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방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아빠~! 불고기가 영어로 뭔지 알아~?”
“글쎄~?”
난데없는 아이의 질문에 당황해서 뜸을 들이고 있자, 기다리지 못하고 말한다.
“아빠 있잖아!~ 불고기는 영어로 Bul-Go-Gi야, 파이어 미트가 아니고”
뭔가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는 듯, 아이는 나의 귀에 속삭였다.
이런 아이를 보면서 장난기가 발동한 내가 물었다.
“그럼 혹시 누룽지가 뭔지는 알아?”
“누~ 룽~ 지? 근데 너무 어려워 아빠”
“밥이 브라운(Brown) 이야 ㅋㅋ;;”
때 지난 아재개그를 던지고 웃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는지 아이는 금세 입을 삐죽였다.
…
다행히 막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아이는 영어가 재밌는 모양새다.
고등학교 때 재미보다는 어법에 매여 어렵다는 생각에 자신감을 잃었던 나와는 달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수와는 별개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다.
사실 어법이란 것도 소통을 위해 생겨난 말을 정리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보면,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학자와 같은 자세보다는 내가 생각한 것을 전달할 방법을 찾으려는 탐험가와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런 생각을 하던 중 2000년대 초반 외국계 회사에 근무할 때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중역을 접대할 일이 생겼다.
나와 우리 팀 사람들은 뉴욕에 본사를 둔 회사의 직원으로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신사업 부문 확장을 위해 따로 선발한 인력이다 보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일부였고, 대부분이 영어가 서툴렀다.
맥주 집에 갔을 때였다.
같은 회사의 호주지사의 매니저는 맥주를 물 마시듯 하며, 맥주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 팀 사람들의 승부욕을 건드렸다.
나를 제외하면 나름 술을 마신다고 자신했던 우리 팀 사람들은 폭탄주를 제조한 후 연이어 잔을 비우는 ‘파도타기’를 제안하려고 했다.
문제는 그 설명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뽑힌 차장의 말은 너무 긴 데다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 take turn..... bottom up......”
“... What?....”
그때였다.
영어는 전혀 모르는 선임과장이 저쪽 끝에서 딱 한마디 외쳤다.
“아~ 로테이션 원샷!... 오케이”
더 이상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 ♣ ♣
영어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언어라 규칙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언어에서 유입된 표현을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설(說)도 있고 보면 확실히 영어가 소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아마 단적인 예가 ‘Longtime no see.’라는 문장일 것이다.
처음 그 표현을 접했을 때는 기본적인 영어의 어법과 맞지 않아서 콩글리시라고 생각했고, 중국어를 배우고 나서도 好久-不-见(하오 지우 부지엔)이란 중국식 표현을 딴 중국식 콩글리시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표현은 정식 영어로, 19세기 초 미국에 이주해서 영어를 잘 모르던 중국인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표현이라고 한다.
아마도 영어가 원래의 어법을 고수했다면, ‘Longtime no see.’라는 짧고 간단한 표현대신
‘It’s been a long time since I last saw you.‘와 같은 답답하고 꽉 막힌 표현이 사용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영어는 사용의 편의성을 위한 소통 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러자 경직된 어법에 얽매여 갈팡질팡하던 아빠와 달리 아이는 즐겁고 자신감 있게 영어를 배우고 그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에게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이것도 아빠의 욕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