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아이는 목을 빼고 기다리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할 전등이 도착했다.
집 앞에 놓인 택배상자에 들어 있는 것이 전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안달 나기 시작했던 아이는 저녁식사가 끝나자 엄마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엄마~ 빨리 트리 장식하자~아~!”
아내는 아이의 투정하는 모습조차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트리를 장식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
며칠 전부터 창문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크리스마스트리의 옆에서 아내와 아이는 이것저것 장식하기 위해 북적대는 것 같더니 점등식을 한다며 마루를 밝히고 있던 불을 껐다.
불빛이 반짝거리자 온 가족이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동안 트리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는 무엇인가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짓더니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넣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큼지막한 양말까지 걸어놓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기 방에서 공룡을 가져와 트리에 올려놓더니 좋아한다.
즐거워하는 아이 뒤로 어둠을 배경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트리를 보고 있으니 그래도 조금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언제인가부터 크리스마스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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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아이 나이였던 70년대의 크리스마스는 지금처럼 조용하지 않았다. 그 시절 크리스마스는 누가 보더라도 축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명절이었다.
11월이면 벌써 어디를 가든 들리는 캐럴의 영향인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게다가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I’m dreaming of white Christmas~”의 부드러운 굵직한 저음은 몽환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해 크리스마스는 현실이지만 꿈처럼 환상적인 그런 명절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불거진 저작권 문제와 함께 거리에서 들리던 캐럴은 점차 사라졌고, 그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열성도 점점 식어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새 크리스마스는 다른 명절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굳이 따지자면 산타클로스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명절로 생각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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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70년대의 크리스마스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완연히 달랐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생각이 들면 벌써 특별한 추억이라도 만들려는 듯,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정성껏 만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만든 카드나 연하장을 친구나 친척에게 보냈는데, 너나없는 이런 행동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돋우는데 일조했는데,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우표 외에도 결핵퇴치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기념 씰까지 따로 붙여 더욱 특별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는 일들은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전화가 있다고 하더라도 해외나 지방에 전화를 거는 비용이 비쌌던 시절 친구나 멀리 있는 친척에게 소식이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꽤나 적당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친지나 가족이 외국에 있는 경우 받을 수 있는 외국의 카드는 우리나라의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는데, 그런 모든 것이 발생하는 크리스마스가 주는 분위기는 다른 명절이나 휴일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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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가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크리스마스 - 정확히는 우리가 이브라고 부르던 크리스마스 전날 - 는 그 당시 존재했던 ‘통행금지’가 사라지는 유일한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는 12시부터 4시까지 통행을 금지하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통행금지가 존재하는 시간 거리는 아무도 없었고, TV와 같은 방송도 할 수 없다 보니 죽은 도시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밤에도 네온사인이나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고, 거의 24시간 내내 방송을 볼 수 있는 지금과는 분위기조차 사뭇 다를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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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지. 만.
크리스마스이브는 이런 모든 제한이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마법 같은 그런 날이 되었다. 사람들은 한 밤중까지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명동 같은 시내에는 사람이 몰려들었고, 밤중에도 동네마다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 격이었던 교회에서는 성스러운 탄생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며 밤을 보냈고, TV에서는 새벽까지 벤허 등 기독교색이 짙은 영화를 하거나 재난영화를 방영했는데, 크리스마스날 화재가 났던 우리나라의 한 호텔을 모티브로 했다는 '타워링'이라는 영화는 어린 내게도 인상적이었다.
새벽이 다가오면 교회를 다니는 아이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성탄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는데, 아침잠이 많았던 나도 그날은 새벽송에 참여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날 정도로 당시의 크리스마스는 특별했던 것 같다.
다행히 8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행금지는 사라졌지만, 반대로 크리스마스만이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지위는 사라졌다, 이후 마법이 풀린 것처럼 크리스마스는 평범한 명절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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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고 설레거나 하지 않는다.
마법이 풀린 탓인지, 나이가 든 때문인지 혹은 분위기 자체가 예전만 못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가 된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많은 휴일 중 하나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천덕꾸러기 같은 명절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니 크리스마스가 된다고 좋은 일이란 하나 없는 것처럼 보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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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크리스마스의 소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 되면 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까지 최대한 남아있는 특수함을 이용한다.
아이가 평소보다 말을 듣지 않거나 할 때,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인질로 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너! 그렇게 말 안 들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줄 텐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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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조금 치사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