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동아리에서 북클럽 1-왜 쓰고 왜 읽죠?

쓰는 동아리에서 읽기로

by 소풍
쓰면 읽고
읽으면 쓴다

나는 왜 글을 읽고 쓰고 있을까?

나의 시작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시점이다.

엄마는 한순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뒤이어 딱 일 년 만에 돌아가셨다. 일 년 동안 한 번의 예고 없는 죽음과 한 번의 시한부 죽음을 맞았다. 예고 없는 죽음과 시한부 삶의 끝을 보았다. 내 인생의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1년간, 이별의 슬픔, 무력한 노후, 부모 자식의 갈등, 형제의 불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 성실하고 힘겹게 살아온 거 같은데, 나는 지금까지 무얼 위해 살아왔을까 허무하고 모든 기가 빠지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대로 살아도 될까?

죽음을 준비하는 건 어떤 걸까?

내가 오늘 죽는다면 후회가 없을까?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머리는 혼탁하고, 하루하루 이유 없이 우울하고 기력이 없었다.

위장병과 두통은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고 무기력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썼다. 누구와 나눌 수도 털어놓을 수도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내뱉듯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애도의 과정이었다. 그렇게 1년은 부모님의 현실적 사후 정리와 내 마음 정리로 버거웠다. 글로 적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정리되고 맑아졌다. 똥을 눈 듯 배가 가벼워졌다.


‘글이 나를 도와주겠구나.’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에 글쓰기 강좌를 등록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김글리 강사님의 내면 글쓰기 강의는 내 인생의 후회, 절망, 소망, 상실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쓰면서 울고, 읽으면서 다시 울었다. 30대 암 앞에 절망했던 나, 혼자서 생활을 짊어진 애처로운 나, 어린 시절의 나, 부모님이 가시던 순간의 나를 다시 돌아봤다. 그러자 지금의 나를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는 죽을 때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구나.


그제야,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부모님 죽음이 준 선물이었다. 글은 나의 애도를 돕고, 어린 시절 내 본성을 찾게 도왔다. 글쓰기 강좌에서 글 벗을 만났고, 그들과 글쓰기 동아리도 만들 수 있었다.

글쓰기 동아리를 하며 꾸준히 글을 쓴다는 건 운동을 꾸준히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운동은 아픈 데가 있으면 하게 되고, 몸이 탄탄해지는 결과도 눈에 보인다. 글은 아프면 더 안 쓰고, 결과도 보이지 않는다. 괜한 숙제에 시달리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서로에 의지해 이어갔다. 글이 30개 이상 차곡차곡 쌓였고, 도서관에서 공저로 책도 출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글이 쌓여갈수록 비슷한 글을 반복하고 있었다. 문제는 글쓰기가 아니라 글의 내용이었다. 글의 내용은 곧 삶 그 자체였다.


‘글을 쓴다는 건 삶을 쓰는 거구나. 삶을 채워야 하는 거구나. 무엇으로 채우지?’


간접 경험은 책 읽기고 직접 경험은 삶이었다.

그렇게 글쓰기 동아리에서 책 읽기를 함께 하기로 했다. 나를 채우기 위해, 삶을 바꾸기 위해 동아리 북클럽을 함께 하기로 했다.

글쓰기 동아리에서 만난 한 분은 십 년 넘게 책 읽기를 꾸준히 해 왔다. 왜 글쓰기 수업을 들었냐고 하니,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쓸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쓰면 읽게 되고 읽으면 쓰게 된다. 읽고 쓰는 건 뗄 수 없는 거다. 읽고 쓰며 우리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삶을 채우며 살아가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우린 함께 읽고 쓴다. 글쓰기 동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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