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글리 작가를 만났어.
지난주 시작한 ‘나를 돌보는 글쓰기’라는 수업에서.
운명 같은 느낌.
예전에 첫 남자 친구를 만났을 때도
아빠를 만났을 때도
느껴졌던 그 운명 같은 느낌.
집에 와서 작가가 소개한 책을 찾아 장바구니에 담고 이런저런 노트 필기도 다시 보고.
엄마보다 대충 열 살 정도 어린 사람인데
스물몇 살 때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사람이었지.
오늘 타로 수업이 끝나고 두 시간 정도 남길래 로비에 있는 북카페어서 책을 보는데 딱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 작가의 책이
‘인생 모험’
나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언제 행복하고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으며
무엇이 내게 중요한 건지 아는 일
무지하게 평범하고 다 아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새삼 이 나이에 다시 쏙쏙 박히는 건 작가의 깊은 깨달음의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일까?
내가 아닌 것을 모조리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모험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예전부터 도서관에서 찾아 읽곤 했던 구본형 작가의 제자이기도 했더라.
세상은 참 신기하게도 어딘지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구본형 작가의 편지가 추천사로 살짝 실려 있더구나
‘ 너의 삶은 수많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아,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이렇게 엄마의 ‘나를 돌보는 글쓰기’는 계속될 거 같다.
새로운 인연과 설렘으로 세상과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서 말이야.
지난주에 탁구 경기에 나갔어.
엄마가 은근히 비호감이라고 느낀 아줌마와 경기를 하게 되었지.
지난번에도 졌는데 또 지고 말았어.
여러 번 생각해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진 게임을 했던 거야.
우선 난 하기도 전부터 그 사람과 경기가 하기 싫었어.
이런저런 작은 대화들로 살짝 얄미운 캐릭터인 데다가 공도 얄밉게 치는 스타일.
피하고 싶은 기분이었지.
애써서 오늘은 이겨보자 했어.
근데도 왜 또 진 거지? 열받더라.
딱히 나보다 잘 친다고 인정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보기엔 내가 여러 모로 나은데 말이야.
근데 그 사람은 누구랑이든 똑같이 자기는 이기기 위한 최선의 플레이를 똑같은 방식으로 하고 있었어. 수많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근데 난 똥을 빨리 건너뛰고 싶은 마음으로 경기를 한 거야.
은근히 불쾌한 기분으로
나한테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것도 아닌 그 사람을
내 잣대로 마음대로 판단하면서 말이야.
한 마디로 나는 나에게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던 거야.
이번에는 이기자 마음먹을 것도 없었고
그 아줌마가 더 얄미운 건 대놓고 얄미운 게 아니라
은근히 사알짝 남모르게 얄미운 데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아빠와 직장동료라는 이유로 친한 척하며 나이를 앞세워 언니인척 하는 것도 솔직히는 꼴사나웠나 봐.
이런 복합적이고 찝찝한 느낌이란 건
지극히 외부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거였고
그런 상태로 경기를 했으니
내 것에 집중할 수가 있었겠나 싶다.
집중해도 안될 판에 집중조차 못했다는 거지.
경기를 하기도 전에 지는 마음을 먹지 말자 했는데
나는 또 지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야.
뼈아픈 반성을 했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직 난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 못할 때가 많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지.
공을 치는 사람이 누구이건
나는 탁구를 치고 있고
좋아하고 잘 치고 싶으니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만 했으면 될 것을 말이야.
못난 나 자신을 대면하고야 말았지.
하루이틀은 기분이 나빴어.
근데 오늘은 오히려 홀가분하기까지 해.
내가 나 자신은 민낯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저 나 자신으로만 살면 되고
남, 남의 눈, 내가 아닌 것을 버리면 되는 거라고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었으니 말이야.
새겨본다.
내가 좋아했던 순간
남들이 아닌 내가 좋아했던 것에 집중하고
오로지 내가 좋아했던 그 순간을 끝까지 추적해서 구체화하고 단단하게 정리하고 만들어가며 살리라
인디언들에겐 비전퀘스트라는 게 있대.
성인이 될 무렵
깊은 숲에 혼자 들어가 열흘간 음식도 먹지 않고 인생 비전을 세우는 시간이란다
어쩌면 너는 지금 혼자 있는 시간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너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간
공부도 힘들겠지만
홀로 된 너 자신과 만나는 시간
너의 한계와 마주하는 것도 힘들 그 시간
어쩌면 인디언들의 비전퀘스트 같은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거야.
구본형 작가가 한 말.
엄마도 네게 해 주고 싶은 말.
‘ 너의 삶은 수많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찰 것이다.
아, 인생을 하고 싶은 일로 가득 채우는 일.
그 일보다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인 것을....’
너 자신을 믿고,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너 자신만의 길을 가거라.
그게 엄마가 살고 싶은 인생, 하고 싶은 모험이기도 한 거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