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보고 놀란 가슴 ~ ‘휴’

스산했던 1979년 10월의 기억...

by 별사탕아빠

작년 12월 초(初)였다.


평소 TV 보기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는 시간에 전역한 여군출신들이 자신이 나온 부대를 대표해 경쟁을 벌이는 방송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아내와 아이는 상상도 못 할 짧은 시간 안에 목표물을 제거하는 엄청난 사격실력을 가진 보이시한 스타일을 가진 출연자의 팬이 되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왜 우리나라 최초의 여군 저격수가 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일주일 동안 오매불망 기다려왔던 방송을 재미있게 보고 있던 와중에 화면 절반을 차지한 자막이 뉴스특보를 제목과 함께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참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던 아이는 투덜대면서 TV화면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 자막이 언제 사라지냐는 질문을 반복했다.


특보라는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뉴스내용을 읽던 나는 아찔했는데, 계엄을 선포했다는 뜬금없으면서도 엄청나게 심각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기에 채널도 요리조리 바꿔보았지만 모든 채널에서 정규방송이 중단된 채 속보형식으로 뉴스가 진행되는 것을 보니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계엄에 대한 기억으로 불안해진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부터 재우자는 나의 의견에 동의한 아내가 먼저 아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향했고, 나도 TV를 비롯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하고 난 후 뒤를 따랐다.


아빠의 표정이나 태도에서 여느 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아이는 평소와는 달리 떼도 쓰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와 아이는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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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고?, 지금이 21세긴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마루에 나와 급하게 TV의 스위치를 켜는 내 머릿속으로는 45년쯤 전(前)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가 경험했던 스산했던 10월의 일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침에 등교하던 길에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는 신문들이 눈에 띄었다. 호외라고 표시된 종이에는 ‘有故’라는 제목과 함께 대통령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찍혀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기에 유고를 당시 동유럽에 있던 유고슬라비아라는 국가의 줄임말로만 알고 있었던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그 호외기사는 충격적이었다.


그날부터 방송은 유고, 서거, 계엄, 국장 등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좋지 못한 느낌을 주는 내용들로 채워졌고, 슬픈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국장이라고 불리는 기간은 9일 동안 계속되었다.


마지막 날 하얀 꽃으로 뒤덮인 운구차를 육사생도들의 호위했고, 청와대를 떠나 국립묘지에 도착한 후 안장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음울한 방송은 계속되었다.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TV에서는 그날의 사건에 대한 내용을 다뤘는데, 그 때문인지 당시에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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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사이에서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입에 오르내렸다.


어른들끼리 하는 얘기를 조금이라도 귀동냥했던 아이들은 친구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거리며 특유의 허풍을 더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이어서 머릿속에 남았던 것은 나의 짝이 들려줬던 얘기였는데,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었다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을 쏜 범인은 독재를 타도한 영웅이라는 것이었다.


종일 친구가 말한 이야기의 진위여부가 궁금했던 나는 저녁식사자리에서 아버지께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가 사실인지를 여쭈었다.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굳어진 표정으로 나를 보시던 아버지는 “절대로, 어디서도 다시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마라!”라며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잘못했을 때처럼 아버지가 화를 내거나 꾸짖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의 아버지의 말은 거역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그때 나의 질문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을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부주의한 말 때문에 화를 입는 일이 심심치 않았던 군사정권 시대의 엄혹함을 알고 계셨던 아버지께서는 내재된 위험성을 알지 못한 채 질문을 해대는 철없는 아들의 행동을 보며 밤잠을 설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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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다시 켜는 시간이 왜 그렇게 더디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예전의 계엄 때처럼 방송화면은 사라지고 음악만 나오고 있으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기자들이 현지에서 보도하고 있는 장면은 희소식이었다.


방송국이 3개뿐이었던 시절과 달리 수없이 많은 모든 방송국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자 내 걱정이 기우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엄해제를 위한 의결권 행사를 위해 국회에 모이는 국회의원들과 작은 실랑이는 있었지만 경찰도 군인도 딱히 막을 생각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기에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군사정권 시절 대학을 다녀서인지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감까지 불식할 수는 없었다.


의결권을 막기 위해서인지 국회에 군인들이 난입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계엄은 해제되었고, 화면에는 헬기를 타고 떠나는 군인들의 모습도 비치어졌다.


앞으로 엄청난 파장을 가지고 오겠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하는 일이 더 이상 용인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위안으로 다가왔다.


아빠가 되고 보니 모르는 사이에 걱정이 많았는지 긴장이 풀리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휴~우~~, 솥뚜껑이라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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