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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Nov 20. 2018

060. 향수를 쫓는 개에 관한 짧은 이야기.

향수를 쫓는 개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잔뜩 얼굴이 빨개진 채 주먹 다툼을 하는 한 편, 장례식장에서 펑펑 우는 친구의 등을 토닥인다. 누군가와의 관계로 삶은 끝없이 확장된다. 평생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맡아보지 못했을 향수를, 살아가면서 몇 차례 마주친다.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은 계속 인생을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향기에 취한 채 길을 걷다가 취기가 가실 즈음에는 어느새 차오르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다. 구역질을 참기 위해서는 매혹적인 향기가 필요하다. 그 향기를 다시금 맡을 수만 있다면, 어떤 굴욕적인 일이라도 감내할 수 있다. 각고의 굴욕의 굴레를 이고 환하게 빛나는 향수를 마주하면 그간의 상처는 원래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어느 순간, 향수를 발정 난 개처럼 쫓는 나를 비추는 거울을 마주친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난 애써 부정한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저게 내 모습이라는 걸. 그리고 거울 속 향수 너머 희미해지는 누군가의 모습을 본다. 내가 탐하는 향수는 저 사람이 남기고 간 것이다. 하찮은 거울을 뒤로한 채 내가 목표했던 그것으로 향한다. 이번 향기로 나는 또 며칠, 혹은 몇 달, 혹은 몇 년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날 구속하는 향기에 취한 채 휘청휘청 걷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다.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거대한 검은색은 마치 떠나지 않을 듯이 위풍당당하게 내 앞을 가로막는다. 검정색은 내 취기를 증폭시키는 기제이지만, 이날은 왠지 모르게 오히려 내 취기를 가시게 한다. 왜지? 취기 없이는 난 살아갈 수 없는데. 거대한 검정색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허공으로 두 손을 휘저어도 날 조소하며 여전히 내 앞에 미동도 없이 서있는 어두움이 어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참을 수 없는 검정색의 모순, 모든 걸 흡수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모순 속에서 의미 없는 저항을 계속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에 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깬다. 검정색은 나를 마음껏 비웃고 내 앞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지난밤, 모든 걸 흡수해서 사라지게 하는 검정색은 내가 쫒던 향수마저 집어삼켰다. 나는 더 이상 어떤 냄새가 났는 지도 기억할 수 없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을 한 순간에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실감에 나는 걸음을 멈춘다. 나는 털석 주저앉는다. 주저앉아 박탈감이라는 굴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생각의 여러 돌다리를 건넌다. 돌다리를 건너다 거센 물길에 휩쓸려 정신을 잃지만 눈을 뜨면 여전히 나는 고요한 강 위에 있다. 수많은 강의 수많은 돌다리를 건너 드디어 그 사람이 보이지만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향기가 나야 하는데? 돌다리를 건너지만 아무 향기도 맡지 못하는 나는 미로에 갇힌다. 미로에 갇힌 채 돌다리를 건너는 건 쉽지 않다. 좌뇌로는 미로를 해석하고 우뇌로는 돌다리를 건넌다. 두 장소의 목적지가 같은 건 곧 알게 된다. 하지만 돌다리와 미로에서 모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

  돌다리는 또 다른 돌다리를 낳고, 미로는 더 복잡한 미로를 낳는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내가 쫓던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지평선 너머 끝없이 이어지는 돌다리와 테세우스도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도 없다. 나는 뭘 쫓고 있던 걸까. 당황스러운 척 스스로를 속이지만 사실 난 진실을 이미 알고 있다. 깨닫는다. 그 향수는 내가 쫓던 누군가가 만든 게 아닌, 내가 만들고 내가 숨긴 것이란 걸.

  나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누군가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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