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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Nov 08. 2018

057. 아파트

그 존재에 대한 응어리에 관하여.

  어렸을 때 2층 이상의 건물은 나에게 항상 신기한 존재였다. 계단을 올라 2층, 3층에 도달하면 마치 내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아파트는 나에게 공중에 땅을 만들어 사람을 살 수 있게 한 신비의 공간이었다. 베란다에서 바깥 경관을 볼 때는 공중부양을 하는 영화 주인공이 부럽지 않았다. 마포구 행화탕 옆 혜성아파트에서 살 때에도 아파트가 서울을 뒤덮을 만큼 흔하지 않았다. 땅꼬마같이 빽빽이 차있는 주택을 바라보면 나는 하늘에서 산다는 묘한 만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바둑판처럼 빽빽한 주택이 ‘달동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과 서울이 아파트의 숲으로 뒤덮이는 중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건물에 대한 관심, 특히나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긴 건 내가 아파트 숲의 중심인 서울로 다시 이사를 오고 난 뒤였다. 대학교 입학 후 다시 내 고향인 마포구 혜성아파트 근처로 이사를 온 것은 나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본주의의 온상인 대한민국에서 이사가 큰일이라 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혜성아파트 주변 바뀐 경관을 본 순간, 어릴 적 내 거리가 송두리째 날아간 순간, 빽빽한 주택이 거대하고 높은 직육면체의 숲으로 바뀐 걸 내 눈으로 목도한 순간은 나는 어릴 적 추억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그 환상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순간이었다.

  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처참히 무너지고 한 때는 혐오했지만 여전히 나는 아파트 12층에서 사는 중이다. 아파트에 대한 내 일방적인 환상과 혐오가 차지하는 뇌의 공간은 몇 년간 그 공간에서 지내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일상과 호구지책이라는 멋없는 단어는 의외로 사람을 굉장히 무뎌지게 만들었고, 아파트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응어리는 곧 잊었지만 나를 정의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무언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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