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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Nov 10. 2018

058. 미대생 야작 체험기-상

전국의 모든 미대생들을 존경하며.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소질이 없었고,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림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나는 관심 없는 부류에는 아예 내 뇌의 일부조차 쓰기 싫어하는 종자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림 그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군대 가기 전에 서화회에서 활동하면서 유화를 그렸고 지금은 유화 그리는 수업을 듣고 있다. 전공자들과 수업을 듣다 보니 그전에 동아리에서 그릴 때보다는 좀 더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투자한다.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나는 지나친 시험 벼락 치기의 여파로 몸에도 벼락을 맞은 듯이 아팠다. 시험이 끝난 주 주말이었지만 방에서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너무 힘들었다. 가래와 콧물, 그리고 오한이 온몸을 휘감을 때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감기약을 목에 털어 넣고 침대에 누워있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일분일초를 낭비하는 자책감이 온몸을 뒤덮을 때, 그만큼 무력할 때가 없다. 결국, 혐오감과 무력감 속에서 주말과 월요일을 침대 속에서 보냈지만 감기는 여전히 내 몸을 지배했고, 수요일 오후가 돼서야 몸에서 떠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두병씩 꼬박 들이킨 쌍화탕이 감기를 설득해서 이제 좀 내 몸에서 방을 빼라고 한 덕분이었다.

  감기 기운이 좀 덜해진 수요일 오후에서야 이젤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이젤 앞에 앉으니, 그동안 추상적으로 '망했다'라고 생각했던 기분이 현실적인 '좆됐다'라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연필로 스케치만 대충 끝난 30호 캔버스는 나에게 그 어느 물체보다 거대했다. 내 앞의 거대한 하얀 직사각형 물체는 정말로 보기 무서웠다. 왜 영화에서 하얀색으로만 가득 찬 방이 사람을 미쳐버리게 하는지 몸소 짐작할 수 있었다. 한동안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떻게 이 거대한 하얀색 물체를 해치워 버리지? 그 하얀색은 나의 비참한 막막함을 비웃듯이 더더욱 하얀빛을 냈다. 그럼에도, 나는 시작해야만 했다. 내일이 발표 날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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