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사람의 취향
퇴근하고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내의 양손에 반찬통이 잔뜩 들려있을 때가 가끔 있다.
반찬거리를 한가득 만들어놓은 장모님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손이 큰 데다 자신의 음식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한 장모님이 음식을 할 때 보면 양이 엄청나다.
나물과 국이 대부분인 음식을 잔뜩 준비한 장모님이 의기양양하게 출가한 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음식을 가져가라는 전갈을 남기면 딸들은 집에 들러 얘기를 나누고 음식을 가져간다.
그중에서도 장모님이 가장 챙기는 사람이 아내인데, 이유는 마흔이 되어서야 결혼해 직장생활과 살림을 병행하는 모습을 애처롭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결혼 전에는 남을 위해 요리를 만들거나 하지 않았기에 걱정이 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내가 처가에 들르기 힘들다고 할 때면, 사위인 나를 부르거나 직접 카트에 싣고 우리 집으로 가져오시는 일도 마다치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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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딸을 위하는 장모님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딸을 위한 배려가 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장모님이 보내온 음식 대부분은 나물과 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물은 원래도 보관기간이 짧아서 제때 해결하지 못하면 상하기 십상인데, 그릇마다 한 가득인 국과 나물을 처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곤란했다.
더구나 나도 그렇지만 나물을 좋아할 리 없는 어린아이까지 감안하면 결국 그 많은 나물을 처리하는 것은 고스란히 아내의 몫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아내조차 양념이 잔뜩 들어가게 무치는 것을 그렇게까지는 좋아하지 않다 보니 쉬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국도 그랬다. 약간은 달짝지근한 장모님의 스타일은 나와는 맞지 않았는데, 특히 김치찌개의 경우 매콤한 의정부 스타일을 좋아하는 나에게 고춧가루를 씻어낸 후 달달한 맛이 강한 찌개는 숟가락을 담글 생각을 거두게 만들었다.
40년 동안 장모님의 음식을 먹은 아내가 우리 어머니의 음식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면 장모님은 먹는 사람의 피드백에 제대로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이런 일에 골머리를 썩은 우리 가족이 나물을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거나 하면, 장모님은 “아니 비름나물이 얼마나 맛있는데~”라거나, 혹은 “두릅이 얼마나 귀한데~”라며 아내의 말을 일축해 버린다.
…
아내와 나는 방법을 바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마따나 장모님의 음식에 대한 칭찬부터 잔뜩 늘어놓은 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오징어채나 장조림 같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더 필요하다는 식으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런 우리의 작업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장모님이 가져온 음식의 대부분은 항상 많은 양의 국과 나물이었고,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먹을 수 있게 부탁했던 음식은 한두 번만 먹으면 끝날 정도로 쪼금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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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은 음식솜씨에 대한 자신감은 대단하다.
장손 집안의 맏며느리로 오랜 세월 집안을 건사했다는 자신감 때문에 갖게 된 자긍심이 음식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 묻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장모님은 음식에 대한 평가 듣기를 싫어하신다. 가끔 장모님이 친구들과 갔다가 맛있게 먹었다며 데리고 간 음식점을 보면 실제 음식이 맛있는 경우가 드물다. 속이 좋지 못해 본인은 구경만 한 후 음식을 먹은 동료들이 좋다고 한 말을 옮긴 경우가 태반이다.
음식점에서조차 맛이 없어 내가 별로라는 식의 표현이라도 하면 “음식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런 소리 하지 마라.”라고 하실 정도니 본인음식에 대한 평가를 듣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장모님의 자신감은 최근 같이 어울리시는 친구 분들 때문에 더욱 공고해졌다.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 않은 데다 양만 많으면 좋아하는 친구 분들에게 음식을 차려줬다가 최고의 음식솜씨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은 후부터는 아예 귀를 닫았고, 아내와 나는 장모님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장모님이 보내주신 음식을 처리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후에야 우리 집안에는 평화가 찾아왔는데, 그 방법은 장모님과 동향이어선지 음식취향이 비슷한 자형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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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 결혼할 때까지 한 번도 요리를 하지 않아 걱정이라는 장모님의 우려는 기우였다. 아내의 요리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손맛이 빼어났다.
결혼 직후 음식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며, 핸드폰으로 요리방법을 찾아보면서 했던 요리조차 일찍 결혼했던 처형이나 처제는 물론 장모님의 요리보다도 입맛에 맞았다.
작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휴직한 아내는 겨울이 다가올 때쯤 처음으로 김장을 했는데, 어머니도 장모님도 처음이라는 말을 믿지 못할 정도였으니 “엄마 요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는 말을 아이가 입에 달고 다니는 이유가 납득이 간다.
요리의 맛은 사람의 성격을 닮는다. 우리 어머니의 요리를 아내가 좋아하는 것은 취향이나 성격이 비슷해서 인 것 같다. 덕분에 고부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우리 어머니와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나에게는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아내의 요리가 뛰어나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손맛 때문이 아니다.
요리과정에서 아내가 가진 최고의 덕목은 먹는 사람의 취향이나 기호를 존중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먹는 사람을 존중하고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낸 아내의 요리에는 기품이 서려있다.
그런 아내의 요리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저절로 미소가 나오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요리에 대해, “어때?”라는 아내의 물음에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