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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서 Dec 27. 2018

아현동 한 소년의 이야기 -1

066. 아현동 이야기

  어느 날 한 소년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일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소년은 거대한 덩치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말에 소년과 함께 사는 엄마는 소년을 데리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집을 나왔다. 마치 소년에게 어머니의 행동은 아무런 미련이 없어 보였다. 소년이 어머니에게 왜 우리 집에서 나와야 하는지 몇 차례나 물었지만 어머니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염없이 길을 걷다 보니 자신과 어머니의 집을 차지한 거대한 남자들이 부러웠다. 초점이 없는 어머니의 눈을 본 소년은 자신의 몸을 그 사람들처럼 거대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 남자들보다 몸을 더 거대하게 만든 뒤, 자신의 집을 차지한 거대한 사람들을 다 물리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소년은 어머니의 손을 꽉 잡고 아현동을 쓸쓸하게 떠났다.

  시간이 꽤 많이 흘러 어느새 소년은 20대의 청년이 되었다. 대학교를 이미 졸업한 그는 어느새 어릴 적에 그토록 바랬던 것처럼 거대해졌다. 어릴 적에 그를 쫓아낸 거대한 남자들과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취직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돈도 남부럽지 않게 생겼다.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이제는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어릴 적 상처로 가득 찬 아현동으로 향했다. 지금이 아현동에 있는 어머니와 자신의 보금자리를 되찾을 바로 그 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릴 적 거인들에게 쫓겨났던 바로 그 집이 있던 곳으로 향해도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와 어머니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거칠게 밖으로 내몰았던 거인들도, 어릴 적 보금자리였던 파란 지붕의 작은 집도 없었다. 그곳에는 오직 거대하게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직육면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끌고 나오는 한 여성은 하염없이 직육면체를 쳐다보는 청년을 수상하다는 듯이 흘끗 쳐다보았다. 모멸 어린 그녀의 시선에도 거대한 직육면체 앞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유달리 추운 아현동의 어느 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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