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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Nov 08. 2024

5화_온 마을의 힘

독박육아 살려주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요새 왜 이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요?"
 "쉿! 조용히 해! 나 지금 퇴근하는 길이야."
 퇴근 전 화장실에 들렀는데 점심 식사 후 양치 하고 있는 파트 후배를 만났다.
 "퇴근이요?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애기 아파요?"
 "빙고, 너 잘 맞춘다? 결혼도 안 간 애가."
 "선배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어요. 지난주 부장님께서 선배님 자꾸 자리 빠진다고 뭐라 하는 거 들었거든요. 이번 주도 애기 아픈 거예요?"
 "그러게, 자꾸 업무에서 빠지네, 진짜, 어렵다 워킹맘은! 애기가 수족구라는 전염병에 걸려서 어린이 집에 못 가. 손, 발, 입에 수포가 다 생겨서 먹지도 못하고 열도 심해서 정말 고생했어. 이제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남편은 출장 중이지, 나는 복직한 지 얼마 안 돼서 휴가가 없지, 곡할 노릇이야."
 "어린이집에 못 가면 지금은 애기 누가 봐요?"
 "이모님한테 오늘 부탁드렸어. 지난주부터 주말까지는 우리 엄마가 오시고 이번 주는 시부모님이 오셨지. 어제 애 컨디션이 괜찮길래 시부모님 보내드렸더니 밤에 미열이 나네. 휴. 그래서 오늘 얼집 안 보내고 이모님께 연락했지. 하루 종일 애기 보기에는 이모님 혼자 힘드시니 이제 내가 가 봐야지. 내일도 어찌 될지 모르고."
 "장난 아닌데요? 식구들이 줄줄이 나오는데요?"
 "그래, 진짜 애 하나 키우는데 온 마을이 나서야 해. 살려주세요 하고 싶다. 휴가만 있었어도 나 혼자 몸빵이라도 하지, 이거는 원... 살려 주세요, 진짜!!"
 "와, 이래서 결혼은 어떻게 하고 애는 어떻게 키워요? 선배 저 결혼하지 말까요?"
 결혼식장 예약하러 다녀 바쁘다던 후배는 나의 현실에 결혼의 민낯을 마주한다.
 "결혼은 해도 되는데 애 낳는 것은 신중히 해야지. 애 낳는 순간, 너는!! 나처럼 되는 거야. 여기저기 부탁과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정신없이 회사를 왔다 갔다 하겠지."
 "와우, 결혼부터 전적으로 여자한테 손해인 것 같은데요?"
 "몰라, 말 안 하련다. 네가 잘 보고 판단해. 나 가야 해, 이모님 바통터치 하러!"
 "네네, 어서 가 보세요."

지난주도 허겁지겁 달려 나와 택시를 탔던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언제쯤 퇴근길을 맘 편히 천천히 거닐며 걷게 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집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핸드폰으로 조회하던 중 카톡이 울린다
 "여보, 메신저에 없네. 회의 갔어?"
 출장 간 남편의 연락이다.
 "집에 가는 길이야. 애기 어젯밤에 다시 미열 나서 오늘 어린이집 안 보냈거든. 이모님이 봐주고 계셔서 지금 퇴근하고 가는 길."
 "아직도? 난 어제 엄마 아빠 집에 가셔서 오늘은 우리 애기도 얼집 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회사는 어쩌고?"
 "이리저리 업무 시간 끌어모아서 반차 느낌으로 가까스로 때우고 퇴근해. 휴가 없어서 진짜 미치겠어. 신입사원도 주는 휴가를 육아 휴직했다고 왜 안 주는 거야? 이 망할 놈의 회사 같으니."
 "시스템 진짜 이상하다, 바꿔야 해, 정말. 그나저나 여보 너무 피곤해서 어떻게 해. 애는 괜찮고?"
 "이모님께 연락해 보니 오늘은 애가 컨디션 좋게 잘 놀고 있다는데, 모르지 오늘 밤에 미열이 안 나야 내일 어린이집 갈 텐데.."
 "내가 도움이 못 돼서 할 말이 없다, 미안해."
 "여보 언제 온다고 했지? 아 진짜 빨리 좀 와."

결국 참고 참았던 투정을 내뱉었다. 출장만 보내는 그런 회사 집어 치라고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대출금 현실에 눌러 내렸다.  
 "다음 주에 가니깐 조금만 기다려, 빨리 갈게."
 "그래, 빨리 와서 애 좀 봐줘. 나 숨 좀 쉬고 싶어 ㅠㅠ"
 
 

남편이 출장 갔을 때만 왜 이런 큰 일들이 생기는지, 독박 육아의 어려움에 몸부림을 친다. 아이 한 명이 아플 뿐인데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부탁과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들에 숨이 막혀 왔다. 홀로 애 키우는 것은 이렇게 힘든 것일까?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절감했다.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닌 지 8개월째. 아이는 온갖 전염병에 걸리며 끊임없이 병치레를 하고 있다. 나는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고 아이는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는다. 집에 가는 길 얼굴에 그늘이 진다. 내가 두 돌까지 아이를 돌보았다면 아이는 어린이 집에 가지 않고 덜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아진다. 두 돌까지 사용할 수 있는 휴직이 없는 회사가 또 미워졌다. 이래서 공무원, 선생님이 애 키우면서 여자가 갖는 직업으로 최고라 하나보다. 전공을 잘못 선택했나. 망할 놈의 회사. 이 험난함을 누구 탓이라도 하고 싶어 애꿎은 회사만 계속 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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