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었다.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난 아이의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순간 요 며칠 공부방에서 데려오는 길에 아이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빠, OO는 오늘 독감 때문에 학교에 안 왔어!”
“아빠, OO는 오늘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가 토했어!”, “그랬어? 저런~”
아이의 말을 듣고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고 넘어갔던 나의 경솔함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된 것이라 생각이 들자 자책하는 마음과 함께 요새 유행하는 독감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기에 병원에 데려가기보다는 집에 상비해 뒀던 해열제를 먹이고 상태를 살피는 선택을 했다.
경험상 이런 시간에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봐야 한참을 덜덜 떨면서 대기하다가 독감이나 코로나 등 각종 검사를 받은 후 해열제가 포함된 수액을 맞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열은 쉽사리 내리지 않았다. 달리 방법이 없던 나는 수건에 미지근한 물을 적신 후 이마부터 종아리까지 아이의 몸에서 가장 열이 많은 곳으로 옮겨가며 부채질을 열심히 해댔다. 직접적으로 차갑지는 않아도 주변의 열을 빨리 뺏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새벽 3시가 넘어가자 열은 내려갔다. 계속 부채질을 한 탓에 손목이 욱신거렸지만 열이 내려가 편안해지 아이의 모습을 보자 힘들다는 사실마저 잊을 수 있었다.
아침이 밝자 일찌감치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전후사정을 의사 선생님에게 설명하자 열감기로 보인다는 진단과 함께 해열제와 기침약을 처방해 주었고, 하루 이틀 더 아이의 상태를 잘 살피라는 말을 들었다.
주말 동안 아이는 간헐적으로 열이 올라왔고, 그럴 때마다 해열제와 물수건 그리고 부채를 가지고 아이에게 발생했던 열과 씨름을 해야 했다. 덕분에 월요일 하루를 멍한 상태로 보내야 했지만 아이에게 생겼던 열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뿌듯했고, 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아이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소 원시적이지만 나는 아이가 열에 시달릴 때, 물수건과 부채를 사용해서라도 열을 떨어뜨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사건 때문이다.
♣ ♣ ♣
내가 갓 중학교에 입학한 그 해 한겨울의 일이었다.
밤이 늦은 시간, 이불을 잔뜩 덮고 있는데도 나의 온몸이 벌벌 떨리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춥다거나 힘들다며 아픈 신음을 했는데,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펄펄 나는 데다, 그날따라 아버지는 일 때문에 집에 안 계셔서 어머니는 겁부터 덜컥 났었다고 나중에 말씀하셨었다.
게다가 당시는 통금이 있어서 밤이 늦으면 병원이나 약국은 고사하고 대문 밖으로도 나갈 수 없었던 시대였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던 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라면 아파도 내색조차 않던 아들이 고열로 힘들어하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에 별채에 세를 살던 아주머니를 깨워 도움을 요청했다.
아주머니는 들어오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더니 나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미 열이 40도를 오락가락하고 있던 나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덮고 있는 여러 벌의 이불을 들춰내더니 속옷만 남겨놓은 채 옷을 모두 벗겨내더니, 다짜고짜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댔다.
나는 덜덜 떨면서 춥다고 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까지 세숫대야에 부은 후 더 차가워진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대자 점점 더 차갑다는 생각만 머릿속에서 들었고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아주머니를 부른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손을 꽉 쥐고 기도를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면서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문질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처음엔 넋이 나간 듯 아주머니의 행동을 보기만 하던 어머니가 나의 몸을 닦아주면서 조금씩 편해지는 느낌을 받은 나에겐 옆에서 알 수 없는 방언을 읊조리고 있는 아주머니의 행동마저 응원처럼 들리며 나도 힘을 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새벽녘이 되면서 기적적으로 열이 내려갔다. 상태가 안정된 나는 그제야 졸리다는 평범한 유혹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이나 약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에서 옆집 아주머니가 했던 조치는 적절했던, 어쩌면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 어머니는 고열로 앓고 있는 나를 보며 홍역이라고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아주머니가 독감이라며 하는 조치에 다소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걱정 많은 어머니의 성격을 생각할 때, 그날 아주머니가 옆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든든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생각해도 고맙다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
그날의 경험으로 나는 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반대로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지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다. 덕분에 대학교 때 섬으로 여행을 갔다가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도 찾을 수 없는 한밤중에 친구 중 한 명이 열이 나자 같이 간 친구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도, 혼자서 태연히 친구의 몸에 생긴 열을 찬물에 적신 수건을 사용해서 내려 위기를 넘긴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무당 같은 행동이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여전히 아내나 아이에게 열이 생기면 걱정이 돼서 그런지 해열제를 먹인 후 나도 모르는 새 물수건과 부채를 분주히 찾게 되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