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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Aug 09. 2018

040. 오스트리아 대학병원 응급실 간 썰-하

끝없는 공허한 허무감.

숨이 가빠져 숨쉬기 어려웠다. 목이 턱턱 막혔다. 기운이 뚝 떨어졌다. 몸 상태가 예사롭지 않았다. 급히 Vienna Film Festival 응급실로 가서 증상을 말했다. 그러자 응급실 의사 선생과 요원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고, 나한테 영어로 응급실을 가봐야 한다고 소견을 전했다. 아득해졌다. 글자 하나하나, 알파벳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경지를 체험했다. 두통까지 찾아왔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졌다. 타지에서 정신 못 차리면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정말 씁쓸했던 건, 그 순간에도 돈에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응급차를 불러야 한다고 의사가 말했지만, 가격이 120유로라는 말을 듣고 당연하게도 포기했다. 금액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진찰비까지 합치면 한국에 전화해야 할 판이었다. 벌에 쏘인 순간에도 돈에 관해서는 정신이 번쩍했다. 택시를 타고 간다 말하고 응급실을 떠난 게 벌에 쏘인 순간보다 더 무섭고 슬펐다.

택시를 타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고 나서는 내가 판단할 것도 없이 모든 게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10분 정도 대기하니 간호사가 일차적으로 진료를 보고,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 한 뒤 담당 의사에게 데려갔다. 의사는 내 호흡기 반응, 벌에 물린 자국, 피부 상태를 진찰했다. 진찰 뒤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완화할 수액 및 여러 약물을 링거로 맞았다. 마음은 요동치는 파도 같았지만 주변은 자동화 공정 시스템을 갖춘 공장이었다. 자신이 할 일을 정확히 할 뿐 다른 사람은 범위 밖이었다. 간호사부터 의사까지 정확히 자기가 할 일만 했다. 요동치는 내 마음과 내 질문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링거 맞으면 된다.’는 말만 계속할 뿐이었다.

이메일로 청구서가 갈 것이라는 창구 직원의 말을 듣고 병원 밖으로 나오는 첫 발걸음을 뗀 순간, 모든 게 허상 같았다. 아니, 허상이었다. 병원의 자동화 공정 시스템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은 어느새 허상으로 변모했다. 내 고통은 링거 한 방으로 해결 가능한 사소한 증상이었다. 내가 느낀 건 그러면 도대체 뭘까.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은 이때가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곧 날 찾아올 청구서는 그게 현실이었다는 걸, 더 두려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다시금 상기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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