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_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져서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가기 딱 좋은 계절이다. 19개월차 아이의 엉거주춤 뛰어가는 뒷태는 사랑스럽기 그지 없지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평일에 회사에서 쌓인 피로감과 함께 주말이면 자주 졸았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와 함께 시간을 제대로 못 지내는 것 같아 적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컸다.
“여보, 점심 잘 먹었어?”
출장 가 있는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그럼, 회사에서 주는 맛있는 밥 오늘도 열심히 먹었지, 여보는 지금 출근한 거지?”
“웅, 애기는 어린이집 잘 갔어?”
“그럼. 어제 밤 잠을 잘 못 설치긴 했는데 다행히 오늘 아침은 컨디션 괜찮아서 어린이집 갔지. 혹시 아파서 등원 못 할까봐 걱정했어.”
“어디가 아픈가? 왜 그러지?”
“모르겠어. 요새 날씨가 진짜 너무 좋아서 이번 주말을 애 데리고 나들이 가려고.”
“혼자서 괜찮겠어? 힘들텐데 나 가면 같이 가지, 왜”
“남편 없다고 애랑 나랑 둘이 계속 집에만 있을 수도 없잖아. 하루 이틀도 아니고. 갈 수 있어. 애도 잘 걷는데 뭐. 어디 갈지 알아봐야겠어.”
“대단하네, 우리 여보. 일도 잘 하고 애도 잘 보고. 대단한 워킹맘이야.”
“여보 돌아오면 애는 여보한테 맡길거야.”
“알았어, 당연하지. 그럼 나 이만 회의 들어갈게.”
평일 회사에서 남편과의 메신저는 출장에 상관없이 똑같아서 부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과의 짧은 대화 후 안정감을 느껴 이내 기분이 좋아져 주말 아이와 갈 곳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이 데리고 가기 쉬운 곳은 어디일까 손가락을 바삐 검색하다 어린이 집에서 온 연락을 무심결에 받았다.
‘무슨 전화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이내 가슴이 쿵쿵 거린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키즈숲 어린이집 입니다. 우리 아이가 손에 붉은 반점들이 나서요. 열도 나고요. 아무래도 빨리 병월을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네? 갑자기요? 아침엔 괜찮았는데, 많이 심한가요?"
"점심 먹기 전부터 미열이 있더니 밥을 통 못 먹더라고요. 지금은 열이 제법 올랐어요. 손도 울긋불긋하고요."
"아이는 지금 괜찮나요?”
“일단, 열 때문에 힘든지 축 쳐져서요. 해열제를 먹일까요, 어머님?”
“네, 먹여 주세요, 선생님. 아침에는 컨디션 좋아서 등원시켰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일찍 하원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네, 어머님 바로 먹일게요. 좀 있다 뵙겠습니다.”
뭘까? 뭐지? 순간 머리가 띵했다. 어제 밤 잠을 못 자고 아이가 보챔이 심했는데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인지 생각해 본다. 의심되는 몇 가지가 아니기를 바라며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과 마음이 바빠진다. 빨리 퇴근을 하기 위해 하던 일을 부랴부랴 정리한다.
"과장님 내일 회식 참석하시나요?"
부서 CA님이 건네는 말에 나는 다른 한 숨이 나왔다.
"아니요. 내일 회식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지난 달도 참석 못 하셨는데, 또요? 이번 달 소고기 먹으러 가서 과장님도 같이 가면 좋을텐데, 아쉽네요.”
“요새 남편이 출장 가 있어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요, 죄송해요. 다음 달은 참석하도록 해 보겠습니다. 혹시 부장님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아까부터 안 보이셔서요."
"부장님 점심 시간 후 바로 회의 가셔서 2시간은 걸리실 거에요."
"그래요? 아이가 아프다고 지금 연락이 와서, 제가 오늘 빨리 퇴근을 해야 해서요. 내일 회의 자료 때문에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
"메신저, 남겨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할 일들을 부랴부랴 마친 뒤 부장님께 메세지를 보내고 오늘도 제일 빨리 퇴근을 했다.
"부장님, 아이가 아프다고 연락이 와서 오늘 급하게 퇴근합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자료는 1차로 완성해서 송부드립니다."
사원증을 빼는 분주한 손길에 재촉하듯 걸어 나오는 발걸음은 더해진다.
애 하나 키우는데 세상 죄송한 일은 왜 이리 많은 것인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바쁘게 열심히 사는데, 점점 죄송한 일만 늘어가는 것 같은 수현이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살고 있나 한 숨부터 나온 채 택시를 잡으러 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