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os, 그냥 생긴 대로 살란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부모님에게 받아쓰기 공책을 보여주고 확인을 받아오라 했다는 선생님의 말을 전하며 공책을 넘겨주면서 주저하는 빛을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의아한 생각이 든 나는 선생님이 뭐라고 했는지를 물었다.
나의 질문에 “우리 선생님은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에만 관심이 있어”라며 아이는 밑도 끝도 없는 심드렁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이의 얘기를 듣자 덜컥 겁이 나면서 ‘설마, 나를 닮아 글씨를 못 써서 선생님께 혼난 거 아냐?’라는 생각에 지레 미안한 마음부터 생겼다.
…
아이의 공책을 펴 보는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나는 깜짝 놀랐다.
아이는 악필 아빠와 달리 예쁜 글씨를 가지고 있었다. 연필을 꾹꾹 눌러쓴 아이의 글씨는 꼼꼼한 아이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독히 나쁜 나의 유전자가 아이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누구랄 것도 없는 감사의 마음이 생겼다.
나의 걱정에 대해서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던 아내도 예쁜 아이의 글씨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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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게 된 것은 지금 우리 아이의 나이였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서예시간의 달갑지 않았던 경험들 때문일 것이다.
70년대에 존재했던 서예시간은 붓글씨를 배우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는데, 무거운 벼루에 물을 부은 후 먹으로 짙게 간 후 커다란 붓에 담뿍 묻혀서 화선지에다 크게 글씨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서예시간이 나에게 문제가 된 이유는 붓만 잡으면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글씨가 삐뚤빼뚤해진다는 데 있었다.
예쁜 친구들의 글씨와 달리 심하게 삐뚤거리는 나의 글씨를 볼 때마다 선생님은 정성이 부족하다거나 집중을 하지 않는다며 매를 때리거나 벌을 주기 일쑤였는데, 나의 손이 떨리는 고질의 원인은 외할아버지 때부터의 유전 때문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당시의 어린 나는 하릴없이 선생님의 호통과 체벌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서예시간이 든 날이면 아령처럼 묵직한 벼루 때문에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도 싫었지만, 서예시간이 끝나고 나서 벼루를 제대로 말리지 못하는 바람에 새어 나온 먹물로 가방 안이 범벅이 될 때도 있어 서예시간이 없어지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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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수전증을 고쳐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우리나라가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2002년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은 종로 5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에는 유명한 한의원도 많았다.
평소 한의원을 신봉하던 직장동료는 수전증을 나에게 치료할 의향이 있음을 확인한 후 침을 잘 놓는다며 한의원 한 곳을 추천했다.
태어나 처음 찾아간 한의원에서 나를 진맥 했던 한의사는 수전증이 석사시절 자기의 전공이었다면서 완치를 장담했고, 나는 한의사의 권유에 따라 나는 매주 2번이나 3차례 정도 침을 맞았다.
그런데 의사의 확언과는 달리 침을 맞을수록 손이 더 떨리는 느낌이 든 데다, 갈 때마다 환자를 살피기보다는 여자환자랑 노닥거리는 일에 열중하는 의사의 태도 때문에 믿어야 할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한의원에 손님이 없다는 후배의 푸념에 한의사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럴 때는 네 전공이 000라서 무조건 치료할 수 있다고 하라고, 그 사람이 실제 전공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라는 한의사의 조언의 내용은 처음 나를 진맥 했던 날 나에게 했던 말 그대로였다.
드리워진 커튼 뒤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한의사의 말을 듣고 난 나의 결정은 확고했다.
이후 나는 한의원을 향하던 발길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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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은 확실히 생각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날 이후 다시 내가 수전증 치료를 위해 한의원을 갈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잘 다니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나에게 가장 큰 고민이 수전증이었다.
그동안 더 악화된 수전증 때문에 OCR카드를 칠하는 것도 걱정됐고, 논술시험에서도 떨리는 손 때문이 걱정된 나는 친한 선배와 상담을 했고, 예전부터 나의 걱정거리를 알고 있던 선배는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추천했다.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2번 전철을 타고 천안을 오갔던 곳의 한의사는 침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식단조절을 권유했다.
고기, 우유는 물론 계란까지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갈등이 되었지만 고작 6개월이라는 생각으로 시험이 끝날 때까지 버텼다.
먹는 것까지 참아낸 노력을 하늘에서도 가상하게 생각했는지 2번이나 떨어졌던 입학시험에는 붙었다. 하지만 시험기간 내내 수전증은 여전했으니 6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치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날 시험의 마지막 과목인 논술 시험지를 제출하며 나는 결심했다.
‘그냥 생긴 대로 살란다.’
이제야 말로 정말 한의원은 안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