 시작한거야. 일단 3개월만 버텨. 그러면 애도 어른도 다 적응해. 초반 3개월이 제일 힘들어. 그래서 나라에서도 6개월 다니면 그 때 육아휴직 때 안 준 급여 몰아 주는거야. 일단 3개월만 잘 참아보면 6개월은 쉬워. 절대 그만두지 말고, 알았지?"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로 돌아가며 사무실을 한 번 훑어봤다. 많은 남자 직원 사이로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여자 선배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선배들도 그만큼 애를 키웠으니 나도 뭔가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