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에 양복점을 찾은 이유

운명을 좌우하는 선택의 순간

by 별사탕아빠

일 년이나 이 년에 한 번 정도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아내는 옷장을 정리한다.


당장 입어야 할 옷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걸어두고 철 지난 옷들은 구분해서 서랍에 잘 넣어둔다.


입지 않는 옷들은 따로 모아 두는데, 젊은 시절 샀지만 지금은 잘 입지 않게 된 옷가지들이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초등학생 아이의 몸에는 맞지 않게 된 옷들이 정리의 대상이다.


이렇게 정리한 옷들을 한데 모았다가 자선단체에 기부하는데, 박스에 담은 후 매직에 기부의 내용을 적은 후 관리실 앞으로 가져다 놓고 나면 작업이 마무리된다.


옷장정리를 해서 입지 않는 옷가지를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방식으로 아나바다 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아내의 행동을 지지는 하지만 내가 특별히 도와줄 일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나 아이와 달리 옷에 대한 관심이 없는 나는 좀처럼 옷을 사지 않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아내도 나에게 입지 않는 옷이 있는지 묻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아내가 나에게 입지 않는 옷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없어”라고 대답하려다, 결혼 후 급격히 늘어난 뱃살 때문에 허리춤이 잠기지 않아 입지 못하는 양복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아내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후 양복을 하나씩 입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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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청색계통의 양복들만 있는 옷장에서 다소 이질적인 짙은 베이지색 양복이 눈에 띄었다.

‘나한테 저런 양복이 있었나?’라는 생각도 잠시, 머릿속에는 이내 십수 년 전(前) 옷을 샀던 날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시절 나는 수험생, 그것도 절박한 재수생의 신분이었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진로를 바꾸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나는 십 수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입시준비에만 매진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던 탓에 이미 보기 좋게 한 차례 고배를 경험했던 내가 그 밤에 전주에 내려갔던 이유는 다음날 있을 면접을 위해서였다.


추운 데다 일기까지 불순한 탓에 빨리 숙소를 잡아 얼어붙은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길눈이 나쁜 탓에 최대한 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숙소를 잡느라 시간을 허비한 후 쉬기 위해 오버코트를 벗던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양복 정장의 윗도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급하게 내려갈 준비를 하던 중 빼먹은 것이었다.


하얘졌던 정신을 부여잡고, 재빨리 숙소를 나서 양복점을 찾아다녔지만 늦을 대로 늦어진 시간 탓에 대부분의 매장의 불은 꺼져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후 그나마 다행히도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은 양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남아있었는데, 주말이라 다음 날 문을 열지 않는다는 주인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을 내가 처한 상황을 주인에게 설명하면서 사정을 거듭한 끝에 양복을 건네받기로 다짐을 받아내고, 나올 때는 11시도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다음 날 양복을 찾을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못해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버렸다.


피곤한 몸에도 제시간에 양복을 구해서 면접에 참여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고, 어쩌면 양복과 관련된 일로 액땜이 됐기에 합격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고배를 맛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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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생의 방향을 바꾼 때는 불혹이 넘어서서였다.


더구나 자신의 실수로 양복 윗도리도 빼놓은 바람에 양복을 구하기 위해 한밤중에 나갈 때쯤에는 일 년쯤 이미 한 차례 맛본 실패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있을 때였다.


그럴 때 사람은 자신보다 남을 믿게 되는데, 전주행을 택했을 때 내가 바로 그랬다.


적지 않은 나이로 나와 경쟁을 하던 젊은 친구들에 비해 학점도, 영어점수도, LEET점수도 모자랐던 나는 궁여지책의 일환으로 제2외국어 점수를 확보했는데, 또다시 실패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입학설명회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전주에 있는 학교에서 왔다던 직원에게 상담을 받았다.


얼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상담자에게 점수와 경력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나서는 최대한 보수적으로 합격여부를 생각해 대답해 달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그 사람은 너무도 간단히 대답했다.


“아니 영어, 일어, 중국어 점수도 있고, 회사경력도 많은 행시 1차 합격자를 떨어뜨리는 학교가 있겠어요?”,

"그리고 우리 학교는 동북아법이 특성화예요"


힘든 시기여서인지 나는 너무도 쉽게 합격을 장담하는 그 사람의 말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밤중에 양복점을 찾아 헤매는 아픈 기억만 남긴 채 또다시 불합격 통지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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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가 했던 선택을 포기하고 다시 직장을 구할 생각을 했던 순간도 적지는 않았다.


경제적인 기회비용을 이유로 든 말에 흔들리거나 유명 포털업체의 임원자리에 면접을 주선해 주겠다는 전 직장동료의 얘기에 혹한 적도 있었고, 이왕에 1차 합격한 행시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말을 받아들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선택을 쉽게 바꾸고 싶지 않았기에 끝끝내 참고 견딘 덕분에 원하던 분야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니 자신의 결정에 따른 믿음을 지키며 힘들게 보낸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다.


더구나 수험생활과 이후 대학원 생활을 같이 했던 동료의 아버님의 소개로 아내까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아이까지 생겼다는 점에서 당시 내가 했던 선택은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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