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는 독박 육아의 시작
"나 없이 괜찮겠어? 잘 지낼 수 있겠어?"
"그럼, 가지 마, 안 가면 되겠네. 안 괜찮으니깐."
"내가 할 말이 없네. 미안해."
시무룩해하며 고개를 돌리는 남편을 보니 내가 너무 몰아붙인 것 같아 한 풀 꺽으며 다시 말을 건넸다.
"됐어. 여보도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니깐. 진짜 그 회사 왜 그러냐. 부서를 바꾸든가 해 봐 좀."
출장 짐을 꾸리는 남편의 어깨가 유난히 좁아 보인다. 휴직 끝내고 복직해서 회사 생활에 적응했다 싶어 긴장이 좀 풀리려는 순간 맞닥뜨린 남편의 출장이었다. 두 달 해외 출장이다. 회사 일이 늦게 끝나 평일에는 아이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주말만이라도 아이와 알뜰살뜰 지내는 사이라 시간이 소중한데 이제는 주말에도 볼 수 없다니 아이도 짠하고 남편도 짠하다. 그렇지만 내 자신이 젤 가.엾.다. 평일 회사에, 퇴근 후 육아에, 주말 육아 전담이라, 잘 할 수 있을까?
사실 남편 없이 육아를 독박으로 전담하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남편이 해외출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이제 거의 2년이 다 되어가는 일상 중 일상이었다.
"택배 왔습니다." 띵동
'아이가 있으니 벨을 누르지 말아 주세요.' 분명 문구를 적어 문 앞에 붙였는데, 벨 소리와 함께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래, 깰 시간이 되긴 했지라며 스스로 다독이며 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애기 잘 잤어요? 띵동 소리에 깼어요? 택배 아저씨가 우리 애기 기저귀 갖다 주셨엉. 엉덩이 뽀송뽀송해지겠네"
아이 자는 동안 고요했던 집이 말소리로 가득해진다. 그래봤자 혼자만의 독백이다. 텅 빈 집에 소리가 울린다. 반가운 택배 아저씨는 3일만에 들어 본 사람의 인기척이었다. 택배도 사람의 흔적인지라 그것조차 반가운 나날이었다. 옆에서 24시간 존재를 나타내는 아기가 있긴 했지만 하루 종일 들리는 말소리는 나 혼자의 것이었다.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벌써 남편이 출장간지 4주가 지나 이제 반이 지났다. 4주를 홀로 아기를 봤으니 육아 피로도는 상당했다. 평일은 일주일에 두 번 마트 문화센터를 가니 그나마 시간이 제법 잘 가는 느낌인데 주말이 문제다.
지난 주말은 아기 낮잠 시간에 맞춰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혼자 해 먹는 밥이 지겨워 간단히 빵이나 살까 했다. 낮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기는 안 자고 울기만 했다. 날이 더웠는지 잠을 자지 못한 울음 소리의 날만 더 세졌다. 재우다 재우다 결국 진땀을 흘리며 유모차에서 꺼내 아기띠를 했다. 습하고 무더운 날 잔뜩 성난 아이를 안고 있자니 어른도 아이도 모두 땀이 한 가득이었다. 여러모로 지쳐가는 순간 눈에 시원한 카페가 보였다. 겨우 잠이 든 아기를 안고 카페에 들어갈까 조용한지 살펴봤다. 어떤 남자가 천으로 덮어진 유모차를 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순간 구름이 걷히며 빛이 반사되어 유리창 밖의 모습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에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벌개진 얼굴로 축 늘어진 아이를 안고 유모차까지 밀고 있는 모습의 한 여자가 비친다. 얼굴에서 흐르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날이 더워도 너무 덥다.
“남편, 빨리 와..”
남편이 몹시 그리웠다.
이번 주는 내내 장마라서 도통 밖에 나갈 수조차 없다. 초보 운전이라 장대비가 내리는 날씨에 좀처럼 운전대를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버스와 택시가 자주 다니지 않는 동네라서 운전하지 않는 한 이동이 어려웠다. 여러모로 장마 비를 뚫고 아기를 데리고 나가기 쉽지 않았다. 사실 아기와 내가 갈 곳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마 전 후로 4일 동안 집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으니 딱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그 문을 바라본 채 집에만 있었다.
“우리 애기, 엄마랑 지하 주차장에 산책 나가볼까?”
대답 없는 아이에게 말을 건네며 나갈 채비를 해 본다.
혼자라면 우산을 쓰고 어디든 갈텐데, 장마비를 피해 유모차를 덮어 씌울 가림막도 없고 나갈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집을 벗어나 어디든 나가고 싶었다. 남편이 있으면 차 타고 편하게 여기저기 다녔을텐데, 남편이 있으면 함께 어른의 말을 할 수 있었을텐데, 남편이 있으면 10분이라도 마음 편히 쉬고 5분이라도 편하게 화장실에 갈 수 있을텐데, 남편이 있으면…
장마에 발이 묶이고 육아에 갇힌 시간들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