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실제상황입니다~!

야구중계와 잊을 수 없었던 해프닝

by 별사탕아빠

여기저기서 봉황대기 야구대회에 관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8월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봉황대기 대회는 무더위가 최고조로 극성을 부리는 8월 여름방학 중에 치러지는데, 국내 고교야구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나중에 생겼음에도, 유일하게 예선을 치르지 않는 대회라서 참가팀의 숫자는 다른 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다.


게다가 방학에 치러진다는 장점이 있어 고교야구의 인기가 한창이던 80년대에는 바다건너 일본에서도 팀을 꾸려 참가했다.


그래서인지 유명한 초고교급 선수가 있거나 명문고 간에 경기가 벌어지면 방송사는 프로야구를 제쳐두고 봉황대기 경기를 중계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과 달리 3개의 방송채널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고교야구가 누리는 인기의 위상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0년이 지나면서 고교야구의 인기는 점점 사그라졌다.


어쩌면 프로야구의 경기력이 발전하면서 따라서 높아진 야구를 보는 눈 때문에 고등학생들의 어설픈 경기력이 부각되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가끔 열정 가득한 풋내기들이 그라운드에 뒹구는 경기를 방송해주던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많았던 고교야구경기 중 정말로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을 남겨준 그런 경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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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8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 신입생이 된 내가 맞이한 첫 여름방학이었다. 그 날 우리 집에는 이모와 나보다 한 살이 많았던 사촌형이 놀러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 저런 수다를 하고 있던 중에 TV에서는 봉황대기 야구경기가 시작되었다.


북일고와 동산고가 맞붙은 경기에 대하여 사촌형과 내가 예측한 승자는 달랐는데, 동산고의 승리를 점친 사촌형의 예측은 예측이라기보다는 어째보면 사촌형의 바람을 담은 선택처럼 보였다.


기존 야구명문이었던 동산고의 승리를 점친 사촌형과는 달리 나는 당시 신생학교였음에도 유명기업의 지원을 받으면서 급격하게 기량이 늘고 있던 북일고의 승리를 예측했는데, 그 이유는 군산상고 조계현이나 광주일고의 문희수와 함께 초고교급 투수로 인정받고 있던 김길선, 진정필 두 명의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경기는 시작되자 나와 사촌형은 TV앞에 바짝 붙어 야구경기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에~~~에~~~엥~~~”


난데없이 사방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기에 푹 빠져있던 우리는 서로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처음엔 막연하게 흔히 있는 민방공 훈련이라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 민방공 훈련은 일상이어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내린 후 경보해제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을 당연히 여길 정도였지만 그 날의 경보는 특별했는데, 그 이유는 일요일이었기 때문이었다.


5일제 근무가 정착된 지금과 달리 일주일 중 유일하게 쉴 수 날이어서 일요일에 훈련을 하는 일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던 화면에는 선수들도 보이지 않았고, 텅 빈 운동장의 모래만 비추고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갑작스레 아나운서의 긴박한 외침이 들렸다.


“국민 여러분,

지금 인천, 경기지역이 공습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훈련이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TV화면의 하단에서도 공습을 알리며, 자막이 천천히 지나갔다.


사방에서 울려오는 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적막감에 빠져들어갔다.



“에잇 미친 김일성 같으니라고”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자 북한의 도발을 확신한 사촌형의 한 마디에 정신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이미 교련 훈련을 받고 있으니 징집될 것이라고 말하던 사촌형은 사촌동생들을 걱정하는 이모와 함께 서둘러 귀가준비를 했다. 떠나는 와중에도 이모는 나중에 부산 외삼촌 집에서 만나자는 당부를 엄마에게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젊은 시절 이미 전란을 경험한 바 있던 어머니는 난리에 집을 비우고 있던 아버지와 형, 누나에 대해 투덜대면서 나에게 필요한 짐을 꾸리라고 하셨다.



§✍➢✎➢✒➢



다행히 그 날의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북새통의 원인은 제3국으로 귀순을 원했던 중공(지금의 중국을 당시는 中共이라고 불렀다)군 조종사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문제가 커졌던 원인 중 하나는 당시 그 조종사가 몰고 전투기가 당시 소련이나 중공에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미그 21기여서 상황을 더욱 급박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이 존재했던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오래된 기억이라 정확성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불과 30분 남짓의 시간이 그토록 길게 느껴졌던 것은 알 수 없는 나쁜 상황이 엄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



그 일이 있은 지도 어느 덧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욱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이나 폭격에 관한 뉴스를 볼 때면 그 날의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 날의 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하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늘 내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해 왔던 것 같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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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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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어?~ 야구~!....


그 날 얼마나 놀랐는지 평소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의 결과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긴 그 날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던 선수들은 아마도 나보다도 더 놀랐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 날 경기를 했던 북일고는 우승후보로 꼽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 나머지대회에서도 4강조차 진출하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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