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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Nov 29. 2024

8화_모성보호 제도

대기업에서 두 번째 임신

“안녕하세요 팀장님.”

“들어오세요. 무슨 일? 면담 신청했던데?”

“네 제가 둘째를 임신했습니다. 모성보호를 결재 올려야 해서 사전에 말씀드리려고요.”

“뭐? 임신? 둘째? 애 낳고 복직한 지 얼마 안 되었잖아.”

“아, 네.”

“잠깐만, 임신?”

“네.”

“지난달 임신 계획 조사했을 때 아무 말없지 않았나요?”

“네, 계획에 없었습니다.”

“계획에도 없었는데 둘째를 임신했다고? 왜 이리 생각이 없어요? 똑똑한 사람이 왜 그래? 인생을 그렇게 살면 어떡해. 육아 휴직 얼마나 쓰고 돌아왔지?”

“1년 다 사용했습니다.”

“회사가 그렇게 기다려주고 다시 일할 기회를 줬으면 열심히 해야지. 다시 임신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또 휴직 쓸 거 아닙니까? 그러면 회사는 또 기다려줘야 합니까? 아니 둘째를 갖더라도 계획 있게 회사 적응도 하고 일 좀 한 다음에 해야지, 이건 무슨 바로 이렇게.. 왜 이리 생각을 못 합니까?”

“..”

“박수현 님 지금 하고 있는 결과 상당히 의미 있길래 내가 사업부 뉴챌린지상 후보에도 넣었는데, 회사 일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뭡니까?”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안타깝다 이거지. 한창 열심히 할 수 있을 때 또 쉬어야 한다니깐. 그런데 회사 다닐 생각은 있어요?”

“네, 저는 계속 다니고 싶습니다.”

“그러고 싶었으면 똑똑하게 행동을 했어야지. 알겠으니 나가 봐요. 회의 시간 다 됐네”

“네. 가 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지? 새하얘진 머리로 폭발 직전의 눈을 열심히 굴려 마땅한 장소를 찾아본다. 어디로 가야 좀 울어도 괜찮을까? 거지 같은 말을 들으며 참느라 힘들었으니 어디에 가서 분을 풀어야 할까? 회사니까 속으로 그저 삭혀야 할까? 축하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온갖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말을 잔뜩 들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도 임산부한테! 완전 개새끼네 진짜. 일단 감정을 식힐 시간이 필요했다. 이 쇼크를 가라앉혀야 했다. 만만한 화장실로 달려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이내 시뻘게진 모습 속 잔뜩 맺혀있는 눈물을 보고는 이를 악물고 삼켜본다. 




“산모님, 이 화면 좀 보세요. 아기집에 피고임이 상당해요. 지난 검사 때도 이 정도 있긴 했는데 지금은 아래까지 훨씬 커졌어요. 이대로는 아기가 위험해요. 푹 쉬셔야 해요. 산모님”

“아, 네.”

“산모님 이해하셨어요? 직장 다니시면 안 된다고요. 집에서 푹 쉬셔야 해요.”

“네? 그 정도인가요?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해요?”

“쉬셔야죠, 병가 쓰실 수 있죠? 병가 내고 잘 쉬셔야 해요. 제가 진단서 써 드릴게요. 일단 2주 집에서 아기 잘 지켜 주시고 2주 후 검진 때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상태로는 더 걸릴 수도 있어요. 심각한 거예요, 산모님. 움직이지 말고 쉬어야 해요.”

“아.... 네 알겠습니다. 진단서 써 주세요, 선생님.”


어리둥절 머리가 텅 빈다. 병가? 그거 엄청 아파서 못 움직이는 사람들만 쓰는 거 아니었나? 내가 그 정도라고? 나 괜찮은데.. 조금 힘들지만 버틸 수 있는데, 괜찮은데. 이렇게 버티면 되는 것 아닌가? 어제는 팀장한테, 오늘은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한테 시한폭탄 같은 소리를 들으니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다. 임신 후 회사에서 오후 4시만 되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곤 했다.  입덧과 더불어 하복부의 통증이 있어 앉아 있는 것이 고욕인 시간이었다. 퇴근의 기쁨은 잠시,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아이와 부대껴 시간을 보내느라 쉴 수는 없었다. 남편은 긴급 TF 팀에 편성되어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주말도 출근을 하니 아이는 수현 차지였다. 임신한 지 2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5kg 빠졌으니, 일상이 힘에 겹긴 했다. 이 정도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도 병가를 써야 하나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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