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예찬

매 순간 아이스크림은 나의 곁에 있었다.

by 별사탕아빠

우리 가족은 매주 토요일마다 혼자 지내시는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기 위해 본가로 가는 길에 항상 들르는 곳이 있는데, 바로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조금씩 고른 후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담고 나면 아이는 제일 먼저 무인계산대 앞으로 다가가서 자기가 계산을 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웃고 있다.


그런 아이의 옆에서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건네주면 아이는 바코드를 찍은 후 나에게 건네주는데, 찍기가 끝나면 아빠에게 카드를 받아 계산을 마치고 나면 마치 중요한 일이라도 끝낸 듯 의기양양해진다.


사실 아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아이스크림을 사는 일이 중요했던 이유는 아내와 어머니의 성향의 차이 때문에 발생했던 나와 아내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낸 화합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는 50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느 고부 사이와 달리 사이가 좋다. 물론 붙임성 좋은 아내의 성격도 한몫 거들었지만 가장 큰 이유로 보이는 것은 아내와 어머니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성향차이도 분명한 것이 아내는 어딘가 방문할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을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머니는 누구에게든 받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성격이다 보니 매주 본가에 갈 때 나와 아내는 무엇을 살지 말지를 놓고 다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나와 아내의 옥신각신을 끝낸 것이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그 이유는 희한하게도 아이스크림을 사가는 것에 대해 어머니가 별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가족은 확실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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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은 고대부터 있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오래된 것 같다.


내가 아이보다 어렸던 70년대 만해도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면 ‘하드’라고 불렸던 과일주스 맛을 첨가한 딱딱한 얼음과자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처음으로 달에 착륙했던 우주선에서 이름을 따왔던 아폴로라는 아이스크림은 선명한 주황색에 우주선 모양으로 생겨서 인기가 많았다.


지금이야 집집마다 냉장고가 보급되었지만, 당시에는 가게에도 냉장고가 없어 이런 하드들을 유리내벽이 있는 통에다 보관해야 했다. 지금처럼 아이스크림을 포장할 기술이 없었는지, 나무막대에 얼린 아이스크림에는 비닐봉지에 쌓인 채 하드 통에 넣은 후 그 위에 얼음이 가득 담긴 고무주머니로 위를 눌러놓고 뚜껑만 닿아놓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과즙을 얼려서 만들던 초창기의 구태에서 벗어난 아이스크림은 맛이나 종류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여러 브랜드의 전문점까지 생겨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을 골라먹을 수 있게 된 지금의 세상이 나처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천국처럼 느껴진다.


그런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많은 아이스크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버지와 같이 마도로스 생활을 하셨다는 아저씨의 집에서 먹었던 토니바라는 아이스크림이다.


바나나 향의 몸통의 윗부분에 초콜릿 코팅이 된 토니바의 맛은 요즘 출시되는 아이스크림과 견주어도 손색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토니바가 떠오른 이유는 맛과 함께 겪었던 즐거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버지의 친구인 그 아저씨는 당시 부산에 최초로 지어진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갔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구경한 데다 시승까지 할 수 있었으니 어린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사였다. 게다가 나보다 3살 정도 많았던 아저씨의 막내딸이었던 누나가 아이스크림을 가져온 곳은 가게에서 볼 수 있는 하드통이 아니라 당시 흔하지 않았던 냉장고였다는 점 때문에 신기함을 누를 수가 없었다.


지금도 바나나와 초콜릿이 섞인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에 빠져 들어갈 때가 있을 정도니 나에게 토니바는 맛을 넘어선 추억을 제공하는 매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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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일주일밖에 남지 않는 축제기간에 배부해야 할 동아리 회지를 편집하느라 새벽까지 작업을 하느라 지쳐있던 나는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선배와 함께 하숙집으로 향했다.


잠을 청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막 뉘었을 때였다. 누워서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기 녀석이 갑자기 꿀을 먹겠다고 단지를 열다가 놓쳤고, 꿀단지는 내 관자놀이 위쪽을 강타했다.


다음날부터 흘러내린 멍 때문에 까맣게 변해버린 눈두덩 때문에 나의 축제 스케줄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축제를 위해 잡아놓은 약속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동아리 선배와 동기가 아이스크림 장사를 위해 빌려놓은 장비를 맡았다.


축제 내내 멍을 감추기 위해 나는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아이스크림 통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러고 보면 아이스크림은 외로울 때도 나의 옆에서 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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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일이 있다.


그 일이 발생한 때 나는 5살쯤이었다.


저녁 무렵 우리 집에는 부모님의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인사를 드렸고, 손님들은 귀엽다며 50 환짜리 백동전을 내 손에 쥐어 주셨다.


해거름이라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어른들이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탄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서 복개천 너머에 있는 곱사등이 할머니의 가게로 달렸고, 하드통을 뒤져 하드를 꺼내 물고는 손님에게 받았던 동전을 할머니께 드렸다.


집으로 가던 중 술에 취한 사람에게 밀려 넘어진 나는 도로에 부딪혔고 턱에서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놀란 할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는 술주정하던 사람에게 호통을 쳐서 쫓아버렸다.


가장 먼저 어린 나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어머니에게 혼날 것 같다는 것이었고, 그다음이 턱에 나는 피가 옷에 묻었을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집에 온 나의 모습에 어른들의 기는 콱 막혀버렸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손은 피를 흘리는 턱을 막고 있었지만, 다른 한 손은 아이스크림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어머니는 나를 혼내야 한다는 사실도 잊었던 것 같다.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고 상처를 보고 나서야 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아신 부모님은 아마도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턱을 소독하기 위해서 빨간 약을 바르고 있는 중에도 나는 혹시나 화가 난 나머지 아이스크림을 뺏어서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핥아먹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지금도 가늠하기 어렵다.


평소엔 그렇게도 엄했던 부모님이 그 일로 꾸지람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해가 진 이후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나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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