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용 화장실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9

by 조현서

스웨덴에 오자마자 며칠 되지 않아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바로 화장실이었다. 집 밖에서 화장실을 갈 때, 화장실에 성별이 표시되어 있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영화관에서 영화 시작 전에 화장실을 갈 때도, 학교 수업 전에 잠시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갈 때도, 화장실에 성별 구별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는 체감상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꽤 큰 차이를 몸소 느꼈다. 일단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선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여자화장실 앞에 줄이 길게 서있을 때, 혹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여자 화장실만 문 밖으로 길게 줄이 나있을 때 그 뒤에 줄을 서야 할 때의 기분을 스웨덴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로 구별해 놓을 시의 효용과 성별무관 화장실의 효용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성별무관 화장실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모두에게 화장실을 이용하는 비용을 동일하게 청구하는 방식의 필요성이다. 화장실 이용 비중이 높은 공간에서, 특히 여성 화장실 앞에 길게 줄 서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남자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은 거의 보기 어렵다. 유니섹스 화장실은, 여성전용 화장실에 부과되는 더 많은 비용을 평등하게 모두가 부담하는 의의를 지닌다. 어느 성별이건 똑같이 줄을 서고 같은 화장실을 이용하니, 모두가 같은 비용과 효용을 누린다. 여자가 화장실 이용 시간이 길기 때문에 줄도 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유니섹스 화장실을 이용해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화장실 사용 시간이 더 길다는 게 일종의 편견임을 알 수 있다. 화장실의 구조가 동일할 때, 화장실 이용에 걸리는 시간은 남자와 여자가 비슷하다. 오히려 화장실의 구조가 화장실 이용 시간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요소이다. 몇 가지의 문을 거쳐야 하는가가 화장실의 이용 시간을 결정한다. 남자는 소변을 볼 때 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덜 걸릴 뿐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제는 성별을 두 가지로 분리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의 성을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별하지 않는 시대인 것이다. 퀴어, LGBT 등의 다양성의 담론을 넘어, 자기 자신을 사회적인 틀에 맞춰 분석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앞에 펼쳐진 장벽을 하나 둘 허물어야 하는 시대이다. 제 아무리 높고 두꺼운 장벽이라도, 장벽은 무너지기 위해서 존재한다. 체호프가 연극에 총이 있으면 발사되어야 한 듯이, 장벽은 무너져야 한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베를린 장벽은 흰 천처럼 무기력하게 부서졌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만물의 진리처럼 두껍고 높은 벽도 이제 무너질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