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더욱더 냉철하게 관람하고 논리적으로 비평, 비판해야 한다.
최근 개봉한 두 작품이 있다. 두 작품 모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을 담고 있다. 한 작품은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사울의 아들>, 다른 한 작품은 일본군 성노예 강제 징집 사태를 다룬 <귀향>이다. 정말 참혹한 비극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여러 관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 일 위안부 협상이 작년 12월 28일 발표된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 강제 징집 사태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귀향>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말로 뜨거운 화제이다. 특히나 이번 합의문에 일본군이 성노예를 "강제적으로 끌고 갔다는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라고 적힌 것이 확인되면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전국민적인 분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몇몇 정치인들의 개념 없는 발언은 전국민적으로 드끓는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제작 투자에 난항을 겪고 두 차례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일본군 성노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공분을 더 뜨겁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재를 다룬 영화일수록 오히려 평가의 잣대가 유해지는 경향이 있다. <변호인>, <국제시장>, <히말라야>, 그리고 <연평해전> 등 여러 영화가 개봉할 당시 그랬다. 특히나 <귀향>같이 처참한 역사를 다룬 영화가 개봉할 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꼭 봐야 한다!" 혹은 "천만 영화가 되어야 하는 영화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맹목적인 반응에는 반대이다. 오히려 이러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재를 다루는 영화는 더 냉철하고 논리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참한 역사 자체를 은폐하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일수록 오히려 더 엄밀하게 분석해서 과연 이 영화가 잘 한 점은 무엇인지, 놓친 것은 무엇인지 파악을 해야 한다. 즉, 영화가 이러한 역사를 단순히 "소비"해 버렸는지 아닌지 검토하는 것을 시작으로 충분히 존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한 장면 한 장면 꼼꼼히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소재이기에 오히려 "꼭 봐야만 한다"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선 <사울의 아들>은 존더코만도(Sonderkommando, 나치 시절 수용소의 시체 처리반)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존더코만도인 사울(게자 뢰리히)의 아들로 추측되는 한 아이가 수용소에서 사망하는데, 이후 사울이 그의 아들에게 합당한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사울의 아들>은 거의 1인칭의 영화라 봐도 무방하다. 우선 주인공인 사울에게만 오롯이 카메라 초점이 맞춰지고, 나머지는 아웃포커스 된다. 유일하게 사울이 나오지 않는 장면 중 아웃포커스 처리되지 않는 부분은 아주 가끔 나오는 사울의 시점 샷 정도밖에 없다. 또한 화면도 4:3 비율을 사용하는데, 이는 굉장히 답답한 느낌이 들게 하는 동시에 마치 사울의 시야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를 통해서 사울이 겪는 고난이 오롯이 관객에게 전해질뿐만 아니라 사울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인공 사울은 시종일관 감정을 절제한 표정을 보여주는데, 달관한 듯한 사울의 표정이 주변에 끔찍한 광경과 합쳐지면서 그 시절 참혹한 역사가 관객에게 온몸으로 다가온다. 특히 독가스를 살포해서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의 비명을 지르면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문을 막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가장 훌륭하게 연출된 장면이라고 꼽을 수 있다. 실제 피해자 분들이 고통받는 장면이 보이지는 않지만 전해지는 비명소리와 사울의 표정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데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의 깊이가 대단하다.
<사울의 아들>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바로 보여주지 않는 연출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사울의 아들>은 그 영화의 등장인물이 볼 수 없는 장면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4:3의 화면 비율과 극도로 아웃포커싱하는 방식을 통해서 배경 조차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온전히 사울에게만 집중하는 연출 방식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사울의 아들>은 사울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면서 단순히 참혹한 역사를 보는 것을 넘어서서 그 시대를 깊게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 참혹한 시대를 관객으로서 "보는" 것을 넘어서, 사울을 통해서 그 시절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가 제시하는 화면은 그 당시 주인공이 실제로 경험하는 화면을 넘어서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대인 피해자 분들이 독가스로 인하여 살해당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울이 보지 못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 사울이 그 목욕탕을 청소하는 장면을 통해서 피해자 분들의 사체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울이 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울의 아들>이 유대인 피해자분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담았다면 순간적으로는 더 참혹하게 느껴졌을 지라도 영화를 보고 난 뒤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 관객은 사울로서 영화를 체험할 수 없고, 단순한 관객으로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사울이 아는 것을 넘어선 정보를 영화 속에서 접한 이상 관객은 사울로서 영화를 체험하는 것이 아닌 사울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화를 연출해 나갔기에 <사울의 아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남는 씁쓸함, 분노, 그리고 안타까움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그렇다면 <귀향>은 어떨까?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사울의 아들>과는 대척점에 있는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연출 방식으로 분석해 보자면 이 영화는 사실 "보여주는" 영화이다. 특히나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이 겪는 고초를 그대로 다 보여준다. 특히 <귀향>의 주인공 정민 (강하나)이외에 여러 소녀가 일본군에게 강간당하는 장면 역시나 영화 내에서 그대로 다 보여준다. 영화 내에서 부감 쇼트로 여러 좁은 방에서 여러 소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을 담는 샷, 일본인 간부 앞에서 옷을 벗은 채 일열로 서있는 장면을 약간 와이드 하게 잡은 샷, 일본인 의사와 군인이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초경 여부를 검사하는 장면을 시점 샷으로 잡은 샷이 있다. 이것이 "다 보여주는" 연출의 대표적인 예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연출이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에 있어서는 사실 나는 물음표이다. 우선 나는 개인적으로 모든 장면을 다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보여주지 않는 것을 통해서 관객들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향>의 더 큰 문제는 연출 방식 보다도 각본의 완성도와 연기의 질이다.
우선 <귀향>의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설정이다. 주인공 소녀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전형적이다. 과연 <귀향>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녀인 '정민'에 대해서 말할 부분이 많을까? 단순히 외동딸이라는 것 말고는 거의 전무하다. 그렇기에 주인공인 정민에게 영화 내부에서만 봤을 때는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초반 10분은 한 인물의 캐릭터를 조성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간이 단순하게 한 정민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 심지어 정민의 일상을 보여주는 그 장면 조차도 너무나 상투적이다. 정민이 아버지에게 가서 안기는 장면, 어머니에게 혼 나는 장면, 그리고 정민이 잠든 사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모두 다 어디서 본 법한 장면들이다. 조금 더 개성 있는 인물로서 정민을 묘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일본군을 묘사하는 방식도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군" 그 자체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이 영화 내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 깊이가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게다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가장 아쉬운 부분은 초반 부에 나오는 가족 씬에서의 연기인데, 이 부분에서는 특히 정민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님의 어색한 연기가 눈에 보일 정도.
하지만 <귀향>에서도 분명히 장점은 존재한다. 우선 영화 내부적으로 좋았던 부분이 몇몇 있는데 그중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동사무소에서 영옥 (손숙)이 몰염치한 발언을 하는 동사무소 직원한테 소리를 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은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손숙 배우님이 정신대(그 시대에는 정신대라는 호칭을 썼으니 그대로 쓰도록 하겠다.) 신고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하지 않고 가려고 하는 데 동사무소 직원이 이런 거 하는 사람 없을 거 같다는 식의 몰염치하고 비인격적인 말을 하는 걸 듣는 그 순간의 표정은 정말 대단했다. 분노, 수치심, 부끄러움, 막막함 등의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는 순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향>의 또 다른 좋은 점은 바로 이 영화가 샤머니즘적인 요소와 결합되어있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만 살펴보면 사실 이 요소는 단점에 가깝다. 영화가 약간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는 부분이 현대(1991년)에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점과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약간 기능적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한 단점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모습을 살펴보면 샤머니즘을 차용한 것 자체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12월 28일에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문을 살펴보면 일본이 성노예를 강제로 징집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적혀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면서 최선의 결과였다고 말하는 정부 앞에서 제대로 된 한풀이를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니 결국 한 풀이할 수 있는 방법이 굿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이 샤머니즘이라는 소재가 너무나 적절했기에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조금 밀도가 부족한 부분이 더 아쉬웠다.
<사울의 아들>과 <귀향> 두 작품 모두 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역사의 피해자를 다룬 영화이지만 정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다. 특히 <귀향>은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점에서 영화를 감상할 때 더더욱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되는 영화이다. 영화의 완성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꼭 한 번쯤 볼만한 영화이고, 더 나아가 두 영화가 다룬 역사는 우리가 결코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울의 아들>과 <귀향>을 통해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큰 역사적인 사건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참했던 우리나라의 역사이자, 전 인류의 크나큰 비극이니까.
사실 <귀향>은 제가 진행하고 참여하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에서도 다루었으니, 꼭 한번 팟캐스트로도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팟빵과 아이튠즈 팟캐스트 두 군데 모두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을 검색해보세요!
(어쩌다 예매한 E열 16번 팟캐스트 홈페이지: http://www.podbbang.com/ch/10315)
2016.03.06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영화 <귀향>, <사울의 아들>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