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화만사성의 양면성
"음마 엄마 빠빠.”
“아이, 귀여워. 우리 애기. 오늘도 재미있게 놀고 있어~ 엄마 빨리 회사 다녀올게. 사랑해.”
눈을 맞추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아기를 보자하니, 입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이 예쁜 걸 두고 출근해야 하다니,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다.
“네, 어서 가 보세요 어머님.”
“아,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어린이 집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길. 아이가 컨디션이 좋아 울지 않고 어린이 집에 잘 들어가니 내 기분도 한껏 가볍다. 마음 편히 출근하는 길이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다. 비록 내 기침이 잦아들 생각을 안 해서 목이 괴롭긴 하지만, 아이가 안 아픈 것만으로 고마운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그룹장님”
“어~ 왔어요. 어제 자료 보낸 것 봤는데 좋던데요? 드디어 원하는 목표치로 결과도 나왔고, 뒷받침하는 분석도 잘 되어 있고. 긴급 사항이니 조금 다듬어서 팀장님께 바로 서면 보고합시다. 이제 감 다시 찾았나 봐?”
“하하, 감사합니다. 오전 중에 자료 수정해서 검토 올리겠습니다. (콜록 콜록).”
“아직도 기침해요? 오래 가네. 이 한여름에 냉방병인가? 몸 관리 잘하고요.”
“네.”
늦게 출근해서 눈치 보인 인사였는데 화색이 도는 그룹장님의 칭찬에 내심 어깨가 으쓱해진다. 가화만사성이라 했던가, 아이가 아프지 않고 어린이집에 등원을 잘 하니 집 안이 화목하다. 주변에 도움 청하지 않고 아이는 어린이 집에 나는 회사로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 시간이 감사하다. 회사 일에 집중도 잘 되고 저절로 성과도 잘 나오는 느낌이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이후 주말에는 번갈아가며 육아에서 벗어나 쉴 수 있으니 지친 몸의 회복도 빠르다. 그나저나 이번 냉방병은 오래 가려는지 기침이 끝나질 않는다. (콜록 콜록)
“똑똑. 자기 일어나. 점심 시간 끝났다.”
“헉, 차장님? 어머 웬일이야. 저 잔 거에요?”
“내가 묻고 싶은데, 책상에 엎드려 있길래 혹시나 했는데, 잠들었던 것 맞구나?”
“어머, 웬일이야, 어떡해요.”
“뭘, 어떡해. 일어나서 양치하고 오후 업무 시작하면 되지.”
“정신이 없네요, 네 차장님 화장실에서 뵈요.”
“그래, 어서 침 닦고 와.”
침까지 묻히고 잔 건가 싶어 거울을 꺼내 살펴봤지만 그건 아니다 싶어 다행이었다. 혼자 찔려 냉큼 칫솔을 준비해 사무실을 나갔다. 감기 약에 졸린 성분이 있다 그랬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새 오후만 되면 비몽사몽 했다.
“저 왔어요, 차장님. 안녕하세요. (콜록 콜록)”
“방금 보고 무슨 인사야? 괜찮아?”
“네, 그래도 자고 났더니 한결 몸이 개운하네요.”
“나, 자기 점심시간에 조는 거 처음 봤다. 복직해서 애 아파서 밤 꼬박 샜다고 투덜댈 때도 안 자고 잘만 버티더니.”
“그러게요, 감기약 때문인지 요새 넘 졸립네요.”
“그래? 졸립고 기침도 오래 하고? 자기 혹시 그거 아니야?”
“뭐요, 차장님?”
“둘째? 한 번 테스트해 봐.”
“(콜록 콜록) 차장님!! 아니에요! 진짜 아니에요!”
“으, 드러워. 그만 뱉어. 알았어. 아닐텐데 증상이 그래 보여. 내가 많이 봤잖아.”
“차장님 저 진짜 둘째 생각 절대 없어요. 아시잖아요, 저 독박 육아에 치여 사는 거.”
“아, 그래. 남편은 돌아왔어?”
“네 지난 달에 들어왔어요. 그만 좀 출장가면 좋겠어요, 진짜.”
“남편 돌아왔으면 딱인데? 둘째!”
“차장님!!!”
“알았어, 알았어. 그만 놀릴게. 나 먼저 들어간다. 맞는데.. ”
말도 안 돼. 절대 말도 안된다며 자부했다.
다음 날 혹시나 했던 마음에 확인한 손이 떨렸다. 이 두 줄은 뭘까? …
2년 전 처음 임신 테스터기의 두 줄을 확인할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몇 번의 한 줄을 본 뒤에 만난 두 줄은 감사하고 신기해 기적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 난데없이 두 줄이라니.. 이제 좀 육아가 편해졌는데? 아이와 말 좀 통하고 이제야 덜 아프고 어린이집에도 제대로 다니기 시작했는데? 회사 적응 가까스로 해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아직 복직한지 1년도 안 되었는데? 올해 진급 연차인데?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애 둘은 봐 줄 이모님도 찾기 어렵다던데, 애 둘은 회사 그만둬야 한다는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눈 앞이 깜깜해진다. 숨이 턱턱 막힌다.
남편의 잦은 해외 출장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며 많이 우울했고 적잖이 외로워했다. 친정 엄마가 큰 수술을 하셔서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육아가 힘겨웠고, 엄마가 그리웠다.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가 보고 싶었다. 나에게 육아는 기쁨보다는 고독이었고 즐거움보다는 버거움이었다. 단 한 번도 둘째를 낳아 다시 아이를 키우는 삶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잿빛 어둡던 그시절로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테스터기의 두 줄이라니, 남편에게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