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실화 영화의 '모범생'을 만나다.

스포트라이트, 실화 영화가 갖추어야 할 것을 빠짐없이 갖추다.

by 조현서

최근 미국 아카데미 어워드가 화제이다. 특히 이번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떠오르면서 과연 오수 끝에 남우주연상을 타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화두 덕분에 어느 때보다 미국 아카데미 어워드는 화제였다. 게다가 이번에 디카프리오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성공하면서, 어느 때보다 대중의 관심을 더 끄는 데 성공했다. 특히 몇몇 뉴스에서는 디카프리오의 수상을 특보로 다룰 정도였다. 하지만 디카프리오의 수상 때문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별 화제가 되지 않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 미국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작품은 바로 작품상과 각본상을 거머쥔 <스포트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울림이 있는 이야기를 깔끔하고 완벽한 연출로 매력적이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중 <브루클린>과 <스파이브릿지>를 제외하고 모두 보았는데, 그 후보작들 중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 각본 등 여러 부분에서 가장 완벽했다.


"완벽하다"라는 롤링스톤즈의 평가가 전혀 과대평가가 아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우선 <스포트라이트>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은 바로 각본이다. <스포트라이트>는 보스턴 시 가톨릭 교회의 아동 강간 및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잔혹한 실화를 다룬 영화가 흔히 범하는 실수를 아주 영리하게 피해 간다. 우선 이 영화는 온전히 피해자들을 취재하는 스포트라이트 팀에만 온전히 집중한다. 그 이외의 요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의 강간 사건이라는 목표를 어떻게 세우게 되는지, 그 목표를 어떤 방식으로 달성해 나가는 지를 덤덤하게 보여줄 뿐이다. 심지어 이러한 잔혹한 사건의 피해자를 소재로 삼는 영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강간당하는 장면 인서트 컷 조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즉, "스포트라이트" 팀이 볼 수 있는 것을 넘어선 것을 영화는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사울의 아들>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울의 아들>의 잔혹성의 상당 부분은 영화의 충격적인 미장센에서 기인하는 데, <스포트라이트>는 그러한 참혹한 충격적인 배경 및 미장센 없이 이야기만으로 참혹함과 씁쓸함을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는 점에서 어느 측면에서는 더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참혹한 장면 하나 없이 참혹함을 맛보게 하는 대단한 영화.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각본의 또 다른 훌륭한 점은 바로 상당히 밀도 있다는 것이다. "스포트라이트"팀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 자체를 허투루 다루지 않을뿐더러 그 과정은 상당히 밀도 있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제시하기 때문에 스포트라이트 팀이 말하는 교과서에서나 등장할 법한 언론 윤리가 단순히 교과서 속 허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리브 슈라이버가 맡은 마티 배런이라는 새로운 편집장의 등장, 취재 착수, 취재를 해나가면서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 완벽한 취재를 위한 노력, 교회를 취재하기에 등장하는 여러 차례의 방해 및 교회의 무시, 취재해나가는 도중 그 사이 가치관의 충돌, 수사 중 아버지 혹은 딸이라는 역할과 기자로서의 역할의 충돌 등 취재 과정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건을 단지 소비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모든 장면에서 존중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또한, 단 일 분도 본질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흔히 한국 신파 영화에서 나오는 감성팔이를 하는 신 역시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해자와 기자가 같이 울면서 억지로 관객의 눈물을 자아내려고 하는 연출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신문이 나와서 제보 전화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는 장면에서 씁쓸함이 오히려 길게 느껴진다.


밀도있게 취재 과정을 쌓아나가고, 마지막 신문 발행에 따른 결말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드는데 충분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말하고자 하는 점이 언론의 기능이자 책임감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교과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먼 곳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 조연들의 캐릭터 때문이다. 분명히 교회와 신문사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을뿐더러 발생하는 사건 역시나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지점을 현실적인 캐릭터 묘사로 영리하게 극복한다. 우선, 언론팀인 마이크 레젠더스 (마크 러팔로)는 열정적이게 사건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건을 폭로하게 되는 시점에 대해서 월터 로빈슨 (마이클 키튼)과 마티 배런 (리브 슈나이더)에 의견에 반기를 들면서 열정이 넘치는 기자로서 차별적인 지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샤샤 파이퍼 (레이첼 맥아담스)과 맷 캐롤 (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는 기자로서 사건을 탐구해야 하는 역할과 아버지 혹은 딸로서의 역할에서 고민하는 지점은 관객을 뭉클하게 만든다. 특히 맷 캐롤이 본인의 집 주변에 아동을 강간했던 가톨릭 목사의 거주지가 있는 것을 알고는 고심 끝에 냉장고에 그쪽으로 접근하지 말라는 노트를 남기는 모습과 샤샤 파이퍼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본인의 어머니가 본인이 작성한 가톨릭 교회의 참상을 담은 기사를 볼 때 본인이 짓는 표정은 우리를 여러 지점에서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수사중 어머니를 마주 할 때의 샤사 파이퍼(레이첼 맥아담스)의 표정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하지만 가장 대단한 지점은 바로 "스포트라이트"팀만 긍정적으로만, 교회 및 교회 변호사 측은 부정적으로만 단순히 그려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로만 전개되지 않기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월터 로빈슨 (마이클 키튼)이에릭 맥클리쉬 (빌리 크루덥)가 처음에 교회에 대한 폭로를 했지만 본인이 바로 그자를 별생각 없이 무시했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 에릭 맥클리쉬가 교회에 협조하게 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걸 영화에서 말하는 것을 통해서 "스포트라이트"팀 자체를 긍정적으로만 그려내지 않았다. 또한 끝까지 협조를 하지 않던 짐 설리반 변호사 (제이미 쉐리던 )가 마지막에 명단을 확인해주면서 동그라미를 치는 장면은 단순히 교회 측 변호사를 돈만 좇는 악랄한 인간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나 인간적인 가치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벤 브래들리 주니어 (존 슬래터리)같이 교회에 취재를 하는 것 자체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인물 역시나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단순히 '교회'를 취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톨릭을 믿는 사람으로서 '교회'라는 단체의 순기능을 믿었다는 점을 취재 과정 속 진상이 드러날수록 교회에 대한 믿음이 꺾이는 모습과 본인이 한숨을 쉬는 장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게다가 교회 측의 인물을 묘사할 때 실제 부정적인 장면을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아까 말했듯이 취재팀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추기경 로(렌 카리오우)가 영화 내에서 보이는 모습은 본인들의 치부를 계속 감추는 비열한 모습이 아니라 자애로운 가톨릭 목사로서의 행동뿐이다. 이렇게 주인공들을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상대편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그려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가 제공하는 담론의 폭이 매우 넓고 깊다.


윌터 로빈슨 (마이클 키튼 역)은 교회가 더 곪아터질 수 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인물로 그려낸다. '스포트라이트' 팀의 수장임에도.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연출과 배우의 연기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더 빛이 나게 만든다. <스포트라이트>의 연출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억지로 감동을 자아내려고 하지 않는 연출이 영화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든다. 이렇게 참혹한 사건의 피해자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보통 과도한 클로즈업 샷과 지나치게 큰 음악 사용을 사용해 오히려 관객의 감동을 억지로 조장하려는 연출이 영화를 망치는 경우도 많은 데, 이 영화는 딱 정도를 지킨다. 정말 보고 있으면 고등학교 때 운동도 잘하고 전교 회장이면서 공부도 상위권인 친구가 떠오르는 기분이랄까. 이토록 딱 알맞은 연출과 명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조화롭다. 월터 로빈슨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은 영화의 중심을 딱 잡아준다. 이성적이지만 열정적이게 취재를 차분히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준다. 마이클 레젠더스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는 신념을 가진 기자가 폭발하는 열정을 가질 때의 모습을 매력적이게 잘 연기한다. 특히 그의 넓은 어깨와 큰 키는 그 캐릭터와 상당히 잘 조응한다. 샤샤 파이퍼를 연기한 레이첼 맥아담스는 딸과 기자, 두 가지 상충되는 지점의 모습을 아주 잘 소화한다. 맷 캐롤을 연기한 브라이언 다아시 제임스 역시 아버지와 기자라는 두 가지 역할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그리고 마티 배런을 연기한 리브 슈나이더는 계속해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모습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눈길이 갔던 배우는 벤 브래들리 주니어를 연기한 존 슬래터리와 짐 설리반을 연기한 제이미 쉐리던이다. 존 슬래터리는 역설적이게 기자이지만 가톨릭 신자로서 본인의 신념이 무너져 가는 데서 느끼는 허무감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모두 다 기자로서 사건을 접근할 때 가톨릭 신자로서 접근했던 인물이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게 느껴졌다. 또한 제이미 쉐리던은 복합적인 감정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마지막에 월터 로빈슨의 제안에 폭발해서 나가라고 하지만 폭발하는 그 순간에 양심의 가책에 찔리는 표정이 살짝 보인다. 그리고 나가는 월터 로빈슨을 따라가서 동그라미를 쳐주는 그 순간 제이미 쉐리던이 짓는 표정에서 죄책감, 미안함, 나름의 후련함과 씁쓸함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배우님들과 감독님. 축하드린다. 사진 출처: lievschreiber instagram

<스포트라이트>가 미국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거머쥐었지만 이와 별개로 최근 아카데미 어워드의 보수화에 따른 비판이 상당히 거세다. 물론 나도 이러한 흐름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특히 이번에 <헤이트풀 8>의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와 배우 사무엘 잭슨, 윌트 고긴스, 그리고 제니퍼 제이슨 리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의 베네치오 델 토로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선댄스 영화제 화제작 <탠저린>이 외국어영화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 등 불만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아카데미 영화제가 논란이지만, <스포트라이트>에 각본상과 작품상을 준 선택은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을 것이다.


꼭 한 번 관람하시기를 바라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2016년 올해 여태까지 개봉한 영화 중 최고였습니다. 적어도 IPTV나 DVD로라도 보시길. 아직 상영관 좋은 시간 대가 꽤 있으니 꼭 보세요!


2016.03.14

어쩌다 예매한 여덜 번 째 영화 <스포트라이트>

영화 읽어주는 남자 조현서 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