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에 대한 동상이몽 - 아이의 완고한 고집의 결과는...
일 년의 마지막 날 가족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만찬을 즐기다가 자정이 가까워지면,
“10,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라고 한 목소리로 카운트하고 나서 축하의 말을 나누는 모습은 외국영화에서는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딱히 경험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흔치 않은 장면이 나의 일상이 되었는데, 장모님의 바람 때문이다.
.
매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이면 처가에서는 온 가족이 장모님이 사시는 곳으로 모여들었다가 해가 바뀌면 다가올 1년의 안녕을 기원하고 나서 잠시 다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본인이 정한 것이기도 한 데다 출가한 딸들의 가족을 모두 볼 수 있어서인지 장모님은 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정성도 많이 들이시고, 그 자리를 매우 좋아하신다. 그러다 보니 자리를 파할 때가 되면 새벽 1시를 넘어서기 일쑤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워낙에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지라 되도록 우리 가족은 그 자리를 빠지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에 지금까지는 코로나가 극성일 때 일이 년을 제외하고 한 번도 빠지거나 한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떼를 쓰는 아이 때문에 참석하지 못할 뻔했다.
§✍➢✎➢✒➢
저녁식사를 마치고 정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 왜? 지금 하면, 왜 안 되는데?~”
“너 지금 감기에 걸렸잖아”
“그래도 나는 목욕을 하고 싶.다.고~!”
가족 사이에 갑자기 언성을 높이게 된 이유는 외할머니 집에 가기 전 목욕을 하겠다고 아이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추워진 날씨 탓에 이미 감기에 걸린 아이를 목욕까지 시키고 찬바람을 쐬면 감기가 악화될 것이기에 아내와 내가 말렸고, 그날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니 반드시 목욕을 하고 가야겠다는 것이다.
…
사실 아이가 어려서부터 목욕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도리어 물을 싫어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해야 할 것 같다. 욕조 안에 담그는 것은 고사하고 약간의 물이라면 몸에 닿기만 하면 울어 대는 아이를 씻기기 위해서는 갖은 방법이 사용되었고, 아이가 물을 좋아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갓난아이 시절부터 물을 싫어하는 아이의 관심을 돌리도록 아내는 욕조 벽이나 바닥에 한가득 아이가 좋아하는 상어나 공룡스티커를 잔뜩 붙였고, 물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호기심을 갖도록 입욕제를 풀어 여러 색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목욕할 때마다 장난감을 가져와 아이가 물과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과 어느 정도 친해진 후에도 고민은 남아 있었는데, 샤워기의 물살을 싫어해서 항상 목욕을 고집하는 아이를 위해 항상 욕조에 물을 받는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고, 이제 샤워든 목욕이든 익숙해진 아이는 여름이면 아빠에게 등목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먼저 하기도 한다.
…
그러고 보면 아이가 목욕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내와 나의 노력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였다.
하지만 당장 목욕을 하지 않으면 외할머니 집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도대체 누굴 닮은 거야?’라는 것이었다.
§✍➢✎➢✒➢
목욕을 좋아하는 아이와 달리 나는 샤워를 더 선호한다.
많은 시간이 들지 않고 빠르고 간단하게 끝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샤워가 좋다기보다는 목욕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보면 좋지 않았던 것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처럼 내가 어렸던 70년대만 해도 집에 욕조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그래서 목욕을 위해서는 공중목욕탕에 가야 했는데, 더운 증기가 꽉 차있는 공중목욕탕에 있으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그런 인상에 더해 서너 살 정도였을 때 어머니를 따라 공중목욕탕에 갔던 나는 머리를 감느라 나에게서 어머니가 잠깐 눈을 뗐던 짧은 순간에 혼자서 꼼지락대던 물에 빠져버렸던 나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물을 무서워한다.
더구나 아버지나 어머니를 따라 목욕탕에 간 날을 생각하면 힘들거나 아픈 기억만 떠오르게 되는데,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어른들에게 그때의 목욕의 의미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명절이 다가오면 몸에 때를 벗기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같이 목욕을 하게 되면 손에 든 이태리타월로 밀어 대는 바람에 살가죽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목욕하고 나면 벗겨진 피부 때문에 따가워지기 십상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갔을 때 겪는 고통은 또 달랐다. 아버지는 타월을 사용하지 않고 수건에 물을 묻힌 후 꾹 꾹 눌러서 물기를 빼고 힘센 손으로 나를 잡은 채 일 년 묶은 때를 벗기는데, 아픈 것은 참을 만한 대신 작지 않은 소리로 “에구 이 때봐라, 까마귀가 형님이라고 하겠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항상 아버지의 말을 주위 사람들이 들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내가 아버지의 등을 밀어야 할 때였다. 어린 나의 작은 손으로 꽉 부여잡기에는 너무 커다랬던 수건으로 널찍하고 두꺼운 피부를 가진 아버지의 등을 미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청결함과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아버지는 매일같이 찬물에라도 샤워를 하셨기에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때라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나는 늘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그렇다고 집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공중목욕탕에 비해 나을 것도 없었다. 목욕물을 데우기 위해서는 찜통에 한가득 물을 받아서 연탄불 아궁이에 올려 끓인 후 대야에 받아 놓고 필요할 때마다 찬물과 섞어서 사용해야 했는데, 들쭉날쭉한 온도를 맞추는 것도 힘들었지만 추운 날이면 탕에 피워놓은 석유난로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도 좋지 않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어린 시절 목욕에 대한 기억에서 좋았던 기억이 그다지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니 어쩌면 목욕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떨구어버렸다.
§✍➢✎➢✒➢
감기에 걸린 상태로 목욕을 하고 밖에 나갔다가 악화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달래기도, 윽박질러도 봤지만 아이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결국 아이의 간절한 눈빛에 손을 든 나와 아내는 할머니 집에 갔다고 돌아온 시간이 아무리 늦어져도 목욕은 하겠다는 데까지는 양보를 했다.
한참을 얘기한 끝에 새해 첫날 아이가 원하는 곳에 데려가겠다는 추가조건까지 걸고 나서야 아이를 데리고 외할머니 집으로 나설 수 있었다.
기원이 끝나고 과일을 먹으면서 아이의 고집 때문에 일어났던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더욱 늦어졌다.
하지만 추운 날이 꽤 지속된 데다 밤중이어서 인공불빛이 많지 않은 때문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려다본 하늘은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많은 별들이 보였다.
“와, 오늘은 별이 많이 보인다.”는 아빠의 말에, 주억거리며 하늘을 보던 아이가 손가락으로 한 부분을 가리켰다.
“아빠 저거 오리온 자리야!”
삼태성 둘레로 네 개의 별이 사각형을 그리고 있는 오리온자리가 눈에 보였다. 늦은 시간이라 졸려서인지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자기가 알고 있는 오리온 별자리 이야기를 나와 아내에게 들려주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욕조에 물부터 받기 시작했다.
졸려서 눈을 비비고 있던 아이는 욕조에 한가득 담긴 목욕물을 보면서 행복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 모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