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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Aug 15. 2018

046. 아무리 어둡더라도.

촛불 하나도 밝아지듯이.

  헝가리를 여행하면서 유량을 통해서 일행을 만났다. 유럽여행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알바로 돈을 모으시고 여행을 떠난 걸 증명하듯 대구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열정적이었다. 나는 여행 막바지에 바닥난 체력과 정신력으로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들었는 데 훨씬 더 긴 여정을 밟아나가시는 중이지만 지친 기색조차 없었다. 부다페스트 야경을 담는 유람선을 타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을 때부터 밝고 희망찬 에너지를 느꼈다. 내가 다사다난한 여행 과정 속에서 잃어버린 무언가와 흡사해서 굉장히 반가웠고 감사했다. 약간 우려하기도 했다. 혹시나 내 회색 아우라로 기분이 불쾌함으로 희석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밝은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밝은 아우라에 내가 여행을 이어나가도 남을 에너지를 얻었다. 아무리 어둡더라도 촛불 하나로 밝아지듯이, 어두움은 결국 밝아진다.

  이튿날 저녁에 어부의 요새를 함께 찾았는 데,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문득 여행에서 왜 사진과 영상을 찍는지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는 그 공간을 제대로 음미하지도 않은 채 사진을 찍는 경우도 많지 않은 가. 그날 저녁을 반추해보면 왜 사진을 그토록 열심히 찍는지 약간이나마 알 것 같다. 우리는 회색 빛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밝은 색으로 물들여보고자 사진을 찍는 것 아닐까. 하루하루 숨 막힐 듯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조금이나마 밝은 색으로 염색할 만한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 바로 여행 사진 아닐까.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을 돌아보면 잠시나마 회색 빛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있기에 우리는 그토록 사진 찍는 데 열중하는 것 아닐까. 서울에 돌아온 지 어연 2주,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광경 속 밝은 색의 머리와 더 밝은 에너지가 문득 떠오른다. 그때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 밝은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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