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기쁨

스웨덴에서 살아남기 #10

by 조현서

스웨덴에 온 지 어연 두 달 가까이 지났다. 하늘에서 밀려 떨어져 점점 가까워지는 무수한 먹구름 속 외출하는 나를 마주하는 눈과 비는 어느새 내 친구가 된 지 오래였다. 이 친구들은 해를 참 싫어했다. 내가 해를 보고 싶다고 말해도, 항상 말을 끊고 다른 화제로 방향을 바꿨다. 내가 해를 보고 싶다고 계속 얘기하자, 눈을 치켜뜨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친구들의 소리는 얇은 바늘처럼 날카롭고 바위처럼 거대했고, 난 더 이상 해를 보고 싶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눈과 비는 너무 외로웠는지, 나를 찾아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하루 종일 먹구름 속 집에 있다가 내가 외출만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날 찾아왔다. 내가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면 집 앞에 찾아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친구를 볼 때 반가웠지만 너무 자주 보니 점점 반가움의 양이 줄어들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두 친구는 맨날 날 찾아오고, 다른 친구는 만날 엄두도 못 내는 날이 계속되니 거대한 돌덩이가 하나 둘 쌓여가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돌을 녹이는 데 큰 목소리와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치켜뜨고 노려보는 눈초리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둡고 큰 목소리는 돌 사이에 이끼가 끼게 해서 치우거나 녹이는 데 오히려 큰 장애물이었다. 맨날 만나면서도, 어느새 나는 먹구름 속에 있는 그들의 집이 내 방과 멀어지도록 기도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어제만 해도 내 방 바로 옆에 있는 눈과 비가 사는 먹구름 집이 갑자기 이사를 갔다.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그 친구들의 집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후였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심장을 스쳐갈 찰나, 오랜만에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뜬 해를 두 눈으로 마주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제대로 눈을 마주치기도 어려웠다. 그런데도 맨날 찾아오는 두 친구보다도 반가웠다. 아직도 오늘 아침 해의 따듯한 포옹이 잊히지가 않는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음속에 가득 찬, 지층처럼 빡빡하게 가득 찬 이끼 낀 돌은 포옹 한 번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 친구는 부자도 아니고 많은 걸 가진 친구도 아니다. 서울에서 살 때는 꽤나 자주 볼 수 있었고, 반갑게 마주하거나 나에게 큰 감흥을 주는 친구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에서는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스웨덴에서 비와 눈을 피해 집에서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 친구를 피해 카페로 피신하기도 했다. 장점으로만 가득 찬 존재도 아니고, 오히려 지나치면 피해야 될 때도 있고, 혹은 병이 되기도 하는 친구이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한 존재도 내 적층 된 우울감을 단 한 번의 포옹으로 완전히 녹였다. 지층처럼 단단한 돌과 이끼는 해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땀을 비 오듯이 흐르게 하는 짜증 나는 존재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기쁨, 혹은 일주일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마치 눈과 비, 그리고 해처럼, 누군가는 당신을 구타유발자와 구토유발자로 여기더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다.