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줄곧 부산에서만 살았던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 우리 집은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전학 온 학교에서 내가 만났던 가장 큰 난관은 사투리 때문이었다.
나의 억센 사투리 억양 때문인지 아이들은 수업시간마다 ‘까르르르~’ 웃어댔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를 때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을 하는 친구들과 달리 몸에 밴 억양 때문에 나도 모르게 뒷부분이 올라가며 “예에~”하고 대답하게 되는데, 친구들은 그때마다 아이들은 배를 잡고 웃으며 나의 억양을 따라서 흉내를 냈다.
선생님께 질문이 있거나 할 때 손을 들면서 내가 “쌤요”라고 하면 교실은 ‘까르르~’ 소리와 함께 또다시 요절복통이 되는데, 억양 때문에 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다 보니 아이들은 선생님한테 반말을 한다며 다시 교실은 뒤집어진다.
사실 말할 때마다 나의 억양을 따라 하며 웃어대는 친구들을 보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텃새로 고생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워낙에 노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가볍게 놀리는 행동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았고, 타고난 적응력 덕분에 서울친구들과도 금세 어울려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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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때문에 곤혹스럽기는 교실만은 아니었다.
이사 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물건을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집 근처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산 후, 아주머니에게 나는 “주리 주이소”라고 말했다.
갑자기 아주머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리가 뭔지를 물었다.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 나이에 정확하게 설명할 방도조차 알 수 없었던 나는 볼멘소리로 “주리가 주리제~ 모라꼬 합니까?”라며 울듯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뇌일 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나도 답답했지만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던 가게 주인도 지쳤는지 달리 방도가 없었던 아주머니는 잔돈을 건네주며 한 마디를 던졌다.
“얘야, 주리는 모르겠고, 거스름돈이나 챙겨가라”
...
그제야 나는 “이게 주리 아잉교”라고 억울함을 삼키며 말했다.
결국 그날의 일은 당시 잔돈을 뜻하는 말로는 부산에서 사용했던 ‘주리’만 알았던 나와 ‘주리’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주머니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는데, ‘주리’라는 단어가 경상도 사투리가 아닌 일본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외국어를 몰라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온 것이라고 하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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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의 덕을 본 적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 배우게 된 지구과학 수업시간이었는데, 담당 교과목 선생님은 지독하게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거의 대부분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은 알아듣지 못한 채 칠판의 판서에 의존해야 했는데, 그 선생님은 글씨마저 악필이었다.
결국 우리 반에서 나는 유일하게 수업을 알아듣는 학생이었고, 수업시간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으니 지구과학시간마다 통역일을 해야 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면도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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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봐도 경상도 사투리는 명이 길다.
대학생이 된 후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버스틀 탄 우리에게 안내양 누나에게 표준말로 목적지를 묻자, 그 누나는 친절하게 설명을 한 후 나에게 물었다.
“아이고야 서울에서 오셨다부네예~”
정감 어렸다고 느꼈는지 대답을 하는 나의 말에 사투리가 묻어 나왔고, 여행 내내 사투리를 끊어낼 수가 없었다.
사투리에서 내가 자유로워졌다고 느낀 것은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입영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가 되어서의 일이었으니, 참 사투리의 생명력은 질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