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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하 Dec 06. 2024

9화_임신 그리고 하위 고과

대기업 두 번째 임신의 결과

9화_임신 그리고 하위 고과


“안녕하세요 파트장님, 오늘 출근했습니다.”

“잘 왔어요. 몸 좀 괜찮아요? 얼굴은 여전히 창백한대요?”

한 달 만에 출근하는 사무실이 무척 반갑다. 2주를 쉬고 병원에서 아기집 피고임이 여전하다고 진단하셔서 2주를 더 요양했다. 집에서 쉬는 동안 몸은 좋아졌지만 마음이 계속 가라앉아 무거웠다. 다시 출근하는 마음에 작은 설렘이 올라왔다. 

“그런가요? 그래도 병원에서 많이 좋아졌다고 병가 끝내도 된다고 해 주셨어요.”

“다행이네요, 내가 늦게 결혼해서 우리 아이들이 같은 나이잖아요. 그래서 수현 님 보면 마음이 더 기우네요. 아이는 어린이 집 잘 다니죠?”

“네, 어린이 집 다녀오면 제 다리도 주물러 주고 해요. 잘 놀아주고 싶은데 제가 계속 누워만 있어서 그게 좀 미안해요.”

“잘하고 있는 거예요, 엄마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정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파트장님.”

“출근한 김에 확인할 게 하나 있는데, 음..”

“네”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그동안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이걸 이제는 결재 올려야 해서.. 수현씨 병가 낸 기간에 상반기 고과 시즌이라 결과가 나왔어요. 아시다시피 본인 면담 후 확정해야 해서요.”

“네”

“수현님 하위 고과가 나왔어요.”

“네? 제가요?”

“네.”

“왜요 파트장님?”

“그게.. 병가를 낸 것도 있고, 그전에 몸이 안 좋아서 빨리 퇴근하면서 회사 생활에 집중을 못 한 것도 보이고 해서요. 복직해서 얼마 안 되기도 했고요”

“제가요? 제가 고과 대상자인 건 맞나요?”

“작년 하반기에 복직했으니 올 상반기 고과 대상 맞더라고요.”

“파트장님, 저 상반기 업무 성과로 사업부 보고도 하고 그걸로 뉴챌린상 후보 올라간 것 아시잖아요. 특허도 심사 올렸고요. 제가 복직하자마자 맡은 과제 개수만 해도 몇 개인지 아시면서 하위 고과요?”

“그러게 유감스럽네요.”

“파트장님 이건 제가 받아 들 일 수가 없습니다, 이의 신청을 하고 싶은데 인사과에 제기하면 되나요?”

“아니, 수현님 그건 아니고요. 참 어렵네요.”

“절차 알려주세요, 저 이의 제기하겠습니다.”

“정 그러면 팀장님께 먼저 면담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팀장님이요? 이 고과 팀장님이 결정하신 건가요?”

“그렇죠, 최종 결정은 팀장님이 승인하셔서 내려온 거죠.”

“제가 임신해서 하위 고과 결정하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몸을 회복해서 회사에 나왔는데 날 기다리는 것은 하위 고과였구나. 이럴 거 그 힘든 몸으로 뭐 하러 아등바등 회사는 다닌 것일까? 몹시 화가 났다. 병가 전 팀장과의 면담이 수치스러운 무례함의 절정이었다면 이번 고과 결정은 분노를 넘어 몽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축하는커녕, 이토록 대기업 부품스럽게 사람을 취급하다니. 불량 나면 버리는 칩 하나의 존재일까?

이대로 팀장을 찾아가면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했다. 고과 대상 기준, 심사 대상 날짜를 비롯하여 맡고 있는 업무 리스트, 진행 내역, 성과, 다른 그룹과의 협업까지 모두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병가의 경우 고과 심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도 알아봐야 했다. 정말 일을 못해서 하위 고과를 받은 것이라면 이의가 없지만 그것이 아니라 단순히 임신 때문이라면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모욕은 한 번으로 족했다. 

회사 다니면서 임신한 게 잘못인 건가? 두 번째 임신이라서? 죄지은 것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죄지은 사람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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